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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오마이걸이 만든 이변

입력 : 2018-01-15 13:12:38 수정 : 2018-01-15 13: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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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4년차 걸그룹 오마이걸이 장안의 화제다. 일반적으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여겨지는 연차에 갑자기 폭등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9일 각 음원사이트를 통해 공개한 신곡 ‘비밀정원’이 다음날 새벽까지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음원사이트 벅스 1위를 비롯, 네이버뮤직, 지니, 소리바다, 올레뮤직 등에서 모두 최상위권에 진입했고, 최대 음원사이트 멜론에선 2위까지 기록했다. 대중성이 강조되는 음원차트 속성에, 사실상 ‘중소돌(중소기획사 아이돌) 죽이기’라고까지 불렸던 멜론 음원차트 개혁 이후 얻어진 성과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 이 정도까지 치고 올라간 중소돌은 그간 없었다.

이렇듯 상식을 초월하는 반향이 일자 곧바로 후속효과들이 연달아 밀려왔다. 즉시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SNS에서도 수없이 언급돼 ‘#오마이걸’이 전 세계 트위터 트렌드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7년 12월11일~2018년 1월12일 기간 한국기업평판연구소의 걸그룹 브랜드 평판지수에서도 오마이걸은 1위 트와이스, 2위 레드벨벳에 이어 3위에 랭크됐다. 한편, 한국서 엄청난 규모로 충격이 일자 한류 양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서도 바로 반응이 왔다. 12일 ‘비밀정원’ 뮤직비디오는 중국 아이치이의 K팝 실시간 차트에서 1위, 인위에타이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사실 이 정도 이변의 중심에 선 팀이라면, 바로 공통된 미디어 화두가 따라오게 마련이다. ‘왜’다. ‘왜 오마이걸이 갑자기 폭등했느냐’는 의문이다. 지난 며칠간 각 연예미디어들은 바로 이 ‘왜’를 놓고 숱한 분석들을 내놓기 바빴다.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이변의 원인점이 묘연하니 대부분 ‘마침내 통했다’ ‘결국은 대중도 알아줬다’는 식 두루뭉술한 해석으로만 일관했다. 물론 딱히 틀린 얘긴 아니다. 결국은 그런 차원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마이걸 쇼크’를 하나하나 다시 분석해보면 조금 다른 일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일단, 이미 몇몇 관련 커뮤니티들에서도 지적된 부분이지만, 이번 ‘비밀정원’ 음원 상황을 시간대별로 분석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음원 공개 후 만 하루 동안 벌어진 오르락내리락 차트 양상은 사실상 ‘일반대중으로부터 바로 반향을 일으켰다’는 식 해석이 무척 어렵단 점이다. ‘비밀정원’은 9일 공개 후 10일 심야시간대에 각 음원사이트 최상위권을 차지한 뒤 아침시간대에 기세가 빠졌다. 그러더니 다시 오후시간대에 치고 올라오다가 막상 저녁시간대엔 다시 빠진 후 심야로 가면서 순위가 또 오르기 시작했다.

이는 대중 반향의 정반대, 즉 팬덤이 화력을 발휘하는 시간대 순위 패턴이다. 일반대중은 정확히 아침 출근 및 등교시간대에 반응을 보인 뒤 다시 저녁 퇴근 및 하교시간대로 화력이 집중된다. 심야를 중심으로 순위를 움직이는 건 거의 대부분 팬덤 화력이다. 그런데 아직 오마이걸은, 비록 꾸준히 팬덤을 늘려오긴 했어도, 이 정도 순위 급상승이 가능할 만큼 팬덤 규모와 화력을 보유했다 보긴 힘들다. 그럼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결론은 조금 엉뚱하게 나온다. 오마이걸은 여타 걸그룹들을 최애로 삼고 있는 걸그룹 고정소비층 내에서 ‘2등돌’, 즉 ‘최애’가 아닌 ‘차애’로서 자리를 넓혀나간 경우란 것이다. 팬덤은 일종의 생활습관에 가깝다. 최애 팀이 휴식기더라도 어찌됐건 팬덤은 그와 연관된 ‘뭔가’는 계속 한다. 가장 쉬운 선택이 그 다음쯤 관심 가는 차애를 파고 응원하는 일이다. 결국 오마이걸은 걸그룹 고정소비층 내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차애로서 많이 지목된 팀이었다고 보는 게 상식적 해석이 된다. 그러다 대표 걸그룹들이 부재하는 ‘빈 집’ 상황이 되자, 다른 할 일(?) 없는 이런저런 걸그룹 팬층의 ‘차애픽’으로서 관심과 선택이 쌓이고 쌓여 대표 팀들만큼의 화력을 보강하게 됐다는 순서다. 확실히 여러 측면에서 설득력 있는 논리다.

