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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1-30 16:25:43, 수정 2017-11-30 17:09:04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되살아난 '짝', '젠더전쟁' 도화선 되나

  • 배우 유아인의 SNS가 또 다시 화제다. 그런데 이번엔 방향이 좀 의외다. 지난 18일부터 예나 다름없이 네티즌들과 SNS상으로 이런저런 설전을 주고받던 유아인은,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여성이니까 여성 인권에만 힘쓴다는 말은 남성들에게 남성이니까 남성 인권에만 힘쓰라는 말과 같다. 타인의 이해와 존중을 원한다면, 개인에 매몰되지 말고 타인을 존중하며 함께 하라는 말씀 드렸던 것”이란 멘션을 남겼다. 이어 “증오를 포장해서 페미인 척하는 메갈짓 이제 그만”이라고도 썼다.

    해당내용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알려지자 상황이 눈덩이 불어나듯 커졌다. 일부 여성층 분노가 일거에 폭발했다. 젠더 권력과 차별, 혐오의 문제로까지 번져 결국 또 다른 ‘젠더 전쟁’으로 확대됐다. 물론 이런 상황도 사실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젠더 전쟁’으로 포장된 남혐-여혐 문제는 이미 지난 수년 간 꾸준히 벌어져온 상시적 갈등이다. 그저 이번 차례가 유아인이었을 뿐이다. 그것도 사건 자체로만 보면 단순 해프닝, 일회적 성격이다. 금세 사그라들 것이다.

    그런데 이와 맞물려 유아인 사건처럼 ‘금세 사그라들 것’ 같지 않은 대중문화계 소식이 얼마 전 등장했다. 방송계 소식, 즉 SBS에서 12월 중순 3부작 파일럿으로 방송 예정인 새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잔혹하고 아름다운 연애도시’(이하 ‘연애도시’) 소식이다. 그 자체론 이렇다 할 주목을 끌기 어렵지만, 여기에 화제성 코드가 하나 더 붙었다. ‘연애도시’는 실질적으로 지난 2011년에서 2014년 사이 인기리에 방송된 SBS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짝’의 후속 격 프로그램이란 점이다. 콘셉트 유사성도 유사성이지만, 프로그램을 연출한 황성준 PD 입에서부터 “과거 ‘짝’을 제작했던 스태프들이 상당수 투입된 것은 사실”이란 정보가 나온 상황이다. 그밖에 ‘짝’과의 차별성이라고 내놓은 콘셉트들도 사실상 미묘한 수준이다. 그냥 ‘짝 2’ 맞다.

    이 부분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짝’은 이제 유아인 해프닝까지 온 지금의 남혐-여혐 무드에서 은근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자체가 뭔가를 일으키거나 도화선 역할을 했단 얘긴 아니다. 그러나 남혐-여혐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꾸준히 언급되며 그 내용 ‘짤’이 응용(?)된 부분이 크다. 출연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대하는 태도, 이성관, 결혼관 등에서 불거진 갈등들이 남혐-여혐 ‘근거사례’들로 쓰이며 예상 밖 효과를 가져왔다. 심지어 프로그램이 중단된 지 3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용을 캡쳐한 ‘짤’들이 이런저런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돌아다니며 똑같이 남혐-여혐 근거로들 쓰이고 있다.

    물론 기껏 방송프로그램 하나 등장한다고 해서 지나치게 호들갑스런 우려가 아니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결국 ‘짝’이 종영을 맞이한 것도 남혐-여혐 조장 문제 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프로그램 촬영 도중 한 여성 출연자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이에 ‘과도하게 자극적인 설정’ 문제가 제기되면서 종영을 맞게 됐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물론 ‘짝’도 이런저런 파문들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지금은 ‘짝’이 방송되던 2011~2014년 당시와는 상황이 또 다르기 때문이다. 일단 그 사이 2015년 페미니즘과 미러링을 표방하는 사실상 여성우월주의 사이트 메갈리아가 탄생했다. 위 유아인 트윗에도 등장하는 ‘메갈’이다. 지금은 폐쇄된 상태지만, 그럼에도 그 극단적 상징성 탓에 여성우월주의 기반 사고의 대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이어 여성층 공분을 샀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도 큰 충격을 안겨준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일어난 게 바로 작년 5월이다. 딱히 메갈리아 식 페미니즘에 동의하지 않던 여성층까지도 그 특유의 과격한 논리에 일정부분 동의하게 만든 사건이다.

