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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트와이스 , 한일 문화교류 큰 역할 했다

입력 : 2018-01-01 18:38:33 수정 : 2018-01-02 11: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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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트와이스가 지난해 12월31일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 한국 아티스트론 2011년 동방신기, 소녀시대, 카라 등 3팀 출연 이후 6년 만이다. 이날 총 48팀 중 17번째 순서로 등장한 트와이스는 히트곡 ‘TT’의 일본어버전을 열창, 일본 SNS 등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홍백가합전은 올해 68회째를 맞는 일본 최대 연말 음악방송행사로, TV시청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떨어지는 2000년대 들어서도 여전히 40%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국민적 행사다. 모든 세대가 시청하는 방송이기에 여기 출연하는 것이 해당 아티스트 인지도 향상에 더없는 프리미엄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홍백가합전은 사실 한국과 연을 맺은 지 꽤 오래됐다. 1987년 조용필이 초청돼 ‘창밖의 여자’를 부른 것이 한국 아티스트 최초 출장이다. 트와이스로부터 무려 30년 전이다. 그 30년 역사를 망라해 그간 한국 아티스트 출장 사례와 가창곡들을 살펴보겠다.

1987-조용필(창밖의 여자)

1988-조용필(한오백년), 계은숙(すずめの涙)

1989-조용필(Q), 계은숙(酔いどれて), 김연자(아침의 나라에서 朝の国から), 패티김(이별)

1990-조용필(돌아와요 부산항에), 계은숙(真夜中のシャワ-)

1991-계은숙(悲しみの訪問者)

1992-계은숙(都会の天使たち)

1993-계은숙(アモ-レ ~はげしく愛して~)

1994-계은숙(花のように鳥のように), 김연자(川の流れのように)

2001-김연자(임진강 イムジン河)

2002-보아(VALENTI)

2003-보아(DOUBLE)

2004-보아(QUINCY), 이정현(Heaven), 류(처음부터 지금까지)

2005-보아(抱きしめる)

2006-보아(七色の明日〜brand new beat〜)

2007-보아(ウィンタ-․バラ-ド․スペシャル (LOVER LETTER, メリクリ))

2008-동방신기(Purple Line~どうして君を好きになってしまったんだろう?)

2009-동방신기(Stand by U)

2011-동방신기(Why? (Keep Your Head Down)), 소녀시대(GENIE), 카라(スペシャルメドレー (ジェットコ-スタ-ラブ, ミスタ-))

2017-트와이스 (TT ~Japanese Ver.~)

사실 홍백가합전 출장은 해당 아티스트의 일본 내 대중인지도 및 인기도와 일치하는 듯 또 다르다. 물론 인지도와 인기도가 기반이란 점은 틀린 해석이 아니다. 그러나 한 해 동안 오리콘 위클리 1위를 몇 번이나 차지하며 인기를 얻고 있어도 공영방송 측 ‘메시지’로서 별 의미가 없다 싶으면 출장이 잘 안 된다. 반대로, 이렇다 할 인기확장이 없거나 심지어 인기가 떨어지고 있더라도 이런 아티스트 출장이 사회문화적으로 의미 있겠다 싶으면 또 되는 게 홍백가합전 측 출연자 선정 속성이다. 그냥 일반 민영상업방송의 인기 위주 선정과는 또 다른 측면이 있단 얘기다.

그런 점으로 놓고 봤을 때, NHK 홍백가합전에 한국 아티스트가 초청돼 출장한단 의미는 곧 당대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일본 공영방송 측 입장 및 아젠다 설정이라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대한 관찰 역시 보편적 일본인, 일본사회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전반적 인식 변화를 관찰하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맥락에 비춰 위의 저 출장 리스트를 다시 생각해보자.

먼저 1987년 조용필부터 김연자, 계은숙, 패티김 등이 가세해 1994년까지 이어지는 트로트 한류 부분이다. 이 시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 계기로 일본 내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높아지던 시기다. 이전까지 한국은 뭔가 미심쩍고 위험해 보이는 이웃 이미지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마저 그 세계적 위상 차원에서 한 획을 그었던 행사, 올림픽을 열 수 있는 나라란 점이 알려지면서 인식도 크게 변했다.

음식한류가 처음 인 게 이때다. 김치, 비빔밥, 곱창구이 등이 기무치, 비빈바, 호르몬구이란 이름으로 일본대중에 알려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재일교포 타운 중심으로만 성립되던 한국식당들이 시내 도심가로 진출했다. 1983년부터 연재된 가리야 데쓰-하나사키 아키라의 음식만화 ‘맛의 달인’에서 한국음식 에피소드가 처음 진지하게 다뤄진 것도 바로 이때다. 이어 한국관광 개념도 본격시동을 걸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에 가장 왕성해야 할 쌍방 관광지였지만 실질적 물꼬가 트인 건 이때부터다. 나아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일본에 정착한 한국인들을 가리켜 뉴커머(new comer)란 이름으로 따로 부르는 풍조까지 생겨났다. 올림픽까지 열 정도로 먹고 살만해진 분위기에서 건너온 이들은 또 따로 생각하겠단 취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도 전반적으로 높아져, 한국 대표가수를 초청해 최대 음악방송행사에 출연시키겠단 발상까지 나온 것이다. 우리 옆의 ‘관심 가져볼 만한 이웃문화’이자 ‘이미 우리 안에 재일로서 품고 있기도 한’ 이들에 대한 인식제고 차원이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가 1994년 정도까지 갔다.

