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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9. 5분 빠른 시계를 찬 사람들

입력 : 2017-02-06 04:40:00 수정 : 2017-02-05 18: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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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진다. 직장인에게는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 행운이며 자기발전에 도움이 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 ‘누가’가 누구인지 모르고 내 인생을 걸 만큼 확신을 갖지 못하면 큰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자칫 이 줄에도 서보고 저 줄에도 서보다 박쥐같은 사람으로 낙인찍혀 밀려나는 경우가 생긴다. 계파정치를 하는 우리나라 정치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며칠 전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대선 불출마 선언을 했다. 반기문 씨는 기자회견을 하면서 “일부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지극히 실망했다”며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됐다”고 기성 정치권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했다. 나는 그 기자회견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정치가 원래 그런 것을 모르고 지금까지 외교전문가로 한길만을 쭉 걸어온 그가 진흙탕 같은 정치권에 발을 담궜다가 점점 강해지는 역풍에 상처받고 그런 결정을 한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반기문 씨와 뜻을 같이하겠다고 나섰던 정치인들이다.

특히 반기문 씨가 귀국할 때부터 뜻을 같이하기로 했던 한 여성의원의 입장이 난처해졌다. 그 의원은 분당에 참여할 것처럼 하다가 막판에 발을 빼더니 반기문 씨와 뜻을 함께하겠다며 참모를 자처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가 불출마 선언을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처신을 해야 할지 난감해졌을 것이다. 고심 끝에 내린 정치적 선택이 안 좋은 결과를 만든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반대로 눈치만 보고 있다가 탈당하여 합류하려 했던 사람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렸을 것이다.

대학 교수이며 오랜 세월 함께한 지인이 있다. 학연과 지연으로 그의 주변에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느 날 그가 내게 물었다. “저와 동기였던 친구들은 다 잘 됐습니다. 누구는 국회의원이 되고, 누구는 대권을 꿈꾸는데 왜 저는 대학교수로 머물러야 하나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가 왜 운(運)이 없는지 생각을 했다. 박학다식하고 나름 경력도 화려하여 누가 봐도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그에게 관운(官運)이 없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나도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답이 떠올랐다. “너무 빠른 시계를 찼어!” 그는 항상 빠른 시계를 차고 있었다. 실제로 시간이 빠른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가 가진 인생의 시계가 항상 5분 빨랐다는 것이다. 정치권에 지인이 많았던 그는 정계에 진출하는 꿈을 늘 갖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의 태도였다. 야당에서 만나자고 하면 야당 사람과 만나고 여당에서 연락이 오면 여당 사람과도 만났다. 같은 당 사람을 만나도 계파가 다른 보스들을 동시에 만났다. 그러다보니 당내에서도 누구 사람인지 알 수가 없어 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색깔이 분명치 않았으니 정권이 바뀌어도 그와 함께 일을 하자고 찾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죽은 시계를 찼다면 하루 두 번은 맞았을 테니 장관도 되고 국회의원도 됐을 텐데, 늘 빨리 가는 시계를 차는 바람에 관운이 왔다가도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에겐 여러 사람과 같은 시간에 약속을 하는 나쁜 버릇이 있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사람을 만나니 일처리가 빠르다고 자랑하지만, 정작 약속장소에 나온 상대방은 마음이 불편했다. 약속만 복잡하게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면 인사말이 “안녕하세요”가 아니라 “저 몇 시까지 어디에 가봐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니 그가 갖고 있는 빠른 시계는 늘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마음속 시계를 5분만 늦추세요”라고 말을 해주었다.

조선 전기 학자인 김종직(金宗直)은 ‘점필재집’에서 “안정됨과 조급함은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니 천양지차로 벌어져 후회할 일만 남는다”고 하였다. 청운의 꿈을 가진 젊은 선비에게 조급함에 자칫 잘못된 길에 들어서면 갈수록 멀어져 제 길 찾기가 어렵다는 것을 당부하였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치인에게 조급함은 취할 태도가 아닌 것이다.

사람은 일을 하면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면 남 탓을 하게 된다. 자기에게 원인이 있어도 쉬이 인정하려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관운(官運)이 있을 수 없다. 설사 있다 해도 오래가지 못한다. 관운은 줄타기나 하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보다 그윽한 차 향기 같은 사람에게 스스로 다가간다고 말해주고 싶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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