    이 같은 흐름에 발맞춰 2015년 즈음부터 서점가에선 페미니즘 관련 서적들이 발간 즉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상황이 빚어졌다. 2015년 ‘일탈’과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부터 시작해 ‘나쁜 페미니스트’ ‘여성혐오를 혐오한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페미니즘의 도전’ 등등으로 흐름이 이어지다, 올해 들어선 열풍이 소설로까지 넘어와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이 현재까지 42만 부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바로 얼마 전엔 조남주를 비롯한 여성소설가 7인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도 나왔다. 페미니즘이란 화두는 근래 가장 대표적인 출판계 트렌드, 아니 문화계 전체 트렌드라고까지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제 그에 대응하는 ‘안티 페미니즘’ 서적도 나온 상황이다. 진화심리학자 이덕하가 쓴 ‘페미니스트가 매우 불편해할 진화심리학’이다. 사실상 안티 페미니즘 계통에서 처음 출간되는 사회문화 교양서다. 위 ‘페미니즘의 도전’ 저자 정희진이 “근래 나온 여성학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텍스트”라 극찬한 마리 루티의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에 대응해, 과학의 입장에서 페미니즘계 주장들을 하나하나 논박해나가는 형식이다. 해당서적이 일정수준 이상 반향을 보이면, 곧 안티 페미니즘 계열 서적들도 봇물을 이룰 것이다. 그럼 진정으로 남혐-여혐의 ‘젠더 전쟁’이 전 방위적으로 본격화된다.

    아무리 봐도 ‘짝 2’로만 보이는 ‘연애도시’는 바로 이 같은 일촉즉발 상황 한가운데 기획되고 방송될 예정이란 얘기다. 다시 말하지만, 2011~2014년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지금은 이미 ‘젠더 전쟁’조차 아니다. 그야말로 ‘혐(嫌)의 전쟁’ 상황이다. 그런 흐름이 바로 직전, 유아인에게까지 왔다. ‘연애도시’ 측이 과연 이처럼 ‘달라진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지 의문이다.

    일단 ‘짝’ 당시 문제가 됐던 출연자 선정 문제에 대해선 ‘연애도시’ 측도 뼈저리게 인지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연예계 지망생부터 홈쇼핑 홍보를 위해 나온 듯한 출연자, 심지어 에로영화 출연배우까지 등장해 때 되면 출연자 선정 문제로 비난을 한 몸에 받았던 게 ‘짝’이다. 종영을 유도한 출연자 자살사건 역시 큰 의미에선 출연자 선정 문제였다고 볼 수 있다. 이 부분이 아마 ‘연애도시’ 측에서 가장 역점을 기울인 ‘마크’ 부분이리라 믿는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선 그냥 멀쩡한 출연자들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이성관, 아니 그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자체만으로 인터넷상에서 인격모독 성 테러를 당하기 쉬운 환경이다. 어찌됐건 성(性)선택이란 소재와 엮어 들어가면 바로 폭발성이 급증한다. 향후 ‘짝’ 때처럼 꾸준히 확대재생산 될 발언내용 ‘짤’들 문제도 있다. 대체 ‘어디까지’ 편집수위를 조절해야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을 지도 애매하다.

    어떤 프로그램은 그냥 ‘한 번 지나가버리는 것’으로 역할을 다 마치기도 한다. 시청률 차원 얘기만이 아니다.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그 역할을 이미 마친 경우다. ‘전원일기’ ‘수사반장’ 등도 다 그렇게 자기 사회문화적 역할을 마치고 사라졌다. ‘짝’도 그런 프로그램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짝’은 이른바 ‘문제적 프로그램’이었기에 떴다. 그런데 그 문제는 지금 방송예능 차원에서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커져버렸다. 일개 엔터테인먼트에 굳이 사회적 역할까지 들먹일 이유는 없는 게 맞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상황이 좀 심각하다. 지금은 해당갈등을 조미료 삼아 사골 국 엔터테인먼트 한 번 더 끓이는 게 아니라, 실질적 봉합 방안 제시가 엔터테인먼트건 교양이건 유일한 탈출구인 시점이다. 위 서점가 붐 예처럼, 일단은 지적 차원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시각부터 전제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굳이 하겠다는 데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긴 하다. 문제 될 것 같으니 애초 하지 말란 얘기야말로 문제를 야기하는 것 자체보다 더 우려될 만한 발상인 게 맞다. 그러나, 재차 언급하지만, 사회적 갈등 같은 거창한 차원 말고 그냥 당장 직면한 실제적 차원부터도 ‘연애도시’는 아슬아슬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일단 출연자 보호부터가 관건이다. ‘짝’처럼 갔다간 어떤 일들이 벌어질 지 눈에 선하다. 그리고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출연을 감당하겠단 출연자들이 과연 어떤 이들일지도 문제다. 차라리 연예인 지망생, 홈쇼핑 운영자, 그밖에 각종 자기PR을 필요로 하는 이들로만 팀을 구성해 내보내는 쪽이 서로 간 리스크를 나누는 원만한 거래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른 식으론 답이 잘 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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