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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9-26 11:26:50, 수정 2017-09-28 17:35:39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김씨 표류기', 뒤늦게 미국서 열광하는 이유

  • 이해준 감독의 2009년작 영화 ‘김씨 표류기’가 새삼 화제다. 한국보다 해외, 특히 미국에서 더 인기가 많고 또 인정받고 있다는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퍼지면서부터다. 실제로 ‘김씨 표류기’는 국내 개봉 당시 이렇다 할 평가를 받진 못한 영화다. 총 관객수 72만4987명. 중급규모 영화 치고도 흥행참패였다. 거기다 비평적으로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수상기록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 마이너한 영화상에서만 평가받았다.

    이렇듯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와선 거의 잊히다시피 한 영화가 갑자기 미국에서 반응이 열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확인해보긴 어렵지 않다. 일단 미국인들 중심으로 평점에 참여하는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만 봐도 대략 알 수 있다. 1만2000명 넘는 네티즌들이 평점에 참여했다. 참여자 수만 해도 한국영화 역대 최고 흥행작 ‘명량’의 거의 2배다. 그리고 평점은 현재 8.1이다. 21세기 한국영화 대표작들로 여겨지는 ‘살인의 추억’과 같고 ‘올드보이’보다 약간 떨어지는 정도다. 좀 더 검색해보면 몇몇 미국대학에서 수업교재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도 알게 된다.

    물론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국내외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영화 장르로 국한시켜 봐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 등 유사사례들이 워낙 많다. 그런 점에서 ‘김씨 표류기’에 대한 ‘예상치 못한 미국 호응’을 놓고 진정 주목해야할 부분은 국내와 다른 평가란 대목이 아니다. 그 이전, 대체 ‘어떻게’ 그 영화를 미국인들이 그토록 널리 보게 됐느냐는 것이다. 흔히 안에서 끓어야 밖으로 넘친단 말들을 한다. 영화로 놓고 보면, 일단 한국서 이렇다 할 반향을 일으킨 영화라야 해외배급업자들 레이더에도 잡혀 수입 및 상영이 이뤄진단 순서다. 그런데 ‘김씨 표류기’는 한국에서의 찬밥신세만큼이나 미국에서 역시 제대로 된 극장개봉조차 하지 못한 영화다.

    그럼 대체 뭐가 어떻게 진행됐던 걸까. 원인은 간명하다. 미국의 주문형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다. ‘김씨 표류기’는 넷플릭스 대중화 초기인 2011년 미국 넷플릭스에 등록돼 거기서부터 미국대중을 만나게 됐다. 입소문도 바로 거기서 시작됐고, 곧 ‘김씨 표류기’는 2010년작 ‘아저씨’와 함께 당시만 해도 몇 안 되던 넷플릭스 내 한국영화들 중 인기선두를 달리게 됐다. 그렇게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미국 내에서 ‘한국영화 대표작’ 중 한 편이 된 것이다.

    이 같은 인터넷 기반 영상서비스가 한국영화의 미국보급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에 대해 아직 명확한 데이터는 나온 바 없다. 다만 미국 한인방송 라디오서울에서 2017년 4월3일자로 내보낸 기사 ‘한국 영화, 미국시장에서 입지는?’ 정도가 그 대략적 윤곽은 드러내고 있다.

    기사는 “한국 영화는 이제 매년 30편 정도가 리걸 시네마나 AMC 등 미국의 유수 극장체인에서 상영되고 있지만 관객은 거의 전부가 한인들입니다. 영어 자막은 한인 2세들을 가족들과 함께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명량’이나 ‘공조’ 등을 보려고 영화관을 찾는 타 인종 관객은 거의 없습니다. 같은 한국 대중문화여도 TV드라마나 K팝 등과는 그 위상이 다른 것입니다”라고 보도하면서, 영화진흥위원회 미국사무소 황수진 소장의 미래전망도 함께 실었다. 황 소장은 “점점 넷플릭스, 아마존, 아이튠즈에서 한국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어요. 극장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시청할 수 있는 판도가 많아진다는 거죠. 아직까지 데이터화는 돼있지 않지만 점점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라고 설명하고 있다. 설명 말마따나,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아이튠즈에 공개되면서 1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같은 시기 극장수입인 63만5000달러를 압도한 점도 언급됐다.