그럼 이제 여기서 새로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대체 어쩌다 각기 다른 걸그룹 팬층의 ‘차애’가 오마이걸로 모이게 된 걸까 말이다. 사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오마이걸 쇼크’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이다.

가장 먼저, 오마이걸은 ‘걸그룹’ 하면 딱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전형적인’ 팀이란 점을 들 수 있다. 걸그룹 태동기인 S.E.S.-핑클 시절부터 성립된 바로 그 모습, 얌전하고 보수적인 소녀성을 유지하면서 그에 걸 맞는 사랑스러운 노래와 퍼포먼스들을 선보인다. 일반적으로 ‘전형적’이란 단어는 ‘빤하고 지루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 쉽지만, 반대로 ‘기본형’이란 의미도 된다. 그리고 걸그룹에 관심 많은 고정소비층이라면 화려한 개성만큼이나 가장 근본적이고 안정적인 바탕에 대한 애착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거기다 오마이걸은 당장의 대중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기본 콘셉트를 꾸준히 고수해온 팀이다. 성적 안 나왔다고 섹시 콘셉트 등으로 전환하는 식 조급함을 보인 일이 없다. 뚝심이 상당히 좋은 팀이다. 그런 차원에서도 걸그룹 고정소비층으로부터 인정과 존중, 호감을 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둘째, 그런 기본형 모드에서, 오마이걸은 퀄리티가 부단히 높은 몇 안 되는 팀들 중 하나란 점이 더 있다. 안정된 음악적 퀄리티는 정평이 나있다. 이미 지난 수년간 아이돌로지나 이즘 등 유수의 음악비평웹진에서 꾸준히 오마이걸을 주목하며 호평을 보내온 바 있다. 정교한 군무를 중심으로 한 퍼포먼스 역시 사실상 현재 활동 중인 팀들 중 최상급이란 평가다. 이 역시도 인정과 존중을 통해 ‘조용한’ 라이트팬층을 양산해낼 수 있는 메리트 요소다.

셋째, 오마이걸은 여성팬이 많을 수밖에 없는 외적/인성적 조건들을 두루 갖춘 팀이기도 하다. 나이보다 어려보이는 동안 멤버들이 많아 ‘여동생’ 캐릭터로서 살갑게 소비할 수 있고, 팀 자체 분위기도 튀지 않는 자연스러운 소녀성이 돋보여 여성층이 호감을 느끼기 쉽다. 그간 민감한 사건사고에 휘말린 적도 없다. 멤버들 간 유대 역시 가족적인 따스함이 엿보여 여성층이 기분 좋게 바라볼 수 있는 관계성이 마련된다. 심지어 예능감이 떨어진다고까지 말해질 정도로 수수한 성품들마저 여성층으로부턴 호감 포인트로 작동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층은 보이그룹뿐 아니라 걸그룹 사활에도 큰 영향을 끼치는 아이돌시장 소비주축이다.

마지막으로, 위 특화된 요소들 탓인지, 오마이걸은 ‘걸그룹의 걸그룹’이란 별칭까지 붙을 정도로 유난히 기존 걸그룹 멤버들로부터 사랑받는 팀이란 점을 들 수 있다. 트와이스, 레드벨벳, 에이핑크, EXID, 러블리즈, 우주소녀 등 오히려 오마이걸보다 인지도 높은 팀들에서 공개적으로 오마이걸 팬을 자처하며 응원하는 멤버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사실 이 점이 은근히 중요하다. ‘차애픽’으로서 심리적 차원에서 그렇다. 최애 팀 멤버들이 공개적으로 팬이라 자처하는 팀이라면 당연히 저항감도 줄고 오히려 관심도 더 생기는 게 자연스러운 맥락이다. 일종의 ‘자매그룹 아닌 자매그룹’ 효과까지도 나오게 된다.

