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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아이돌학교', 희망이 없다

입력 : 2017-07-24 09:31:22 수정 : 2017-07-24 09: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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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이 정도로 콘셉트가 엉망인 방송프로그램도 또 없었다. CJ E&M의 새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학교’ 얘기다. 그 탓인지 벌써 시청률 측면에서도 문제가 생겼다. 지난 20일 방송된 ‘아이돌학교’ 2화 시청률은 1.2%(M.net과 tvN 합산, 닐슨코리아)로 2.3%를 기록한 1화에 비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지난해 1.0%로 시작해 2화에서 1.6%로 뛴 ‘프로듀스 101’ 시즌1의 정반대다. ‘프로듀스 101’은 이후 일시하락을 겪어도 전화대비 0.1%p 이상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돌학교’ 향후는 다분히 비관적이다.

물론 그간 유사프로그램이 우후죽순 등장했던 터라 시청자들이 싫증을 느낀 탓이란 해석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식이라면 1화의 2.3% 시청률 선방이 설명이 안 된다. 3일 온라인 TV화제성 분석회사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의 비드라마 부문 화제성 순위에서도 ‘아이돌학교’는 ‘쇼미더머니 6’에 이어 2위에 올라있었다. 결국 ‘아이돌학교’ 추락은 트렌드 피로도 문제라기보다 프로그램 자체 결함 탓에 일어났다 보는 게 옳단 얘기다. 특히 뭘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않은 1화 직후 추락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아이돌학교’는 처음부터 ‘학교’ 콘셉트를 강하게 밀고 갔다. 교장과 교직원도 있고, 교육방침과 커리큘럼도 있으며, 교가, 교무까지 있다. 거기다 진짜 교육기관처럼 ‘걸그룹 육성 프로젝트’란 개념을 붙였다. 오로지 ‘교육’을 통한 ‘육성’이 주된 목적이란 식이다. 그래서 입학시험에서 춤과 노래 실력도 조건에서 빼고, 아예 연예기획사 현 연습생들도 제외시켰다.

그런데 기묘한 건, 그러면서 또 여기서 최종 9명 안에 들어가는 학생들에겐 ‘바로 데뷔’를 약속했단 점이다. 가장 비상업적 목적처럼 보이는 육성 중심 면모와 가장 상업적인 실제 데뷔 걸그룹 입성. 이 두 가지 전제가 서로 연결될 리 없다. 더군다나 이번엔 ‘프로듀스 101’이 배출한 I.O.I.처럼 기한한정 반(半)데뷔도 아니라 ‘진짜’ 데뷔다. 당연히 같은 조건에서 훨씬 유리한 기존 연습생들이 회사를 그만 두고 들어올 게 눈에 빤히 보이고,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이렇듯 방송시작 전부터 이미 콘셉트 모순과 그에 따른 편법이 발생해버렸다.

그러다 막상 1화가 시작되고 보니, 춤과 노래 실력을 입학조건에서 뺀다는 취지도 무색해졌다. 1화부터 춤과 노래 평가가 바로 시작됐다. ‘교육’이 아니라 ‘평가’부터다. 그 과정에서 심적 부담을 느낀 학생 2명은 벌써 학교를 떠났다. 뒤이은 2화에선 모든 학생이 끝까지 교육과정을 수료하게 될 것이란, 그나마 유일하게 ‘학교’답던 콘셉트도 깨졌다. 2주 뒤 성적하위 학생 8명은 퇴교 조치시킨단 공지가 나왔다. 곧바로 ‘공부 못한다고 퇴학시키는 학교도 다 있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더니 군무 연습 중 뒤편에 선 학생이 대열구성에 의문을 제기하자, 갑자기 군무에선 팀워크가 중요하다며 오히려 이를 나무라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 함께 데뷔하게 되는 한 팀이라면 맞는 얘기다. 그러나 이건 경쟁이고, 군무 앞줄에서 조금이라도 더 얼굴을 비칠 수 있어야 시청자 투표를 얻어 순위가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모든 게 다 앞뒤가 맞질 않는다. 그냥 상업적 데뷔 프로젝트인데도 우린 육성기관이란 콘셉트, 실력 필요 없고 가능성만 중요하다면서도 그 가능성을 방송기간 11주 내에 바로 데뷔가 가능할 정도 실력으로 증명하라는 교과과정, 경쟁인 데도 경쟁이 아니라 팀워크라며 나무라는 교사. 대체 이런 미치광이 같은 프로그램이 과연 또 있었을까 말이다.

물론 어쩌다 이토록 황당한 기획이 이뤄진 건지 어느 정도 예상이 안 가는 건 아니다. 모든 건 CJ E&M 전작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이 낳은 걸그룹 I.O.I. 탓일 가능성이 높다. 출중한 각 연예기획사 연습생들을 모아 딱 1년만 기한한정 걸그룹을 선보인 뒤 도로 각 기획사로 돌려보내겠단 프로젝트. 그 자체론 방송사나 기획사나 모두가 윈윈인 기획이었다. 문제는 이 I.O.I.가 ‘지나치게 떠버렸단’ 점이다. 지금도 그대로 계속 활동했더라면 현재 절대 원톱인 트와이스와 함께 한국 걸그룹 투톱 체제를 이뤘으리란 예상이 많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이번엔 아깝게 해산시켜야 하는 기한한정 걸그룹이 아니라 ‘진짜’ 걸그룹을 만들어야겠단 발상이 나왔을 수 있다. 그런데 그러려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에겐 소속사가 없어야 한다. 그럼 또 왜 소속사가 없어야 하는지 명분이 필요하다. ‘우리’가 진짜 데뷔시키려고 하니 다 정리하고 와야 한다? 그런 사업적 판단을 프로그램에서 액면 그대로 내비치느니, 좀 더 ‘착해 보이는’ 콘셉트를 잡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을 수 있다. 이건 ‘육성 프로젝트’이고 ‘교육기관’이며, 그런 탓에 모두에게 기회를 열어주느라 입학 문턱을 크게 낮추기 위해 그랬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또 거기서 한 번 거르긴 해야 하니 입학조건으로 ‘예뻐야 한다’는 뉘앙스를 주고, 교가도 ‘예쁘니까’란 노골적인 제목으로 맞췄다.

