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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6. 아기의 옹알이는 누가 번역할까

입력 : 2017-01-23 04:40:00 수정 : 2017-01-22 18: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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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는 약 6900개의 언어가 존재하며 그 가운데 백여 개 언어가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언어 속에는 그 수 만큼의 문화가 오랜 시간 녹아있다. 즉 언어마다 오랜 세월 축적된 역사와 문화가 스며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낯선 언어를 우리말로 하는 번역은 단순히 알기 쉬운 말로 바꾸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게다가 언어는 매우 주관적이다. 화자(話者)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 등을 섞어 말한다. 그래서 그 사람을 모르고서는 정확한 말의 의미를 모를 때가 있다. 외국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언어도 다르고 풍습도 다른 주변국과 소통하기 위해 선조들은 어떤 노력을 하였을까. 고려 말과 조선 초에 사역원(司譯院)을 설치하여 외국 언어에 소질 있는 사람을 받아들여 교육하였다. 사역원에서는 한학청(漢學廳), 몽학청(蒙學廳), 청학청(淸學廳), 왜학청(倭學廳)의 4개국 언어를 가르쳤는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뽑은 곳은 중국어를 가르치는 한학청이었다고. 한학청에서는 교재 ‘노걸대(老乞大)’를 사용하여 중국과의 외교에 필요한 역관을 키웠다. 당시 사역원에서는 역관 양성 업무 외에도 번역도 담당하여 주변국 언어로 교재를 만들기도 하였다.

그 당시 조선은 중국과 몽골, 만주(청)와 일본과의 평화를 위해 외교에 힘써야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역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특수전문직인 역관은 조정의 사절단을 따라 수행하면서 통역을 담당하고 본업 외에는 묵인된 밀무역을 통해 큰 부(富)도 축적하였다. 외국어를 잘 하고 장사 수완도 좋은 역관은 신분은 높지 않았으나 재산을 많이 모아 부자로 살았다.

최근 세계적인 인터넷기업들이 입력만으로 외국어를 번역해주는 인공 신경 번역기술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구글과 네이버는 인공지능 번역기를 출시하여 외국어를 손쉽게 우리말로 번역할 수 있게 하였다. 과거 허접했던 번역이 지금은 제법 완성도가 높아졌다. 아직도 보완할 게 많지만 글로벌 시대에 언어의 장벽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고 번역 또한 시간이 지나면 완성도가 높아지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인공지능 번역기가 아무리 뛰어나다해도 인간의 언어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 그것은 인간의 정서를 인공지능이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어’ 다르고 ‘아’ 다른 것이 그것이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느끼는 감성이 같지 않다. 그래서 번역기를 통해 대충 뜻은 알 수 있을지 모르나 민족 고유의 감정은 알 수 없다할 것이다.

특히 세계의 언어 중 우리말처럼 표현이 다양한 언어는 없다. 그래서 외국인이 한글은 배우면 배울수록 어렵다고 하는 것이다. 유난히 반어법도 많고 같은 뜻이라도 수십 가지로 다르게 표현을 하니 어찌 아니 그러겠는가. 너무 슬퍼도 웃음이 나오고 너무 기뻐도 눈물이 나오는 것처럼 언어란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런 것을 인공지능이 어휘 또는 문장만을 가지고 화자(話者)의 느낌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지는 의문이다. 아니 절대로 가능하지가 않다고 본다.

지난 2016년 3월 우리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벌인 세기의 바둑대결을 보고 인공지능의 현주소를 목격했다.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진화속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짧은 시간에 빅데이터를 통해 학습하고 인간을 몰아갈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바둑을 본 세계인들은 이런 속도로 인공지능이 발전한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직업 외에는 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이번 인공지능 번역기의 등장으로 우리의 삶은 또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아마 지금 당장 위험을 받는 직업은 번역가일 것이다. 전문 번역가가 느끼는 인공지능 수준은 기대 이상이라 한다. 인간의 감성을 다룬 책이야 아직은 시기상조이지만 역사나 과학 같은 전문분야의 서적은 조만간 위기감을 느낄 만큼 완성도 높은 번역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 분야는 인간의 감성을 필요로 하지 않으니 말이다.

인공신경망 번역의 정확도가 아무리 높다 해도 인간에게서 풍기는 보이지 않는 언어는 잡아내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소리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갓난아기가 옹알이 하는 것을 누가 알아들을 수 있나. 엄마 외에는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다. 세월이 지나도 아기의 옹알이만은 인공지능도 번역할 수 없는 영역일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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