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다음

입력 2017-11-15 13:30:52, 수정 2017-11-15 13:44:41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나의 아저씨'는 죄가 없다

  • 내년 방송 예정인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벌써부터 논란에 휩싸였다. 남녀 주인공 연령격차 설정 탓이다. ‘나의 아저씨’는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이 서로 상대방 삶을 바라보며 서로를 치유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남자주인공을 맡은 이선균은 내년에 한국나이 44살, 상대역 아이유는 26살이다. 20살 차 가까운 설정에 네티즌들은 “아저씨들 판타지를 만족시켜 주려는 기획” “실제 사회에서도 40대 남성들이 20대 여성들과 엮이고 싶어 할까 우려 된다”는 등 반응을 보이고 있다. 둘 사이 로맨스 라인이 설정되지 않음에도 그렇다.

    사실 이런 일은 올해 처음도 아니다. 역시 내년 방송될 tvN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놓고도 올 봄 큰 논란이 벌어졌었다. 남녀주인공 이병헌과 김태리 나이가 딱 20살 차 난다는 이유에서다. 비난의 방향과 내용은 대략 ‘나의 아저씨’ 상황과 비슷했다. 다만 ‘미스터 선샤인’에선 실제로 둘 사이 로맨스 라인이 성립된단 점, 그리고 이병헌 개인의 사적 스캔들 탓에 더 큰 주목과 비난을 받았단 점만 다르다.

    물론 액면 그대로만 놓고 봤을 때, 사실 이런 비난은 그 자체로 별다른 의미는 없다. 심지어 딱히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유야 어찌됐건, 보기 싫은 콘텐츠는 그냥 안 보면 그만이다. 보기 싫은 콘텐츠라 해서 등장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건 예나 지금이나 가장 위험한 종류의 파시즘적 발상이다. 설령 콘텐츠가 일정부분 사회악(惡)적 요소를 다루고 있더라도 그런데, 남녀관계에서 나이 차가 많이 난다는 건 그 어떤 의미에서건 사회악이라 볼 수도 없다. 나아가 ‘아줌마 판타지’만큼이나 ‘아저씨 판타지’를 만족시켜주려는 게 대체 왜 문제인지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런 드라마 나오면 중년 아저씨들이 젊은 여성들에게 더 불쾌하게 접근하리란 예상은, 조폭액션영화 보면 바로 폭력배 된다는 막무가내 논리와 별다를 게 없다.

    한 마디로 ‘그냥 기분 나쁘다’는 것, 그게 이 같은 소동의 명분 실체 전부다. 그리고 그 기저엔, 어차피 TV드라마 장르 주 시청층이 여성층인 건 분명하니, 주류 소비자로서 이런 무작정 클레임으로도 일정부분 ‘힘’을 발휘할 수 있으리란 기대심리가 깔려있을 수 있다. 굳이 어느 한쪽 성별로 소비자가 치우치지 않는 영화 장르에선 이 같은 클레임이 딱히 불거지지 않는단 점으로도 파악되는 부분이다. 의외로 역학관계가 충실히 고려된 클레임이란 얘기다.

    물론 ‘그냥 기분 나쁜 것’이라고 아예 불만을 제기할 수조차 없다는 건 아니다. 굳이 페미니즘 차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렇다. 그런 식 남성 판타지 고착을 불편해하는 분위기는 어디서나 나온다. 심지어 모든 대중문화산업 메카 할리우드에서도 그렇다. 예컨대 2014년 제71회 골든글로브상 시상식에서 공동사회를 맡은 코미디언 티나 페이는 당시 작품상 후보로 올랐던 영화 ‘그래비티’에 대해 이렇게 소개한 바 있다. “조지 클루니가 자기 나이또래 여자와 1분이라도 더 같이 있느니 차라리 우주를 떠다니며 죽는 쪽을 선택한다는 영화.”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할리우드에선 그저 위와 같은 야유나 조롱 정도로 그치지 그 이상 비판, 나아가 한국처럼 일종의 사전 클레임 요소로까지 번지지 않는 이유가 있다. 영화나 드라마 등 극예술 장르의 상업적 속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극예술 장르, 그중 로맨스 서브장르에서 연애상대로 설정되는 남녀주인공 캐스팅 방식은 대개 비슷비슷하다. 의외로 남녀 둘 다 쟁쟁한 특A급 스타인 경우 상업적 측면에서 출연료를 지불한 만큼 효과는 잘 안 나온다. 각자 성공적 커리어를 통해 서로 자기 이미지가 탄탄히 굳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각자 개성을 누그러뜨려가며 서로 케미스트리를 맞추는 작업 자체가 너무 까다롭고, 여기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실망과 불편함을 주기 쉽다. 그래서 둘 중 어느 한쪽은 다른 특A급 스타에 ‘녹아들 수 있는’ 정도 가벼운 경력과 이미지를 지닌 편이 선호된다.

    여기서 또 하나, 특A급 스타가 되려면 대중에게서 일정수준 이상 인지도와 신뢰도를 갖춘 배우여야 한단 점이 있다. 그러려면 일정 정도 이상 경력이 필요하고, 당연히 그만큼 ‘나이’를 먹게 된다. 남녀 모두 20대 초반부터 배우생활을 했다고 봤을 때, 대략 30대 중반은 넘어서야 그런 인지도와 신뢰도를 쌓게 된다. 그럼 상대 배역은? 비슷한 또래 훨씬 덜 알려진 배우거나, 아예 커리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배우인 편이 낫다. 둘 중 선호되는 쪽은 후자다. 전자보다 이미지 소진이 적을뿐더러 신선미도 돋보이기 때문이다. 특A급 배우는 인지도와 신뢰도를 팔고, 그에 대응하는 배우는 신선미와 풋풋함을 판다는 공식이다.

