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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20. 기억해주길 바라는 소

입력 : 2017-07-09 20:58:40 수정 : 2017-07-09 20:5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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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있다. 주로 국가와 시민을 위해 봉사하며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다. 위험한 업무에다 박봉이지만 책임감을 갖고 일을 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 사회가 안전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생각에 그들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지난 6월 말부터 용산 전자랜드 외벽에는 미디어 파사드 영상으로 제작된 영상이 상영됐다. ‘제복을 입은 대원들’이라는 주제로 선친이신 차일혁 경무관과 국군 합동 유해 발굴 군인, 그리고 화재현장에서 시민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을 기리는 영상이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영상은 7월에 SRT 수서역에서도 상영한다고.

힘들지만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 중 대표적인 사람이 소방관이다. 내가 기억하는 소방관은 홍제동 다가구 주택 화재사고에서 희생당한 소방관들이다. 2001년 3월 새벽에 2층에서 난 불을 진화하기 위해 9명의 소방관이 들어갔다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매몰됐고, 6명은 끝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와 유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이 화재는 2층집 주인의 정신병을 앓고 있던 아들 소행으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때 나는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운영위원으로 서대문구와 인연을 맺고 있었기에 사고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사건 현장을 둘러보며 영령들을 위로해줬다.

그 일이 있고나서 얼마 후, 나는 또 다시 홍제동 참사 소방관 영령과 만나게 됐다. 남편이 소방관인 부인이 찾아와 구명시식을 청했던 것이다. 그녀는 15년의 결혼생활 동안 단 하루도 편하게 잔 날이 없었다. 몇 년 전 소방관 남편이 가벼운 사고를 당하면서부터는 혹시 남편에게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더욱 걱정돼 남편 몰래 병원에서 상담치료까지 받았다.

“만약 애들 아빠가 세상을 떠나면 처음에는 유가족이라며 위로도 하고 위로금도 주겠죠. 그러다 얼마 있으면 잊혀지는 거 아닌가요? 그 일만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요.” 그녀는 거리를 걷다가 소방차 사이렌만 들어도 가슴이 뛰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할 정도로 증세가 심했지만 남편에겐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남편이 일을 그만두면 저는 좋죠. 하지만 남편이 그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에 차마 그럴 순 없었습니다. 제 마음도 안정을 되찾고 또 남편에게 아무 일도 안 생기도록 구명시식을 올려주세요.” 단, 남편에게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화마를 두려워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다 순직한 수많은 소방관 영령들과 홍제동 참사로 돌아가신 소방관 영령들을 위해 구명시식을 청했다. 얼마 전 목돈이 생겨 뭐를 할까 한참 고민하다 그분들을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비록 근무하는 곳은 서로 다르지만 소방관은 모두 하나라는 생각에서였다.

구명시식에 나타난 소방관 영령들은 한탄을 했다. 그분들의 말은 한결같았다. 우리나라는 너무나 의로운 죽음에 대한 대접이 소홀하다는 것이었다. “위로금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최소한 우리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소방서에서 우리가 죽은 날에 묵념이라도 해줘야 하지 않습니까.” 또한 외국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안전장비와 안전의식을 지적하며 아쉬워했다.

미국 어린이들은 소방관을 가장 되고 싶어 하는 직업 중에 하나로 꼽고 있지만 우리나라 어린이들은 얼마나 그렇게 생각할까. 국가와 사회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달려가는 제복 입은 대원들에게 국가가 긍지를 심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상영되고 있는 이번 미디어 파사드 영상은 그들에게 긍지를 심어주는 작은 발걸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제복을 입은 대원들을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억하는 것이다. 영원히 말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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