    사실 이 부분은 한류라는 개념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다. 한류는 근본적으로 인터넷이란 기반을 통해 드높은 해외시장 진입장벽을 뚫고 판로를 만들어낸 흐름이라 봐야하기 때문이다. 힘 실어 말하자면, 인터넷이 없었다면 지금의 한류도 존재할 수가 없었다. 특히 서구시장에서의 한류라면 더더욱 그렇다.

    서구시장에서 아시아 대중문화상품 중심판로는 그 생성시기가 명확하다. 1960~70년대, 사회문화적으론 68혁명-히피즘 유행 시기다. 이때 신종 청년문화 한 갈래로 동양정신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리엔털리즘 붐이 강하게 일었다. 그러다보니 아시아권 대중문화 콘텐츠에 대한 관심도 함께 불렀다. 이 시기 동안 일본가수 사카모토 큐의 일본어 노래 ‘스키야키’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고, 이소룡 주연 ‘용쟁호투’가 미국 박스오피스 1위도 석권했다. 이밖에 ‘고질라’ 등 일본 괴수영화와 사무라이영화, 홍콩 무협영화, 필리핀 디스코와 록 음악 등이 서구 서브컬쳐 시장을 휩쓸었다.

    ‘벽’은 바로 이 시기 쌓아졌다. 이 같은 ‘아시아 문화콘텐츠 트렌드’ 당시 서구인들에 접근해 친숙해진 국가들 콘텐츠만이 이후에도 수입 및 배급 대상이 됐다. 이른바 ‘문화 신뢰도’ 차원 벽이 쌓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 함께 트렌드를 타지 못한 한국은 반대로 바로 그 벽에 의해 곤욕을 치르는 입장이 됐다. 당시까지만 해도 떨어지는 경제력 탓에 문화 콘텐츠 경쟁력에서도 밀려 ‘아시아 문화그룹’에 가담하지 못한 탓이다. 한국 영화감독 정창화가 홍콩영화사에 초빙돼 만든 ‘철인(죽음의 다섯 손가락)’이 미국 수출돼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특이한 기록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 ‘역량’이 유난히 떨어졌다기보다 국가 이미지와 인지도 차원에서 밀려 함께 트렌드를 타지 못했다는 결론이다. 어찌됐건 이때 형성된 벽은 향후 30여년 가깝게 한국 문화 콘텐츠의 서구 진입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다 이 같은 벽이 드디어 무너진 게 인터넷이란 유통도구가 등장하면서부터다. 특정 배급자들 ‘인식’에 의해 해외 콘텐츠 배급이 좌지우지되던 상황에서 벗어나, 모두가 같은 콘텐츠 창고에서 콘텐츠를 스스로 선택해 즐기는 시장이 마련되자, 모든 배급의 룰이 뒤바뀌었다. 국경 없는 자유시장 위력이 이미 역량 자체는 충분히 갖추고 있었던 한류에 순풍을 달아줬다.

    당장 한류 선두주자 K팝만 해도 그렇다. 이전까지 K팝 한류란 한국 아티스트가 해외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해당 레이블 전략에 맞춰 ‘맨땅에 헤딩’하며 현지화를 다지는 방식이었다. 일본시장 예로 보자면 보아와 동방신기 등이 이런 방법론을 취했다. 그러나 2010년 걸그룹 중심으로 K팝이 일본시장에 진출할 땐 상황이 전혀 달랐다. 이미 유튜브란 기반을 통해 K팝이 일본대중에 전파될 만큼 전파된 상태, 일정수준 이상 잠재적 팬층이 형성된 상태에서 무혈입성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물론 일본만의 얘기도 아니다. 사실상 전 세계가 같은 경로를 겪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빌보드 2위까지 올라갔던 것도 명백히 유튜브 공로다.

