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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0-18 10:19:08, 수정 2017-10-18 10:41:57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공익 대신 표절하는 KBS의 구조적 문제

  • KBS가 또 도마에 올랐다. 이번엔 예능프로그램 문제다. 추석 시즌 방영된 새 예능프로그램 파일럿 7편 중 3편이 사실상 타 방송사 프로그램 ‘표절’이란 지적이다. 그중 ‘혼자 왔어요’는 채널A ‘하트시그널’을, ‘줄을 서시오’는 JTBC ‘밤도깨비’를, 그리고 ‘하룻밤만 재워줘’는 실질적으로 JTBC ‘한끼줍쇼’를 콘셉트 카피한 것이란 비판이 일고 있다.

    어쩌다 일시적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그저 지적 정도로 끝날 수도 있다. 문제는 KBS 예능국의 표절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란 점이다. 사실상 예능프로그램 관련으로 가장 표절 논란이 극심한 방송사가 바로 KBS다. 이미 MBC ‘나는 가수다’ 표절의혹이 일었던 ‘불후의 명곡’, MBC ‘아빠! 어디가?’ 카피 비난을 받은 ‘슈퍼맨이 돌아왔다’, tvN ‘꽃보다 할배’를 ‘할매’로만 바꿨다는 ‘마마도’,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 영향권이라는 ‘어 스타일 포 유’ 등 지난 표절시비만 해도 끝이 없다. 거기다 '근무 중 이상 무' '리얼 한국 정착기 이방인' 등 파일럿만 방송된 프로그램들까지 더하면 아예 질릴 만한 수준이 된다.

    그런데 이 같은 문제에 대한 언론 등의 비판은 늘 ‘KBS가 또’ 정도에서 그친다. 잘 해봤자 케이블TV 예능 강세로 경쟁이 치열해지다보니 일어나는 현상이란 식 분석이다. 그러나 KBS 문제는 사실상 좀 더 근본적으로 접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KBS란 조직의 구조적 차원에서부터 다시 점검해보는 게 순서다.

    KBS는 다들 알다시피 공영방송이고, 공기업이다. 한국방송'공사'다. 그런 탓에 흔히 준조세 성격의 수신료 중심으로 운영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다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공표집’에 따르면, 2016년 기준 KBS 전체매출 가운데 수신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2.6%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광고소득과 재송신 수수료 등 각종 사업소득이다.

    그러니 KBS 직원들은, 적어도 재원 차원에선, ‘절반은 공무원, 절반은 민간기업 직원’이 되는 셈이다. 그 복잡한 스탠스가 조직 자체의 성격을 결정짓는 구석이 많다. 물론 한국전력이나 가스공사 등 증시에 상장된 공기업들도 존재하는 마당에 새삼스러운 얘길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복합적 스탠스가 방송, 특히 엔터테인먼트 차원으로 넘어가면 상황이 훨씬 복잡해진다. 그저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공익적이자 상업적이기도 한 여타 공기업들과 달리, 엔터테인먼트는 그 둘이 명확히 갈리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아예 '양질'이란 개념 자체가 다르게 적용된다.

    일단 KBS에서 상업성 강한 프로그램이 등장해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해보자. 그럼 곧바로, 이런 식이면 민영방송사와 대체 뭐가 다르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국민 혈세로 운영되는 의미가 없지 않느냐는 것. 그러면서 공익성 차원 의문이 제기되고, 심하면 수신료 납부 거부 무드까지 조성된다. 반면 공익성에 치중한 프로그램이 등장해 낮은 시청률을 기록해도 문제가 된다. 이번엔 아무도 보지 않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왜 내 세금이 동원돼야 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다. 보다 분발해 전기료에 합쳐져 부과되는 수신료 값을 하라는 비난, 대중이 재밌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라는 비난이 일게 된다. 어느 쪽이건 머리채를 잡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KBS란 조직 자체의 성격도 여타 민영방송사들과는 전혀 다른 체질로 바뀌어버린다. '욕 안 먹는 게 능사'인 공무원 식 복지부동 체질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쟁본능을 필요'로 하는 민간기업 체질이 뒤섞여 오히려 최약체가 되기 쉽다. 생존을 건 도전과 모험을 하기엔 이미 몸이 뻣뻣해있고, 공익적 가치 기준으로 만사를 결정하기엔 당장의 상업성을 놓기가 어렵다.

    이러면 생각할 수 있는 방법론은 하나밖에 안 나온다. 이른바 '게으른 상업성' 노선이다. 무리한 상업적 도전을 피하면서도 수신료 가치도 방어하는 방법. 이미 여타 민영방송사들에서 나와 있는 성공모델을 캐치한 뒤 거기서 너무 자극적인 접근만 빼버리고 내놓는 방법이다.

