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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의 끄라시바 월드컵] 승리에 취한 건 아니죠… 이번 월드컵 ‘실패’다

입력 : 2018-06-28 11:00:00 수정 : 2018-06-28 09: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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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카잔(러시아) 권영준 기자] 한국 축구 대표팀이 세계 최강 독일을 잡았다. 기적 같은 순간이다. 1%의 가능성도 통한다는 것을 알았다. 벅차오르는 감동이 남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국 축구의 2018 러시아월드컵은 실패했다는 점이다. 선수의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 축구의 민낯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2018 러시아월드컵’ 조별리그 행군이 막을 내렸다. 스웨덴과 멕시코, 독일까지 세계가 손꼽는 강호들과 숨 막히는 대결을 펼쳤다. ‘어차피 3패’라는 비웃음 속에서 선수단은 사력을 다해 그라운드를 누볐고,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1승2패, 승점 3, 조 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독일을 꺾었다는 점은 분명 박수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이 승리에 취해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그 부분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중 하나가 바로 선수의 투지에 의존하고, 희생을 강요하는 한국 축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박지성 SBS 해설위원은 월드컵을 중계방송하면서 “이것이 한국 축구의 현실”이라는 발언을 가장 많이 했다. 그러면서 "축구인 모두가 반성하고 움직여야 한다. 당장 눈앞이 아니라 10년을 내다보고 변화에 앞장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영표 KBS 해설위원 역시 “행동하지 않는 앎은 결국 모름과 다를 바 없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기 때문에 모름보다 더 나쁜 것”이라며 “한국 축구는 체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변화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꼬집었다.

한국 축구의 전설이자 이번 월드컵에서 해설위원으로 활약한 박지성과 이영표는 왜 한국 축구의 현실을 꼬집었을까. 대표적인 예가 바로 멘털 코치와 월드컵 백서다. 대한축구협회는 4년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멘털 코치를 선임했다. 멘털 코치가 대세인 흐름에 맞춰 대표팀에도 도입한 것.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는 멘털 코치를 따로 선임하지 않았다. 필요성이 없었던 것일까. 오히려 멘털 코치는 인터넷 시대가 발달하고 일대다(一對多)의 소통의 루트가 많아진 현시점에 더 절실한 사안이다. 그런데 소리소문없이 멘털코치 자리는 사라졌다. 실적적으로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여주기식 행보에 그쳤기 때문에 찾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이다.

월드컵 백서 역시 마찬가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과오를 기록으로 남긴 것이 월드컵 백서이다. 그런데 그 잘못을 4년전과 똑같이 저질렀다. 월드컵 개막을 1년도 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단행한 감독 교체,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와 국내 및 아시아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의 체력적 괴리감 극복, 손흥민과 기성용에 대한 의존도 심화 등 브라질월드컵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이번 월드컵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도대체 왜 기록으로 남긴 것일까. 정말 대표팀에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 역시 보여주기식 행보를 펼쳤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의 보여주기식 행보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는 쪽은 선수들이다. 손흥민 기성용을 필두로 이번 대표팀 선수단은 눈에 불을 켜고 이번 월드컵을 준비했다. 그라운드에서 굵은 땀방울을 매일같이 흘렸고, 숙소에서는 머리를 맞대고 연구에 몰두했다. 비행기에서도 준비한 태블릿 PC를 통해 경기 영상을 돌려봤다. 훈련장 분위기가 살벌할 정도로 집중력이 높았다. 장난치고 웃고 떠들기 좋아하는 평범한 20~30대 청년들은 이번 월드컵을 위해 마음껏 누려야 할 청춘을 잠시 접어뒀다. 그렇게 간절하게 준비했다.

손흥민은 죄송하다는 말을 수십번 반복했다. 월드컵 무대를 밟을 때마다 눈물을 흘려야 했다. 도대체 무엇이 죄송한 것일까. 왜 손흥민의 최대 약점은 ‘국적’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아야 하는 것일까.

장현수, 김민우 등 실수를 저질러 고개를 숙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무대에서 실수를 저지른 것은 분명 비판받아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실수가 약점인 것을 알면서도 이들을 뽑아야 했다. 더 좋은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수가 약점인 것은 안고 가는 수 밖에 없다. 진짜 비판받아야 할 사람들은 한국 축구의 현실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그저 방관한 자들이다. 이들인 지금도 선수단 뒤에 숨어서 비판의 칼날을 피해 다니고 있다. 애꿎은 선수만 눈물을 흘린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선수만 희생하고 또 희생양이다.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도 모르면서, 대한축구협회의 높으신 분들은 독일전 승리가 마치 자신의 공적인 것처럼 얼굴을 비출 것이다.

이번 월드컵은 실패했다. 승리에 취해 민낯을 드러낸 문제점을 외면한 채 어물쩍 넘어가다면 4년 뒤에도 선수들은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치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김용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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