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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73. 한 마리 까치 되어

입력 : 2018-01-21 18:30:55 수정 : 2018-01-21 18:3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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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이 수북하게 내린 시골에서 나무 위 까치가 울면 반갑다. 예전 같은 대접은 못 받고 있지만 까치만큼 우리 민족과 인연이 깊은 새도 없다. 수많은 민담에 등장하는 까치는 민화에서는 아둔한 위정자를 경계하는 영민한 민중의 상징으로, 또 도교에서는 영가를 저승에 인도하는 저승과 이승의 메신저로 등장한다.

영혼세계의 매신저인 까치. 그래서 사람들은 산자와 죽은 자를 연결하는 나를 까치에 비유하곤 한다. 1994년 출간한 책 제목도 ‘한 마리 까치 되어’였다. 책의 표지인 까치 그림도 내가 직접 그렸다. 그것 말고도 인연 있는 이를 만나면 까치가 그려진 부채, 까치 목공예품 등을 선물하곤 한다.

조류독감이 전국적으로 퍼져 새들이 수난을 당했을 때 까치도 마찬가지였다. 가까이 오는 것을 꺼려하여 까치를 쫓아버리기 바빴다. 까치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항상 여러 마리가 떼를 지어 다니는 바람에 눈에도 잘 띄고 피해도 컸다. 떼 까치들이 한번 뜨면 전봇대는 물론이고 순식간에 과수원, 텃밭 등이 피해를 당했다.

예전에 떼 까치의 그 위력을 직접 목격했다. 골프장에서 까치들이 뭔가를 무섭게 공격하고 있어 호기심에 구경을 했더니, 독사를 사정없이 쪼고 있었다. 독사는 저항을 하지만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었다. 다가가 까치들을 쫓아버렸다. 만신창이가 된 독사는 떼 까치가 공격을 멈추자 풀숲으로 재빨리 모습을 감췄다. 까치들은 독사가 사라질 때까지 나뭇가지에 앉아 살피고 있었다. 까치의 집요함에 놀라 내가 참 무서운 동물을 별명으로 삼고 있구나 싶었다.

까치와의 인연은 연극공연이 활발한 대학로 극장으로 이어졌다. 10여 년 전 어느 날 공연장 간판 네온사인의 글자 ‘STAR’ 중 ‘S’에 불이 들어오지 않아 확인해보았더니 그곳에 까치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다른 새라면 그냥 쫓아버리겠는데요, 까치라서요.” 사람들은 내가 까치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줄 알기에 아무도 까치를 쫓으려하지 않았다. 순간 딜레마에 빠졌다. 그냥 두자니 광고판의 불이 비정상적으로 보일 판이고, 쫓아버리자니 어렵게 둥지를 튼 까치가 마음에 걸렸다. 까치는 왜 하필 ‘스타’에 둥지를 틀었을까.

영혼탐방기 ‘한 마리 까치 되어’는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는 세계를 그렇게 자세히 나타낸 책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큰 반응에 기분이 좋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역효과를 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또 다른 세상이 있음을 알고 자칫 생명을 경시하는 엉뚱한 결심을 하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에 빠졌다. 생각이 깊어지고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의 판권을 사들이고, 서점으로 나간 책을 전량 수거했다. 그렇게 ‘한 마리 까치 되어’는 서점가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만약 그때 출판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스테디셀러가 되었을 것이고 나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스타’가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영계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조용히 일에 충실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너무 유명해지면 다치는 법이라고, 까치가 가르쳐주러 왔나봅니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은 내게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혹자는 사람은 유명해지기 위해 산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생은 유명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까치가 내가 일하는 건물에 둥지를 튼 이유도 그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으리라.

요즘 절판된 책 ‘한 마리 까치 되어’가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재출간하라는 말도 나오고 있어 고민 중이다. 새로이 출간하게 된다면 보이는 세상, 보이지 않는 세상, 그 어떤 세상보다도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얘기를 할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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