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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4. 동서양의 문화는 관점 차이

입력 : 2017-01-16 04:40:00 수정 : 2017-01-15 18: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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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선친의 사진을 정리하였다. 해방 후 그 어려웠던 시절에도 아버님은 사진을 참으로 많이 찍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사진을 들여다보니 자연스러운 사진이 드물었다. 전쟁 중인 전투경찰이기도 했지만 평화로울 때에도 대부분 경직된 표정과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사진 찍는 것도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해도 사람은 같은데 사진의 배경만 조금 다를 뿐이었다. 활동적인 사진도 심심할 정도로 얼굴은 배경 속에 묻혀 있었다. 임지를 옮겨가며 동료들과 찍은 사진들이 많아 사진이 곧 기록으로 다가왔다.

반면 서양인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하다. 사진 찍을 때의 기분을 동작과 표정으로 알 수가 있다. 수영장에서, 지인들과 바비큐 파티에서, 그리고 연인과 키스하는 사진 등 격식 없이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는다. 인물 위주의 사진이라 그곳이 어디인지는 본인만 알 수 있을 정도지만 사진을 통해 추억은 진하게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진 하나만 보더라도 동서양이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 ‘최후의 만찬’은 사람의 눈높이 그림이다. 그리고 종교 성화(聖畵)에 등장하는 신이나 천사의 그림에서는 사람 눈높이보다 높이 우러러 보는 앙각(仰角) 구도를 찾을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는 신을 올려다보는 그림의 정점(頂點)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단원 김홍도(金弘道)의 ‘서당도’나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 겸재 정선(鄭敾)의 ‘금강전도’, 내가 소장하고 있는 혜원 신윤복(申潤福)의 ‘칠종칠금 고사도(故事圖)’는 하나 같이 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는 관점이다. 이런 동양화의 구도는 육신의 눈 구도가 아니라 마음, 즉 영혼의 눈 구도라 할 수 있다. 인물과 주위 배경과의 관계를 바라보며 전체로부터 ‘나’를 파악하는 것을 중시한다. 어떠한 입장(立場) 속에서의 인물로, 또는 커다란 우주 장(場) 속의 일부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동서양의 차이는 관점의 차이인 것이다.

심리학자들이 그림을 두고 실험하였는데 그 결과 또한 흥미롭다. 중앙에 주인공이 행복해서 웃는 표정으로 서있고 주위에 둘러싼 친구들도 같이 행복한 웃는 표정의 그림과 주인공의 표정은 그대로이고 주위 사람들의 표정만 찡그린 그림이 있다고 할 때, 서양인들은 십중팔구 두 그림의 차이를 모르겠다고 한다. 중앙의 주인공이 같은 표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두 번째 그림 속의 주인공은 불행하다고 해석한다. 주위 친구들이 불행한데 혼자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서양인의 의식구조는 나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지만, 동양인은 주변과 나의 연관 속에서 바라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는 거기에 하나 더 ‘우리’라는 개념이 들어간다.

서양 어린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명화(名畫)처럼 사람의 눈높이에서 그린 그림이 많다. 눈으로 보는 그대로를 그린다. 사실주의 그림이라고나 할까. 동양의 아이들 그림은 다르다. 마치 비행기나 나무 위의 새가 바라보는 것처럼 위에서 아래를 바라본 그림이 많다. 전체 속의 인간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한다. 이처럼 태어나면서 동서양의 시각차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으니 신비하기만 하다.

영어권 초등학생 교과서는 ‘나’로 시작하지만, 우리는 ‘나, 너, 우리’로 시작한다. 혹자는 그 차이를 성장하면서 받은 교육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오히려 그 반대다. 교육은 동서양의 정서를 반영할 뿐이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우리’는 ‘나’의 집합체다. 동양은 전체 속에서 나를 바라본다. ‘우리’란 ‘전체 속의 나’란 뜻이다. 전통적인 현무경(玄武經), 천부경(天符經), 음양오행(陰陽五行), 천간지지(天干地支) 등이 뜻하는 바도 역시 시간, 공간, 차원 우주 속의 ‘나’이다. ‘우리’의 범위는 한정이 없으니 개개인의 역량이나 관점, 업보에 따른 우주는 다양할 수밖에 없다.

한글은 소리글자이지만 말 속에 깊은 철학이 담겨 있다. 무의식 중에 쓰고 있는 ‘우리’도 모든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과 같은 표현이라 말할 수 있다. 널리 우주를 보고 그 속에 나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엄청난 정신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셈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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