    물론 이는 사실상 예능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표절 논란까지 불거지진 않았어도 스타일 카피 내지 트렌드 따라잡기 정도 차원에서 이런 식 방법론은 KBS 내 곳곳에서 드러난다. 같은 엔터테인먼트 계열인 드라마국이 한 예다. 대통령-대선후보를 내세우는 정치드라마로서 MBC '대물'이 치고나가자 후발로 '보다 덜 자극적인' 스탠스의 '프레지던트'를 내보낸다거나, SBS와 케이블채널 중심으로 판타지 멜로 열풍이 쓸고 지나가자 후발로 '좀 덜 트렌디'한 '맨홀-이상한 나라의 필'을 내보낸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엔터테인먼트 밖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종합편성채널의 낮 시간대 시사토크쇼 성공이 가시화되자, 같은 콘셉트를 슬그머니 같은 낮 시간대에 도입한 '뉴스토크' '황상무의 시사진단' 등이 예다.

    결국 KBS 표절 문제는 트렌드성이 강조되는 예능 분야에서 보다 빈번하고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문제일 뿐, 그런 상황의 바탕이 되는 '골격' 자체는 어느 분야에서건 똑같이 벌어질 수 있도록 탄탄히 마련돼 있단 얘기다.

    물론 이전까진 ‘그래도 됐다’. 적어도 2000년대 초반 정도까진 여기저기서 표절 좀 해도 별로 문제가 안 됐고, 최소한도 상업적으로 실패하진 않았다. 스테이션 파워가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지상파 2사' 시절부터 다져진 신뢰도와 충성도 파워다. 그러나 지금 예능 등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주 시청층은 이미 다채널 시대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다. KBS나 군소 케이블방송사나 특정 채널에 이렇다 할 선호도나 충성도를 갖지 않는다. 콘텐츠 자체로만 평가하는 분위기다. '본방' 개념이 점점 무너져가는 인터넷 베이스 시청 증가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전까진 ‘대충 넘어갔던’ 표절도 점점 큰 문제로 인식되고, 비판받으며, 상업적으로도 참패하고 마는 것이다.

    이 같은 KBS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논의는 물론 이전부터 있어왔다. 상당부분 수신료 인상과 연동돼 생각돼왔으며, 엔터테인먼트도 궁극적으론 일본 공영방송 NHK와 같은 ‘밋밋하고 심심’하지만 ‘공익적 효과가 큰’ 프로그램 중심으로 가야한다는 게 이상론이다. NHK의 경우 일단 예능프로그램 자체가 극히 제한돼있고, 드라마도 교육적 효과가 큰 역사 관련 대하드라마 및 과거 여성들의 꿋꿋한 삶을 그리는 TV아침소설, 그 외 청소년드라마 정도가 전부다. '영드'의 대표인 영국 공영방송 BBC도 알고 보면 영국고전소설을 드라마화 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대 히트작 '셜록'도 사실상 그 노선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공익성 절대노선'을 성립시켜 줄 KBS 수신료는 정치적 요인으로 인해 1981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37년째 2500원으로 동결돼있는 상황이다. KBS는 일단 사장부터 정권에서 임명, 정권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기에 그렇다. 어느 한 정권에서 수신료 인상을 거론하면 바로 야당에서 반대하고, 그 야당이 정권을 잡으면 이번엔 공수가 바뀐 상황에서 똑같은 일이 벌어져왔기 때문이다.

    한편 정반대 발상도 존재한다. 수신료 인상이 사실상 불가능한 마당이라면, 아예 엔터테인먼트 프로그램 중심의 KBS2TV를 매각해 민영화하자는 방안이다. 그런 뒤 현재 광고조차 나가지 않는 KBS1과 EBS 등을 합쳐, 보다 작은 규모로나마 오직 수신료로만 운영, 온전한 공익방송만을 공영으로 남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지금의 '어정쩡한 상황'을 타개하려면, 상업성 중심사고를 하는 민영 KBS2와 공익성만 생각하는 공영 KBS1로 분리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발상인 셈이다. 그러나 공기업 민영화 자체가 대대적인 정치적 쟁점사안이 돼있는 마당에 이 역시도 진행은커녕 언급조차 금기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해결이 요원하다. 그만큼 이번 추석 당시와 같은 ‘무더기 표절’ 논란 사태의 해결도 요원해진다는 얘기다. KBS의 문제는 언제나 구조 자체의 문제였다. 이런저런 정치적 공방보다도 보다 근본적인 '골격'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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