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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준의 독한S다이어리] 축구 지도자 '봉'입니까…인천 '조건부 계약서' 논란

입력 : 2017-12-16 05:20:00 수정 : 2017-12-16 15: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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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월드=권영준 기자] K리그판에 ‘조건부 계약’이 등장했다.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시즌 초반 10경기에서 3~4승 이상 거두지 못하면 사퇴하라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조건부 계약’이 정당한 것일까. 이 조건부 계약서를 꺼내든 구단 수뇌부는 성적 부진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는 한국 프로축구 전체를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인천 유나이티드는 코칭스태프 재계약과 관련해 안팎으로 시끄럽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강인덕 대표이사가 이기형 인천 감독과 직접 만나 조건부 연장안을 제시할 것이며, 이에 대한 수용 여부만 결정해달라는 것이다. 이 조건부 연장안은 ‘2018시즌 초반 10경기까지의 승률이 일정 수준 이하일 경우 즉시 사퇴한다’는 것이 골자이다. 일정 수준 이상이란 3~4승을 의미한다.

논란의 소지가 다분하다. 엄밀히 말해 독소조항이다. 통상적으로 감독의 ‘조건부 계약’은 옵션을 뜻했다. 1년 또는 2년 정식 계약을 맺은 뒤 +1년을 조건부로 붙이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강인덕 대표이사가 제시한 ‘초반 10경기 승률에 따른 자진사퇴’라는 조건부 계약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프로축구를 넘어 한국 프로 4대 스포츠에서도 이러한 조건부 계약은 없었다.

이 계약서가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기형 인천 감독의 계약 기간이 2018시즌까지라는 점이다. 이기형 감독은 지난 2016년 말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승격하면서 인천 구단과 2년 계약을 맺었다. 구단 측은 1+1년이 아닌 2년 계약이라고 못박았다. 계약 기간이 남은 시점에서 ‘조건부 계약서’를 다시 내민다는 것은 불합리하며, 구단이 지도자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는 처사이다. 만약 구단 수뇌부에서 이기형 감독과 함께 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경질 후 새 감독을 영입하는 것이 맞다. 굳이 사람의 자존심을 흔드는 조건부 계약서를 내밀 이유가 없다. 그러나 경질을 하게 되면 잔여 연봉을 지급해야 한다. 강인덕 대표이사가 내민 조건부 계약서는 이를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강인덕 대표이사가 이기형 감독에게 조건부 계약서를 내민 결정적 이유는 시즌 초반 성적 때문이다. 인천은 2017시즌 초반 10경기에서 1승3부6패로 부진했다. 2016시즌에도 4무6패로 부진했다. 구단 수뇌부는 이기형 감독 체제에서 초반 성적이 부진했고,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는 평가를 내렸다. 이에 조건부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자. 인천은 2015시즌에도 초반 10경기에서 2승6무2패로 주춤했고, 2014시즌에도 4무6패로 바닥을 기었다. 이유가 있다. 인천은 시즌 초반이면 어김없이 임금 체납 문제가 드러났다. 수당을 받지 못하고 떠난 이적 선수들이 소송하겠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대표이사도 타구단에 비해 자주 교체됐다. 감독 재계약에서도 아마추어 형태를 보였다. 2016시즌을 앞두고 당시 지휘봉을 잡았던 김도훈 감독과 계약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개막 직전인 그해 3월11일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김도훈 감독은 8월 자진 사퇴했고, 이후 울산 현대 지휘봉을 잡고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초반 성적 부진은 감독의 역량 부족이 아닌 인천 구단의 고질적인 문제이다. 그라운드 안에서 집중해야 할 선수들이 밖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흔들렸다. 분위기는 어수선함을 넘어 최악이었다. 성적이 잘 나올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구단 수뇌부가 해야 할 일은 앞으로 같은 문제점이 반복되지 않도록 플랜을 세우고 팀 운영에 매진하는 것이지, K리그판에 전례가 없는 조건부 계약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구단 수뇌부는 매시즌 전력 보강에 얼마나 정성을 쏟았냐는 것이다. 인천은 매년 전력 누수를 막지 못했다. 2013시즌에는 정혁, 이규로, 정인환, 박준태가 팀을 떠났고, 이어 2014년에는 김남일 한교원이 이적했다. 2015년에는 남준재 박태민 문상윤 이석현 구본상이 새 둥지를 찾아 떠났다. 그리고 2016시즌에는 골키퍼 유현과 김인성이 이적했다. 최근 4년 동안 팀을 떠난 선수들과 외국인 선수를 합쳐 베스트 11을 구성한다면 충분히 중상위권 전력 이상을 구축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팀의 미래이자 핵심 자원들이 팀을 떠나는 동안 얼마나 많은 자원을 영입했고 전력을 보강했는지, 구단 수뇌부에 묻고 싶다. 이런 상황에서 초반 성적은 둘째치고 클래식 잔류만으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최근 두 시즌 동안 이기형 감독이 이뤄낸 잔류는 수뇌부에서 인정해야 할 가치이다. 만약 강등이 됐다면 스폰서 계약에 난항을 겪을 것이고, 자금력이 탄탄하지 못한 인천은 더 큰 역경에 부딪힐 가능성이 컸다. 이기형 감독과 코칭스태프, 선수단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똘똘 뭉쳐 구단을 살렸다.

수뇌부가 조건부 계약서를 제시했다는 사실은 성적 부진의 책임을 모두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만 미룬 채 자신들의 책무는 몰래 숨기고 미루는 처사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기형 감독을 비롯해 박성철 코치, 그리고 팀의 레전드 출신인 임중용 코치, 권찬수 코치 등 코칭스태프는 시즌마다 피말리는 혈투를 치르며 인천을 지켜왔다. 구단 수뇌부에서 이들과 다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이전의 수고에 대한 예의는 지켜줘야 한다. 조건부 계약은 프런트와 현장 지도자의 예의를 저버리는 것은 물론 프로축구판에 가장 악질적인 전례를 남기는 일이다. 특히나 인천 구단 운영진은 얼마나 성적에서 자유롭기에 감독에게 조건부 계약을 제시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구단은 그만큼 투자했고, 지원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자신들에겐 책임이 없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사태가 이처럼 커지고 있는 마당에 유정복 인천시장이자 인천 유나이티드의 구단주는 구단에 어떤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번 사태를 간과한다면, 시장이자 구단주로서의 직무유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OSEN, 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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