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5일 금요일 오후, 신치용 전 감독은 임도헌 코치에게 불쑥 한 마디 던졌다. ‘왜 그러시지?’라고 생각했지만 평소에도 말수가 적어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사흘 뒤인 18일 말쑥한 양복 차림의 두 남자는 삼성화재 본사와 제일기획, 삼성스포츠단을 차례로 방문하면서 바쁜 날을 보냈다. 이날 배구단은 신치용 감독을 단장 겸 스포츠구단 운영담당 임원(부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임도헌 코치를 2기 감독으로 선임한 인사를 공식발표했다. 임도헌 감독은 “짐작을 하면서도 설마 했었다. 워낙 말씀을 안하시는 분이니 뭐라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고 웃었다.
임도헌에게 신치용이란=“내겐 인생의 등대이자 은인”이라는 한 마디로 표현했다. 둘의 인연을 살펴보면 배구인생의 기점마다 이끌어준 ‘코트의 아버지’로 표현해도 어색함이 없다. 1989년 경북체고 2학년 시절 청소년 대표팀 선수와 코치로 첫 인연을 맺은 뒤 지금까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성균관대 진학도 신치용 부사장의 뜻이었다. 당시 한전 코치였던 신 부사장은 경북체고 세터 전창욱을 보러 온 성대 감독에게 임도헌을 강력 추천했다. 임도헌 감독은 “서울시립대를 가기로 돼있었는데 도장 찍는 날 아버지가 성대를 가야겠다고 하시더라”고 웃었다. 현대자동차서비스에서 프로은퇴를 한 뒤 2006년 삼성화재 코치로 들어온 것도 내부반대를 뿌리친 신 부사장의 강력한 의지덕이었다. 당시 라이벌팀 선수가 경쟁팀 코치로 오는 경우는 전무했다. 임도헌 감독은 “은퇴 후 경쟁팀 코치로 간 것은 내가 1호였다”고 했다. 그리고 10년의 시간이 흘러 신 부사장은 물러나면서 그 자리에 임도헌을 추천했다.
감독 임도헌이 원하는 삼성화재는=삼성화재 감독직은 그 어떤 팀보다 부담이 되는 자리다. 신 부사장이 이끌던 삼성화재는 명실공히 한국배구의 최강팀. 1995년 배구단 창단 때부터 2014∼15시즌까지 19년 연속 결승 진출, V리그 9차례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10년간 그 과정을 뒤에서 수행했고, 누구보다 팀을 잘 알고 있지만 코치와 감독은 분명 다르다. 임도헌 감독은 “솔직히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원체 잘해온 팀이다. 하지만 이렇게 감독이 된 것도 운명이라고 본다”고 오히려 눈빛을 번득였다.
지론은 역시 체육관내 붙어있는 글귀인 신한불란(信汗不亂·땀을 믿으면 흔들림이 없다)이다. 임도헌 감독은 “10번보다 100번, 100번보다 1000번”이라며 “우린 그간 드래프트 순번을 뒤에서 받았다. 분명 다른 팀에 비해 부족하다. 많은 훈련을 해야 경기 때 불안함이 없어진다”고 툭 던졌다. 동시에 임도헌 감독은 “끈끈한 배구를 하고 싶다. 볼 하나에 투지있게 끝까지!”라며 “점수차가 나더라고 최선을 다하고, 프로선수로서 표정과 매너까지 지키면서도 성적을 내는 팀을 만들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다.
몰빵배구? NO! 실리배구다=삼성화재의 스타일은 배구팬에겐 속칭 ‘몰빵배구’로 통한다. 외국인 공격수 위주의 득점방식으로 인해 얻은 비아냥섞인 평가다. 신 부사장은 “분업배구”로 표현했다. 토종 선수들의 수비강화와 함께 득점을 위해 영입한 외국인 주포의 활용도를 높인 철저한 분업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임 감독 역시 이런 틀에 변화를 줄 생각은 없다. 임 감독은 “실리배구”라고 표현했다. 신 부사장은 프로인 이상 승리를 위한 최선의 길을 선택해야했고, 임 감독도 10년간 지켜보면서 냉정한 팀 전력을 생각할 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임 감독은 “우리 선수 구성으로 가장 좋은 게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공격배분을 안하고 싶은 감독이 어딨겠느냐, 하지만 프로는 전쟁이고, 이겨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냉정히 삼성화재는 선수층이 극명히 얇다. 다른 팀에 비해 걸출한 토종공격수도 없다. 레프트 레오(류윤식 고준용), 라이트 김명진(최귀엽) 센터 이선규 지태환, 세터 유광우, 리베로 이강주(곽동혁)가 끝이다. 박철우의 군입대가 꽤 큰 출혈이다. 동시에 기량도 모두가 조금씩 부족하다. 임도헌 감독은 “포지션별로 둘을 합쳐놓으면 정말 좋은데 다 조금씩 부족하다”며 “결국 내가 장단점을 확실히 파악하고 적절히 운용하는 게 중요해졌다”고 했다. 그래도 임 감독은 “목표는 당연하다. 무조건 우승”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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