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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47. 빙하의 눈물

입력 : 2017-10-17 19:24:26 수정 : 2017-10-17 19: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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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로 기상이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가운데 빙하들이 빠르게 녹고 있다. 북극을 비롯하여 만년설을 자랑하던 산들의 빙하가 녹으면서 그 속에 감추었던 아픔들이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최근 유럽 알프스 산에서 실종되었던 시신이 연이어 발견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난 7월에는 1942년 8월 고산 녹초지에서 소를 돌보다가 실종되었던 젊은 부부의 시신과 비행기 조난사고를 당해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시신들이 발견되었고, 그 지역 경찰은 빙하가 녹으면서 앞으로 시신이 더 많이 발견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알프스로 여행을 간 신혼부부가 빙하에 신랑이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슬픔에 빠져있는 신부에게 한 늙은 목동이 “저 빙하는 50년 후에나 녹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50년이 지난 어느 날. 남편을 삼킨 빙하가 녹아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70이 넘은 노쇠한 몸을 이끌고 계곡으로 향했다. 그 곳에서 그녀는 계곡물에 떠내려 온 남자 시신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여보’라고 외쳤다. 70대의 아내와 20대 남편이 50년 만에 재회하는 순간이었다.

살아생전에 배우자의 시신이나마 수습할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지난 1991년에는 알프스에서 기원전 3300년 전의 미라가 발견되었다. 수천 년 동안 빙하에 파묻히면 시신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까운데 긴 세월을 차디찬 얼음 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불쑥 세상에 그 모습을 보인 것이다. 아마 시간이 멈춘 듯한 모습이 아니었을까한다.

산은 그 오랜 세월만큼이나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몇 년 전의 일이다. 모 건설회사 본부장이 행방을 알 수 없었던 선배의 구명시식을 올렸다. 의식이 시작되고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갑자기 선원에 엄청나게 싸늘한 냉기가 흐르면서 냉동 인간을 방불케 하는 남자영가가 나타났다. 피부에 하얀 성에가 뒤덮였을 뿐 아니라, 심하게 다쳤는지 피와 얼음이 엉겨 붙어있어 끔찍했다.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있는 영가가 아니라는 생각에 ‘당신이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자, 영가는 “여기는 네팔 근처 히말라야 산맥의 깊은 크레바스 속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크레바스(Crevasse)’란 빙하의 지각 변동으로 생긴 깊은 균열. 하지만 영가의 행색은 산악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회사원 복장인 그가 웬일로 히말라야의 크레바스 속에 빠져 있단 말인가.

그 이유는 회사 선배가 비행기를 타고 네팔로 가던 중, 절벽과 정면충돌해 추락하는 대형사고로 실종된 것이다. 수색대가 주변지역을 여러 날 동안 찾았지만 끝내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바로 그 선배가 영가가 되어 구명시식에 나타난 것이었다. 영가는 후배인 그가 재판에서 증언을 열심히 해주는 덕에 보상금 문제가 잘 해결돼 가족들에게 먼저 간 미안함을 덜 수 있었다며 고마워했다.

선배의 영혼을 달래준 본부장은 그 후 퇴직을 했고 새로 시작한 사업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했다. 히말라야에서 하산하다가 눈 속에서 실종된 산악인의 시신을 발견하여 자일만 유품으로 챙겼다가 조난의 위기에서 그 자일 덕분에 살아났던 우리 등반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는 영혼은 공짜 밥을 먹지 않는다는 사실을 실증하는 것이다.

예부터 산은 신성한 존재였다. 산이 마음을 열었을 때만 인간은 정상에 오를 수 있었고, 신은 인간에게 생(生)으로 때로는 죽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지금 인간은 자연을 힘들게 하고 있다. 산이 눈물을 흘리고 인간은 그 눈물과 함께 아픈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다. 그저 영혼의 고통이 너무 길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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