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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8-20 19:57:01, 수정 2017-08-20 19:57:01

[차길진과 세상만사] 132. 빨치산도 존경한 차일혁 경무관

  • 지난 주 15일에 선친이신 차일혁 경무관 59주기 추모행사가 있었다. 경찰교육원에서 열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가족 중심으로 조용히 추모행사를 하려했는데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었다. 경찰은 물론이고 예비역 장성까지 자리를 해주어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얼마 전에는 전북보훈지청에서 차일혁 경무관의 흉상을 제작하여 정읍 시민의 휴식처인 내장산 물테마공원에 세울 계획임을 알려와 이번 추모행사가 더욱 의미를 갖게 되었다.

    정읍은 차일혁 경무관이 빨치산을 토벌하면서 많은 전투를 벌인 곳이다. 대표적인 공적인 칠보발전소 탈환전투 외에도 고창, 부안 전투 등 지리산을 중심으로 벌인 차일혁 경무관의 전과는 가히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빨치산들은 두려워할 정도였다. 그런데 반대로 빨치산들이 차일혁 경무관을 존경했다고 하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2010년 내가 오페라 ‘카르마’를 제작하고 있을 때 정치인 L씨로부터 선친의 얘기를 들었다. 그는 “이렇게 큰 오페라를 제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선친께선 정말 훌륭한 분이셨습니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유명 작가인 K씨와 뜻을 모아 지리산 달궁에서 6.25때 지리산에서 죽은 수많은 빨치산들을 위해 진혼제를 올린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L씨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진혼제에 참석한 분들 중엔 과거 빨치산도 있고, 그 자손들도 있었는데요. 그 수많은 만장깃발에 적힌 망자의 이름들 중에 딱 한 사람 빨치산이 아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게 누군 줄 아십니까? 바로 차일혁 경무관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차일혁 경무관의 만장깃발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빨치산이 빨치산 토벌대장의 만장깃발을 들고 빨치산 진혼제를 온단 말인가. L씨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아 만장깃발을 든 노인에게 직접 물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노인은 큰 소리로 오히려 역정을 내며 “그 분은 다 같은 빨치산 토벌대장이 아니었습니다. 내 생명의 은인이란 말입니다”라고 말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다른 빨치산 토벌대에 투항하면 자칫 심한 고문을 받아 불구가 되거나 목숨을 잃는 데 반해 차일혁 경무관의 토벌대에 투항하면 대부분 살아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그 고마움에 그는 평생 차일혁 경무관을 가슴에 품고 살았고, 오늘 같은 진혼제에 빨치산의 이름 대신 차일혁 경무관의 만장깃발을 들고 나오게 됐다고 한다. L씨는 그 날을 회상하며 차일혁 경무관을 존경하는 많은 분들에게 감동적인 무대를 보여주시기 바란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6.25 전쟁 중 지리산을 중심으로 빨치산 토벌작전이 한창일 때 차일혁 경무관의 회유로 전향한 빨치산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생업에 종사하거나 전투경찰이 되어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 김명주다. 김명주는 당시 반공포로 출신으로 편성된 6.18부대의 대장으로, 북에 있을 때 ‘민주조선’의 부주필을 지낸 사람이었다. 차일혁 경무관은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을 안타깝게 여겨 치안국에 그를 적극 추천을 하였다. 그는 후에 김창순으로 이름을 바꾸고 북한연구소 이사장이 되어 북한학을 정립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국내 북한학 연구의 시작은 바로 선친과 김명주의 합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때 빨치산에 관한 책들이 붐을 이룬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사실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만의 모임에서는 누가 진정 자신에게 손을 내밀었는지, 동족상잔의 혼란기에 누가 진정 영웅이었는지 만장을 들고 외쳤던 것이다. 선친께서는 비록 짧은 생을 살다 가셨지만 많은 이의 가슴에 남아계셨다. 지난 59주기 기일, 나는 선친을 위해 지었던 헌사(獻辭)를 다시 꺼내어 한 줄 한 줄 읽어나갔다.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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