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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보기] 감독의 눈물, 선수의 부채질…女 컬링이 새 역사를 쓰는 법

입력 : 2018-02-19 06:00:00 수정 : 2018-02-19 09: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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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강릉 이지은 기자] “어머, 주책이야.”

지난 18일 강릉컬링센터 믹스트존, 김민정 여자 컬링 대표팀 감독은 갑자기 취재진에게 등을 돌렸다. 앞서 열린 중국전까지 7점 차 대승을 챙기며 기분좋게 인터뷰에 나섰던 터. 그러나 “우리에게 올림픽에 출전해 최초로 몇 승을 거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와중에 불현듯 눈시울이 불거졌다. “나이가 먹었나 보다”라며 민망한듯 중언부언하던 김 감독은 황급히 눈물을 닦았다.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정적이 흐르는 상황, 인터뷰를 위해 대표 선수로 나선 김선영(25·세컨드)이 바로 김 감독이 못다한 말을 받았다. “우리가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힘든 일이 많았다. 우리가 신경쓰지 않게 하기 위해 감독님이 뒤에서 더 많은 일들에 애쓰셨다”라며 오히려 김 감독을 다독이는 모습이었다. 이번 대회 첫 경기를 마친 김영미(27·후보)도 옆에서 연신 김 감독의 눈에 부채질을 했다. ‘그만 울라’는 위로의 표현이었다.

김은정(28·스킵)이 이끄는 한국 여자 컬링대표팀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예선 전적 4승1패. 2014 소치 대회때 거뒀던 3승을 뛰어넘으며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을 경신했다. 지난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중국에 5-12로 패하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지만, 이날은 같은 점수로 승리를 거두며 설욕전에도 성공했다. 아직 4경기가 남은 상황이지만, 이 페이스대로로라면 사상 첫 올림픽 4강도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의 목표는 단순히 성적에 그치지 않는다. 김 감독은 ‘사명감’을 먼저 내세웠다. “아직까지 한국 컬링은 고속도로가 아닌 가시밭길이다. 우리를 통해서 컬링이 더 알려져서 공정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정립됐으면 좋겠다. 승률에 집착하기 보다는 최선을 다해서 역사를 쓰고자 한다”라는 말에서는 큰 그림이 읽혔다.

이번 대회가 시작된 이래로 5명의 선수는 모두 휴대폰을 꺼뒀다. 김 감독은 혹여 인터넷에서 나올 지 모르는 ‘악플’에 어린 선수들이 흔들릴까 우려했고, 이를 십분 이해한 선수들은 기꺼이 문명의 길을 포기했다. 김선영은 “선수촌 안에는 공중파도 나오지 않아 소식을 전혀 모른다”라며 웃었다. 10년 동안 동고동락해온 감독과 선수, 서로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들이 한국 컬링의 새 역사를 합작하고 있다.

number3togo@sportsworldi.com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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