물론 이 단계에서 홍백가합전 측 한계는 뚜렷했다. 트로트 가수들만 출연하거나, 조용필처럼 딱히 그렇게 여겨지기 힘든 경우에도 트로트에 가까운 노래들을 부르게 했다. 일본 엔카와 접목되는 부분이 있는 노래들만 수용하겠단 취지였다. 자신들에 이미 익숙한 것을 ‘다른 나라’ 콘텐츠로 소화한다는 다소 소극적인 문화다양성 추구 의지로 봐야한다. 그러다보니 이들 한국가수들은 대부분 일본음악시장 내에서 엔카시장으로만 편입되는 흐름을 낳았다. 아닌 게 아니라 김연자와 계은숙 등은 홍백가합전에서 일본 발표 엔카들을 주로 불렀다.

여기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게 바로 2002년 보아의 출장이다. 이 시기의 인식제고 이슈도 마찬가지로 국제스포츠행사였다. 2002 한일월드컵이다. 이때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와 또 달랐던 게, 일본과 공동개최하는 행사였기 때문이다. 월드컵 같은 세계적 스포츠행사를 일본과 나란히 공동개최할 수 있는 나라란 점이 홍보되면서 한류도 또 다른 차원을 맞게 됐다. 보아가 K팝 한류 선봉에 섰고, 곧바로 KBS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서 폭발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2004년 홍백가합전 3팀 출연이었다. 보아와 함께 류가 NHK 방영으로 문화현상이 된 ‘겨울연가’ 주제곡을 불렀고, 곧이어 NHK에서 방영된 SBS드라마 ‘아름다운 날들’ 주제곡 ‘Heaven’을 드라마 주연배우이기도 한 이정현이 불렀다. 보아를 제외하곤 NHK 자사방송 드라마 홍보 목적이 강한 출장이었지만, 어찌됐건 한일월드컵 효과를 타고 K팝과 TV드라마 양편에서 일기 시작한 한류의 새로운 면모를 과시한 순간이었다.

그 다음이 2010년 ‘K팝 흑선’ 상황에 따른 2011년 3팀 출장이다. 이 시기부턴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인터넷 유통에 힘입어 K팝이 그냥 ‘밀려들어온’ 상황으로 봐야한다. 톱다운이 아닌 바텀업 구조로 K팝이 일본대중음악계 주류시장에 침투하자, NHK 측이 발 벗고 나서 각종 뉴스프로그램을 통해 이 같은 현상을 집중조명하고 또 의미를 부여했다. 일본대중음악산업 전체가 전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단 신호를 보낸 셈이다. 거기서 홍백가합전까지 3팀 출장이 이뤄졌다. 그 뒤 K팝상품 난립과 계약트러블 등으로 불신이 불거지면서 시장이 저하되고, 각종 외교 갈등이 발생해 적어도 지상파방송 차원에선 재기가 불가능해진 순서다.

그리고 이제 트와이스다. 6년 만의 한국 아티스트 출장이란 점도 주목할 일이지만, 일본데뷔로부터 불과 5개월도 채 안 된 시점에 출장이 결정됐단 점이 더 인상적이다. 2010년 ‘K팝 흑선’ 당시 그렇게까지 온 미디어가 들썩였음에도 1년은 뜸들이고 출장시켰던 전례와 비교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이 ‘상식을 초월한 빠른 출장’은 엄밀히 ‘메시지’ 차원이라고 보는 게 옳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국경을 넘나든다’는 한일문화교류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NHK 측은 트와이스의 일본데뷔 전후로 각종 뉴스프로그램을 통해 ‘외교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탄탄해지는 한일문화교류’를 강조해왔다. 한류냉각기라 부르던 시절에도 여전히 K팝에서 엑소와 방탄소년단은 일본서 인기를 확장하고 있었고, 한국영화 역시 마니아층 중심으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었다. 반대로 한국에서도 일본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의 360만 관객 돌파, 서점가 일본소설 열풍 등 현상이 일고 있었다. 일본에선 네이버 라인과 한국식 패션, 화장법 등이 유행하고, 한국선 이자카야가 일본보다 많을지 모른단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성행하며, 라멘 등 각종 대중일식메뉴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쌍방 국가 관광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는 국경을 넘나든다’는 감동적인 메시지가 성립되는 흐름이다.

그리고 트와이스는 바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팀이었단 얘기다. 일단 멤버들 인적구성부터가 그렇다. 그 자체로 국제문화교류를 상징하는 팀이다. 꿈을 위해 국경마저 가볍게 넘나들며 분투하는 진취적이고 글로벌한 신세대 일본젊은이 상을 보여주는 데에도 더없이 적합하다. 늘 갈라파고스라 지적받는 일본 입장에서라면 더더욱 이런 종류 롤 모델이 절실했다.

앞으로도 트와이스는 바로 이 같은 상징성 탓에 홍백가합전 측으로부터 꾸준히 초청받을 가능성이 부단히 높은 팀이다. 이번 첫 출장에서도 벌써 전세기까지 제공하는 등 서비스 차원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한국 아티스트 중 이런 대우를 NHK 측으로부터 받은 경우는 없었다. NHK 입장에선 트와이스가 ‘더 인기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의미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홍백가합전을 통한 한일 간 문화교류는 조용필부터 트와이스까지 쉴 새 없이 변화하며 또 진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트와이스란 이름의 이 특별한 계기는 이미 그 파장을 확대시켜나가는 중이다. 지난 11월 일본 최대 걸그룹 기획사 AKS의 프로듀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국내 최대 연말 음악방송행사인 MAMA(M.net Asian Music Awards)에서 인스파이어드 어치브먼트상을 받았다. 그 자리에서 M.net의 ‘프로듀스 101’과 AKS의 걸그룹 AKB48이 만나는 ‘프로듀스 48’ 기획을 발표했다. 한일문화교류는 지금 또 다른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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