    사실상 절대다수 경우 바로 이 지점에서 저 남녀배우 연령격차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적어도 2000년대 이후 해당문제란 거의 이 지점에서 불거지는 상황일 뿐, 의외로 아저씨 판타지니 뭐니 하는 부분과는 꽤 거리가 있다. 당장 이 같은 공식이 남녀가 뒤바뀐 상황에서도 똑같이 반복된단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예컨대, 위 ‘그래비티’로 굴욕(?) 당한 샌드라 불록만 해도 자신이 원톱으로 영화를 끌고 나가야 할 상황에선 저 나이 차 문제가 반대로 뒤집어진다. 2009년 로맨틱 코미디 히트작 ‘프로포즈’에선 상대 남자배우로 당시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신선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가 낙점됐었다. 블록은 레이놀즈보다 12살 연상이다. 줄리아 로버츠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원톱이었던 2010년작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서 상대 남자배우는 그녀보다 2살 어리고 미국 관객들에겐 이미지 소모가 극히 적었던 하비에르 바르뎀이었다.

    국내라고 별 다를 것 없다. 현 시점 언제라도 원톱이 가능한 전지현의 상대 남자배우는 늘 전지현보다 나이가 어리게 된 지 오래다. ‘푸른 바다의 전설’의 이민호는 6살, ‘별에서 온 그대’와 ‘도둑들’의 김수현은 7살이 어리다. 김혜수나 임수정, 송혜교, 공효진, 이영애 등도 많건 적건 비슷한 노선을 밟고 있다. 3년 전 JTBC 드라마 ‘밀회’에서 19살 연하 유아인과 연인관계로 등장한 김희애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 할리우드 페미니즘 계열에서도 운동 방향성은 전혀 다른 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여배우들에게 ‘원톱’ 기회를 늘리란 것이다. 여배우 원톱 캐스팅으로 일대 흥행을 거둔 ‘헝거 게임’ ‘원더우먼’ 등 성공사례를 들며, 이제 할리우드도 ‘여배우 원톱 영화’ 흥행에 아무 위험요소가 없음을 깨달아야 한단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인식전환이 이뤄지면 남녀배우 연령격차 같은 부분도 자연스럽게 딸려 해결되리란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 ‘나의 아저씨’ ‘미스터 선샤인’과 이선균-아이유 이병헌-김태리에 대해, 나아가 대중문화 콘텐츠 속 남녀배우 연령격차 상황 전반에 대해 비판하고자 하는 입장은, 실질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단 지금은 번지수를 단단히 잘못 짚은 상태란 점을 이해해야 한다. TV드라마는 안 그래도 지금 여배우 중심, 여성 시청자층 취향으로만 흘러가는 중이다. ‘나의 아저씨’ ‘미스터 선샤인’ 등은 그야말로 ‘어쩌다’ 나온 드문 기획이다. 이처럼 드물게 나오는 사례들에 클레임 걸어봤자 별 공감도 못 얻고 오히려 파시스트 오명만 한껏 뒤집어쓴다.

    둘째, 문화예술 분야 ‘바깥’에서도 방송계 차원에서 같은 문제를 제기해볼 만한 영역은 많고, 아직까지 놀라울 정도로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영역도 존재한단 점이다. 예컨대 각 방송사 뉴스앵커 남녀연령격차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공영방송 KBS의 메인뉴스인 ‘뉴스9’ 남녀앵커, 황상무 앵커와 김민정 앵커 나이 차는 24살이다. 기자와 아나운서란 출신 직종 차이는 있지만, 어찌됐건 ‘뉴스9’에서 둘이 맡은 역할은 같다. 뉴스를 정확히 시청자들에 전달하는 일이다. 그런데도 남녀앵커 나이 차가 왜 이선균-아이유, 이병헌-김태리보다도 많이 나야 하는지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아무도 그 속성을 ‘제대로’ 말할 용기는 없기 때문이다. 남자앵커는 신뢰와 안정감을 팔고 여자앵커는 젊음과 미모를 판다는 속성 말이다.

    물론 일반 민영방송이라면 누굴 데려다 놔도 장사만 된다면 무방할 수 있다. 민영방송 차원에선 뉴스 역시 대중문화산업 논리에 무한히 가까워진 지 오래다. 그러나 KBS는 엄연히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다. 그리고 공영방송이 취하는 각종 스탠스는 그 자체로 상업적 목적을 넘어 사회적 가치까지 동시에 부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굳이 방송계 남녀연령격차 캐스팅 문제를 지적하려면 이런 부분부터 지적하고 나서야 한단 얘기다. 애꿎은 TV드라마 속 남녀주인공 나이나 지적하느니보단 말이다. 이쪽이 훨씬 명분 있고 또 실질적으로 필요한 비판이다. 비판 자체가 의미 없다는 게 아니라, 적용될 수 있는 범위와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명료한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HOT레드

  • 오늘의 파워링크
  • Today 정보
  • 이시각 관심뉴스
  • To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