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하나 쉽게 볼 팀이 없다.
2024 통영·도드람컵 프로배구대회(KOVO컵)가 물씬 다가온 배구의 계절을 통영 앞바다에 수놓는다. 현대캐피탈의 우승으로 끝난 남자부를 이어 여자부 대회도 힘찬 출발을 알렸다. 유독 많았던 비시즌 변화로 판도 예측이 힘든 여자부다. 그 이유를 증명하듯, 대회 초반부터 명승부가 줄을 잇는다. 절대 강자도, 약자도 없는 무한 경쟁의 예고편이다.
◆‘All New’ GS칼텍스
올 시즌의 GS칼텍스를 향한 시선은 차갑다. 비시즌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강소휘와 한다혜라는 굵직한 자원을 잃었고, 정대영과 한수지라는 베테랑들까지 모두 은퇴하며 전력 누수를 막지 못했다. 반면 이렇다할 보강은 없었다. 냉철한 평가는 당연했다.
보란 듯이 뒤집을 준비를 한다. 뚜껑이 열린 KOVO컵 출발부터 화끈한 경기력을 선보였다. 강소휘를 품으며 단숨에 우승후보로 도약한 한국도로공사를 29일 개막전에서 풀세트 끝에 잡아냈다.
우려를 샀던 높이를 극복한 게 인상적이었다. 블로킹에서 17-8로 상대를 눌렀다. 지난 시즌 팀 블로킹 최하위(세트당 1.674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현역 시절 특급 미들블로커로 이름을 떨친 이영택 신임 감독의 지도 아래 스테파니 와일러(블로킹 6개), 권민지(4개)의 날개와 오세연(3개)-최가은(1개)이 꾸린 중앙이 철벽을 쳤다.
여기에 지난 시즌 리그 최고 외인 퍼포먼스를 선보인 지젤 실바가 트리플크라운 포함 39점을 몰아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약점은 채웠고, 장점은 유지한 모습. GS칼텍스를 향한 기대감이 치솟는 배경이다.
◆‘만년 꼴찌’의 변신
페퍼저축은행이 바통을 받았다. GS칼텍스처럼 승리는 없었다. 첫 상대로 현대건설을 맞아 풀세트 끝에 석패했다. 하지만 모두가 패자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럴 자격이 있는 멋진 경기력을 수놓았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통합우승에 빛나는 강팀이다. 반면 페퍼저축은행은 창단 이후 3연속 꼴찌를 기록한 최약체다. 그럼에도 비시즌 차곡차곡 쌓은 상승 요인들이 빛을 발하면서 최강 팀과 맞먹는 접전을 펼쳤다. 올해 외치는 ‘이번 시즌은 다르다’가 예년과 다르다는 걸 증명했다.
아시아쿼터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챙긴 장위(중국)의 폭발력이 인상적이었다. 197㎝의 압도적인 신체조건에 테크니컬, 유연함 모두 빠지지 않는 완성형 미들블로커다. 블로킹 6개 포함 14득점을 올리며 현대건설이 자랑하는 ‘거물’ 양효진과 견줄 만한 경기력을 펼쳤다.
여기에 팀 내 최다 27점을 올린 박정아가 토종 에이스로 버티고, 외인 1순위로 합류한 바르바라 자비치도 20점을 얹으며 한국 무대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주전 세터 이원정이 부상으로 나오지 못한 채, 백업 박사랑과 호흡을 맞췄다는 점도 감안하면 향후 페퍼저축은행의 그래프는 우상향할 확률이 높다.
무엇보다 신임 장소연 감독의 날카로운 분석력을 바탕으로 한 리더십도 빛났다. 작전 타임마다 선수들의 취약점을 짚어주고 족집게 지시를 내리는 모습은 전혀 초보 감독 같지 않았다는 평가다. 완전히 달라진 페퍼저축은행, 만년 꼴찌의 유쾌한 반란을 예고했다.
허행운 기자 lucky77@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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