물론 이외에도 오마이걸이 선택된 배경과 원인들은 더 많을 수 있다. 중요한 건, 이처럼 여러 복합적 측면들이 한꺼번에 기적적으로 클릭돼 얻어진 게 이번 ‘비밀정원’ 이변이란 점이다. 그러니 그 다양한 원인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짧게는 11월 공개 예정이었던 ‘비밀정원’을 경쟁이 덜한 1월로 옮긴 결정이 신의 한수였고, 길게는 그렇게 3년 가까이 일관된 노선으로 팀을 유지시켰던 뚝심이 신의 한수였다. 좋게 말하면 장점이 뚜렷해서 선택됐고, 나쁘게 말하면 밉보일 구석이 없어서 선택받았다.

그럼 오마이걸은 앞으로도 이번 ‘비밀정원’ 상황처럼 계속 ‘차애픽’으로서 경쟁 팀 없는 ‘빈 집’만을 노리며 활동해야 하는 걸까. 그렇지도 않다. 엄밀히 말해 이번 ‘비밀정원’으로 ‘그 단계’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오마이걸에겐 ‘스토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EXID의 ‘위 아래’ 역주행과 같은 종류 스토리, 이른바 언더독 신화로서의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바로 이 같은 스토리텔링 요소 확보가 중소돌들에 있어선 인기 반등의 가장 큰 관건이라 볼 수 있다.

3대 기획사 아이돌은 이미 기획사 이름값만으로 셀링 포인트가 자동 설정된다. 일반대중조차 3대 기획사 팀들엔 관심을 갖는다. 그 자체로 홍보깃발인 셈이다. 그러나 중소기획사 출신 중소돌들은 다르다. 각자의 특별한 스토리텔링이 부실한 이름값을 대신할 셀링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대중이 중소돌에 있어 가장 선호하는 스토리텔링 요소는 역시 언더독 신화다.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되는 팀이 노력과 행운을 통해 톱의 자리에 오른단 피눈물 성공신화는 늘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 잘 됐으면 하는 바람이 저절로 생긴다. 대중 다수가 각자 실제 삶 속에서 겪었던 마이너리티적 고초를 반영해주는 팀, 그리고 그 성공담을 통해 대리만족의 기쁨을 나눠 갖고픈 팀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마이걸은 이제 ‘다음 단계’, 즉 대형기획사 깃발을 셀링 포인트로 지닌 팀들과 나란히 승부해볼 수 있는 단계로 막 올라서려는 시점이라 봐야한다. 대중은 이미 숱한 미디어 보도를 통해 오마이걸을 ‘새로운 언더독 스타’로서 인식한 상태다. 물론 지나친 레드오션 시점은 피하는 게 상책이지만, 그렇다고 이 팀 저 팀 마냥 피해 다닐 필요도 이제 없다. 승부를 한 번 걸어볼 만한 시점은 곧 올 것이다.

어찌됐건 2018년은 걸그룹 시장에서 흥미로운 일들이 많이 벌어질 해다. 당장 이달 24일 또 다른 대형기획사 CJ E&M의 새 걸그룹 프로미스_9이 정식 데뷔한다. M.net ‘아이돌학교’를 통해 선발된 9명 멤버로 구성된 팀이다. 첫 무대부터 MAMA(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그것도 수용인원 1만7000석 규모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치르는 등 화려한 면모를 뽐냈다. 정식데뷔 후 시장판세 변화에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편, 중소기획사 차원에서도 관심을 모으는 팀이 있다. 지난해 두 번째 유닛 오드아이써클의 미니앨범이 비평적으로 어마어마한 찬사를 얻어낸 블록베리크리에이티브의 이달의소녀다. 올해 중 멤버 공개를 모두 마치고 완전체 데뷔를 성사시킬 채비다. 음악적으로 오드아이써클 정도 퀄리티만 유지할 수 있어도 비평계 주목과 마니아층 확보는 따 놓은 당상이다.

이렇듯 대기업의 굳히기건 중소기업의 뒤집기건, 화려한 출발이건 언더독의 뒤늦은 분투건 간에, 정체되지 않고 끝없이 경쟁해 진화하며 시장역동성을 살려내는 방향이 곧 K팝 성공담을 지속적으로 이어나갈 순방향이리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오마이걸도 연초부터 떠들썩한 시장 환기 무드에 한몫 했다. 무릇 그저 될 것들만 되고 시끌시끌 어지럽지 않으면 그건 제대로 된 대중문화시장이 아닌 법이다. 그건 천천히 안정되게 죽어가고 있는 시장이다. 올 한 해, 더 많은 이변들을 기대한다. 시작은 참신하고 좋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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