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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84. 항일독립운동과 아나키즘

입력 : 2017-02-27 04:40:00 수정 : 2017-02-26 18:2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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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제강점기 때의 항일투사에 관한 영화들이 많은 관객을 모으고 있다. 영화 ‘암살’과 ‘밀정’이 흥행에 성공한데 이어 또 하나의 독립운동가의 삶을 그린 영화 ‘박열’이 얼마 전 촬영을 마쳤다고 한다. 이준익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일제강점기 때 흑도회(黑濤會)를 조직한 독립운동가이자 일본 왕세자 히로히토 폭살(爆殺)을 계획했던 박열(朴烈)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렸다.

이들 항일독립운동가 영화의 공통점은 등장인물이 아나키스트란 사실이다. 아나키즘이 무엇이기에 그 당시 많은 항일독립운동가들이 그 사상을 접했던 것일까. 아나키즘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an archos’에서 나왔다. 이 말은 권력이나 지배가 필요 없는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다. 항일독립운동가에게 아나키즘은 일제로부터 독립하려는 부정의(不正義)에 대한 저항과 정의의 실천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실제 주인공 박열은 경성고등보통학교 시절 젊은 일본 교사로부터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의 ‘대역사건(1910년 일본 천황을 암살하려한 죄목으로 일본 사회주의자들이 사형당하거나 감옥에 갇힌 사건)’과 아나키즘에 대한 얘기를 듣고 독립의 의지를 갖게 된다. 그리고 1919년 가을 일본 도쿄로 건너간 박열은 고학(苦學)을 하며 흑도회를 결성하였다.

그가 만든 흑도회는 민족차별과 탄압에 저항하는 진보적 사회단체의 효시였다. 사회주의 계열과의 갈등으로 1921년 흑도회를 해산하고 흑노회(黑勞會), 흑우회(黑友會)로 이름을 바꾸었다.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이 일어나자 일제는 박열이 만든 항일운동단체 불령사(不逞社)를 폭력적인 반체제단체로 규정하고, 일본 왕세자 히로히토의 결혼식에 폭탄을 던져 암살하려한 혐의로 박열을 체포했다. 일제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6000명 이상을 학살하여 국제적으로 비난을 받자 그 시선을 돌리기 위해 사건을 크게 다루었다.

왕세자 폭살 미수 사건으로 박열은 사형 선고를 받았고 무기로 감형되어 22년 2개월 1일 동안 형무소 생활을 하였다. 한 나라의 혁명가로서 그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남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1945년 10월 일본 아키타 형무소에서 미군의 포고령에 의해 석방될 때까지 박열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일본인 책임간수장이 쓴 글이 있다.

“20여 년 동안 선생을 관찰해온 나는 선생의 인격에 반하고 굴복하여 희세의 위인으로 숭모의 신념을 금할 수가 없어 나의 자식까지 바치려했다. (중략) 아무리 협박하고 질문을 하여도 요지부동이었고, 관헌과 이론을 전개하면 청산유수적 달변에 당해낼 방법이 없어 관헌은 마침내 전적으로 굴복하고 ‘조선의 애국자는 강하구나’라는 결론으로 그를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다.”

1946년 김구 선생의 지시로 박열은 이강훈과 함께 이봉창, 윤봉길, 백정기의 유해를 발굴하여 서울 용산 효창공원에 안장하도록 하였다. 윤봉길 의사는 일제가 암매장을 하여 유해를 찾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삼의사가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편히 쉴 수 있게 된 것이다. 박열은 사후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 받았다. 하지만 그의 일생을 보면 암울했던 시절에 그토록 강한 신념을 갖지 않았다면 일생을 지조 있게 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아나키즘을 흔히 ‘반국가주의’ 또는 ‘무정부주의’로 설명한다. 마치 국가나 정부를 부정하는 듯이 보이지만 그 당시 대다수의 항일독립운동가들은 강압적 지배를 거부하는 하나의 사상으로 받아들였다. 선친인 차일혁 경무관 역시 아나키스트와 함께 중국 화북지역 태항산에서 일본군과 싸웠던 것도 같은 의미였다.

영화로서 한 사람의 인생을 평가할 수는 없다. 그저 관심 있는 일부분만을 조명할 뿐이다. 영화 ‘박열’이 개봉되면 항일독립운동과 아나키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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