    결국 인터넷은 지난 과거의 한계 탓에 더없이 치솟아버린 막대한 진입비용 문제, 그리고 복잡한 계약관계 문제의 고리를 끊고, 손쉽게 한류 팬층을 생성시키는 한류의 동맥과도 같은 도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흐름이 ‘의외로 가장 한류를 못 타는’ 영화까지 왔다. ‘김씨 표류기’의 ‘수면 아래 선전’도 바로 그런 흐름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제 서서히 가시적 지표들을 마련해주고 있다.

    앞선 라디오서울 기사에서 “영어 자막은 한인 2세들을 가족들과 함께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명량’이나 ‘공조’ 등을 보려고 영화관을 찾는 타 인종 관객은 거의 없”다는 진단을 돌아보자. 그런데 또 라디오서울은 2017년 4월2일자 기사 ‘한국영화 미주 보급 늘어, ‘설국열차’는 매출 450만 달러’에서 같은 황수진 영화진흥위원회 미국사무소장의 다음과 같은 코멘트도 내보냈다.

    “사실 미국에서 극장 수익이 높진 않았는데, 2014년부터 확연히 높아지고, 의미가 있는 영화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북미에서 잘 나와도 50만 불 정도였는데, 100만 불이 넘어가기 시작해서 ‘명량’도 200만 불 넘어가고, ‘국제시장’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미국서 배급되는 편수도 2014년 21편에서 2015년 26편, 2016년 30편으로 조금씩 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이건 컵에 물이 반밖에 안 남았느냐 반이나 남아있느냐 하는 관점의 차이가 아니다. 그보다 더 선명한 관점이 존재한다. 사실상 한국영화를 트는 미국영화관 안에 타 인종은 없고 한인 2세들이나 앉아있다는 게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그나마도 한국영화를 보러 오지 않았던’ 한인 2세들부터 극장을 찾아 흥행수치가 점점 올라가고 그만큼 배급편수도 늘고 있다는 게 제대로 된 답이다. 그리고 그 기점이 된 2014년 즈음은 이제 넷플릭스 등 인터넷 스트리밍 업체들을 통해 한인 2세들이 손쉽게 한국영화를 가정에서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때이기도 하다. 자국영화가 ‘볼만하다’는 것, 그리고 ‘꾸준히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 하다는 것’을 인식시켜온 과정이다.

    나머지는 일본 역사학자 와다 하루키의 한류 현상 원인 지목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 세계에 걸쳐 퍼져있는 무려 600만에 이르는 한민족 네트워크가 한류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거기서 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거기서 마련된 기반을 통해 점점 더 번져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간 잠들어있던 그 한민족 네트워크를 작동시키는 도구가 된 게 바로 인터넷이다.

    흔히 일본영화의 해외진출 기점으로 인식되는 사건이 1950년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작 ‘라쇼몽’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건이다. 이전까지 일본영화계는 자신들이 만드는 영화 수준이 국제기준으로 과연 어느 정도인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라쇼몽’은 일본 국내에서 특별히 좋은 평가를 받은 영화도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수상하고 보니 모든 게임의 룰이 뒤바뀌었다. 영화는 이제 일본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첨병 격 도구가 됐고, 세계는 그런 일본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며 받아들였다.

    한국에선 ‘김씨 표류기’의 예상 밖 호응이 바로 그런 사례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그것도 ‘라쇼몽’보다 훨씬 복잡한 경로를 거친 일대 인식전환 사례다. 한국 대중문화는 인터넷 보급이 시작된 1990년대 중후반 이후 단 한 번도 세계시장에서 뒤로 물러나본 적이 없다. 우리가 사실은 그 정도 역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을 우리조차 모르며 또 믿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한국영화는 팔린다. 그 유통 ‘도구’만 잘 선택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판로를 개척할 수도 있다. 새 시대, 새로운 한국영화계에 대한 주문이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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