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024-발굴된 미래'전
시각예술가 다니엘 아샴 개인전
분절된 아이돌·포켓몬 동굴 등
상상의 고고학 주제 250점 전시
"스마트폰 등 일상 속 물건이
미래에 유물이 된다는 의미"
최근 메타(옛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가 아내 프리실라 챈에게 커다란 동상을 선물했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2.1m 크기의 조각상과 그 앞에 서 있는 아내의 사진을 올렸다. 평소 ‘아내 사랑꾼’으로 통하는 저커버그는 “아내의 조각품을 만드는 로마의 전통을 기리기 위해 조각상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리버풀 국립 박물관에 따르면 고대 로마에서는 종종 사랑하는 사람을 기리기 위해 조각상을 만들었다.
프리실라는 터키빛 색상의 조각상 앞에서 커피잔을 들고 포즈를 취했다. 이 동상을 만든 주인공은 바로 미국의 시각 예술가 다니엘 아샴(44)이다. 그리고 마침 아샴의 예술세계가 서울 롯데뮤지엄에서 펼쳐지는 중이다. 그의 개인전 ‘서울 3024 ? 발굴된 미래’가 10월13일까지 이어진다.
◆현대 문명을 유물로 만드는 예술가
다니엘 아샴은 ‘현대 문명을 유물로 표현하는 예술가’로 잘 알려졌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에 석고, 화산재, 유리 조각, 수정 같은 광물을 소재로 주조하고 인위적으로 부식시킨다. 이를 통해 마치 작품이 미래에서 발견된 듯한 가상의 유물로 바꿔 놓는다.
아샴은 조각뿐 아니라 회화, 건축, 영화 등을 넘나들며 활발한 작업에 나서고 있다. 마크 저커버그뿐 아니라 더 위켄드, 퍼렐 윌리엄스 등 세계적 뮤지션부터 티파니·디올·포르쉐 등 명품 브랜드, 포켓몬스터 같은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장르 불문, 협업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있다. ‘예술은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다. 뉴욕현대미술관(MoMA)을 비롯한 수많은 권위 있는 미술관도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1000년 뒤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
이번 전시는 ‘1000년 뒤 서울은 어떤 모습일까?’에서 시작된다. 전시장의 달력은 3024년, 아샴은 ‘상상의 고고학(FictionalArchaeology)’을 주제로 천년 뒤 서울을 그렸다. 250여점에 달하는 작품이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아샴은 상상의 고고학이란 ‘현재의 물건을 1000년, 1만년 후 모습으로 가져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박물관에서 과거 유물을 보듯, 현재 물건도 결국 미래에 가면 고고학적인 유물이 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먼 미래에는 그리스·로마 신들의 조각상이나 포켓몬, 스마트폰, 카메라 같은 일상 속 물건들이 모두 유물이 된다는 의미다. 피카츄, 스타워즈 다스베이더, 콜라 캔이 미래의 유물로 변신했다.
이번 전시는 9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의 소장품을 재해석한 고대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 시대를 대변하는 대중문화 아이콘 ‘포켓몬’이 사는 동굴, ‘미래 유물 오브제 ’시리즈, 발굴현장을 그대로 재현한 장소 특정형 작품 ‘발굴현장’ 등이 기다린다.
◆북한산에 나타난 아테나 여신
아샴은 이번 전시를 위해 1000년 후 서울을 주제로 한 대형 신작 회화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2024년)’과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2024년)’ 2점을 처음 공개했다. 하얀 달빛 아래로 서울 북한산이 펼쳐진다. 북한산 절벽의 소나무 너머 전쟁의 여신 아테나가 서 있다. 1000년 뒤 동양과 서양의 신비로운 만남이 성사됐다.
끊임없이 물건들을 ‘유물화’하는 다니엘 아샴의 작품 세계는 그가 어린 시절 겪은 허리케인에서 비롯됐다. 아샴은 “미국 마이애미에 살던 시절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도시를 보며 인간의 무력함과 문명의 덧없음을 느꼈다”며 “2010년 남태평양 이스터섬을 방문해 고대 유적과 발굴 현장을 보고 나서 지금의 주제를 정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표작인 ‘포켓몬 동굴(2020년)’도 눈길을 끈다. 대중문화의 아이콘이 동굴 속 유물로 발굴된다.
이번 전시 포스터에 담긴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도 눈여겨볼 만하다.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2023년)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대와 현대의 우상을 상징하는 형상을 보여준다. 신성시된 인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추구한 고전 조각상과 화려하고 개성 있는 외모와 설정을 가진 애니메이션 캐릭터는 서로 시대는 다르지만, 이상화된 모습으로 각 시대의 대중을 매료시킨다.
아샴은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에 대해 “고전 조각상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같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소재는 제 작품 요소 중 하나”라며 “이는 시간의 영원성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작품 세계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예술가인데 색맹 … 핸디캡 딛고 작업 이어가
관람객도 현대의 유물을 직접 그려보거나 조사서를 작성하면서 발굴 현장에 참여할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 만난 다니엘 아샴은 자신이 색맹이라고 고백했다. 아샴은 “제 초기 작품을 보면 색감이 배제된 편”이라며 “이제는 특수 렌즈를 사용하고, 12가지 숫자를 매긴 컬러 보드를 활용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어떤 색깔인지 추측하기보다는 숫자의 도움으로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롯데뮤지엄 측은 “작가가 창조한 상상의 고고학은 오늘날 일상의 물건들이 미래에 유물로 발굴된 형태로 제시하며, 자신이 어느 시간 속에 머물고 있는지 모호하게 만든다”며 “관람객들은 허구와 현실이 뒤엉킨 이질적인 공간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시간을 초월한 세계에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글·사진=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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