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패배지만, 기댈 언덕을 찾아야 한다.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3일 대만 타이페이돔에서 열린 대만과의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 B조 조별리그 첫 대결에서 3-6으로 패했다.
선발 투수 고영표(KT)가 2회말 만루포와 투런포를 연달아 맞으면서 0-6으로 출발해 시종일관 끌려가는 경기를 펼쳤다. 승기를 찾아와야 할 타선의 침묵도 아쉬웠다. 4회초 김도영과 박동원의 1타점 적시타와 7회초 나승엽의 대타 솔로포로 만든 3점이 전부였다. 팀 3안타에 그친 끝에 개막전을 패배로 출발한다.
아쉬움이 넘치는 출발,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 없다. 쉴 틈도 없이 14∼16일에 걸쳐 쿠바, 일본, 도미니카공화국을 만나야 한다. 부족했던 점들을 빠르게 보완해 이번 패배를 해프닝으로 남겨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다행히 ’비빌 언덕’은 있다. 바로 대회 전부터 기대를 모았던 대표팀의 철벽 불펜이다. KBO리그 각 팀을 대표하는 마무리, 셋업맨들이 속속 모여들면서 최고의 허릿심을 갖춰둔 류중일호였다.
대만전에서 그 힘을 여실히 증명했다. 고영표를 이은 최지민(2⅔이닝)-곽도규(⅓이닝)-김서현(1이닝)-유영찬(1이닝)-조병현(1이닝)이 6이닝을 나눠가지며 단 한 점도 내주지 않는 호투 퍼레이드를 펼쳤다.
올해 정규시즌 2이닝 이상 던진 적이 없던 최지민이 효율적인 투구로 8개의 아웃을 챙기며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경기를 붙잡는 추로 활약했다. 곽도규도 승계주자 1명을 지우는 침착한 모습으로 국제무대 데뷔를 마쳤다.
대표팀의 유일한 ‘독수리’ 김서현도 인상적인 피칭을 보여줬다. 손쉽게 150㎞를 넘기는 패스트볼의 구위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어 LG와 SSG의 마무리를 맡고 있는 유영찬과 조병현도 밀리는 경기에서도 자신의 공을 뿌렸다.
대만전 패배로 어깨가 무거워졌지만, 불펜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결국 반격의 중심에 서야 한다. 타선이 약점으로 지목 받는 만큼, 적은 득점으로도 경기를 쥘 수 있는 짠물 야구가 승리 확률이 높은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다.
자신감은 충분하다. 이날 등판하지 않은 강한 카드들도 힘을 보탤 준비를 마쳤다. 박영현, 김택연, 정해영은 각각 KT, 두산, KIA가 자랑하는 최고의 클로저들이다.
박영현은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4경기 5⅓이닝 무실점으로 2홀드 1세이브를 챙기며 금메달 주역으로 우뚝 섰다. 올해 31세이브로 생애 첫 구원왕에 오른 정해영도 2023 아시아프로야구 챔피언십 이후 두 번째로 성인 태극마크를 짊어졌다. 김택연은 이번 대표팀 유일한 ‘고졸 신인’ 선수라는 타이틀로 모든 설명을 대체할 수 있다.
이외에도 멀티이닝 소화가 가능한 이영하와 큰 수술을 딛고 돌아온 소형준도 대표팀 불펜 뎁스를 두텁게 만드는 카드들이다.
류중일호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슈퍼라운드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사실상 남은 4경기 전승이 반드시 필요하다. 듬직한 허릿심으로, 꿋꿋하게 버텨야 할 때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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