이게 바로 ‘아이돌학교’란 이름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기획, 그만큼 황당한 진행방식을 지닌 프로그램의 탄생배경이었을 수 있단 얘기다. 이러니 1화부터 학생 입에서 “춤이랑 노래 안 본다며?”란 푸념이 튀어나오고, 교사들 역시 점점 헷갈려한다. ‘학교’는 이미 완성된 한 단체다. 아이돌로 치면 이미 데뷔한 그룹이다. 그러니 단합이 중요하고 팀워크가 필요한데, 이 학교는 사실 완성되지 않은, 여기서 계속 경쟁을 통해 추려나가야 하는 오디션장이다. 이렇게 어질어질한 조건이니 정작 문자 투표를 던져 9명을 선발해야 할 시청자들도 뭐가 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집중이 안 되니 호응도도 떨어지고 시청률도 함께 떨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지 않아도 됐다. 그냥 ‘진짜’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란 캐치프레이즈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모든 게 다 ‘프로듀스 101’과 똑같아도 바로 그 최종목표 측면에서 확 다르면 다른 모든 것들도 다 다르게 보인다. 특히 I.O.I.를 지지하던, 그리고 그들을 아쉽게 떠나보내야 했던 수많은 팬들 입장에선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가슴 아픈 ‘강제해체’ 없이 온전히 그 탄생부터 함께 만들어나가 향후 활동을 보장해줄 프로그램, 그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여기서 불필요하게 속내를 감추고, 뭔가 색다른 콘셉트라도 하나 더 얹기 위해 내민 ‘학교’ 시스템은, 일단 그 자체로도 실현되기 어렵고, 프로그램이 진행될수록 더 많은 딜레마를 낳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무엇보다 이런 식 눈 가리고 아웅 쇼, 오디션을 오디션이라 부르지 못하고 경쟁을 경쟁이라 부르지 못하는 ‘무늬만 착한 학교’ 쇼에는 이제 어린아이들조차 속지 않는다. 아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세상이 치열하고 잔인한 경쟁사회란 것쯤 초등학교 시절부터도 다 파악하며 산다. 그리고 그런 치열함 속에서 결국 원하던 것을 성취해내는 과정, 그 승리자들에 대한 인정과 존중심도 다 갖고 있다. 마찬가지로 패자부활에 대한 개념도 다 있다. 굳이 그렇게 인본주의적 이미지, 개인의 이익보다 전체에 대한 배려 같은 이상화된 형태의 판타지를 여기서 안겨줘야 할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아무도 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그건 너무 비정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쇼가 되지 않겠냐고? 애초 그게 왜 문제인지도 모르겠지만, 대중이 선호하는 공동체적 결속과 유대감 쇼로 상업성을 확보할 요량이었더라도 굳이 ‘아이돌학교’ 같은 식으로 갈 필요는 없었다. 참가자들 간 공동체적 결속과 유대감은 프로그램에서 예쁘게 포장하거나 억지로 유도해 보여주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 다 알아서 발휘한다. 개개인 스스로의 고충과 번민을 덜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서로 정서적으로 연대해 인간미를 발휘하며 함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나간다. 프로그램 제작진이 아직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게 바로 ‘학교’라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우린 모두 거기서부터 인간을 믿고 세상과 조율하는 방식을 배워왔다.

물론 그렇다고 대중에 꿈을 선사하는 대중문화산업에서 늘 비정한 현실논리만 보여줘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여전히 먹히는 푸근한 판타지 지점은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M.net에서 2015년 방송한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 ‘SIXTEEN’과 거기서 배출된 걸그룹 트와이스 사례다. ‘SIXTEEN’은 ‘아이돌학교’와 똑같은 ‘바로 데뷔’ 목표였기에 그 오디션 과정이 더없이 냉혹했고, 시청자들 역시 목표가 목표니만큼 그런 냉혹성에 상당부분 동의해줬다. 그러나 일단 데뷔한 뒤부터 트와이스는 늘 멤버들끼리 여유롭고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만을 공개하고 있다. 마치 그렇게 마냥 즐겁게 노니는 것이 팀워크 향상으로 이어지고, 결국은 팀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진다는 듯이. 그 속의 치열한 노력, 어쩌면 오디션 과정보다 더 피 말릴 분투 과정은 생략해버린다.

물론 크게 보면 인생 전체가 오디션 과정에 가깝다는 것, 웬만한 중장년 성인이라면 다들 이해한다. 그러나 아이돌 주 소비층인 10~20대는 여전히 사회가 요구하는 몇몇 관문만 통과하면 훨씬 편하고 안락한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믿고 있다. 아니, 어떻게든 그렇게 믿고 싶어 한다. 그런 희망조차 없다면 지금의 고통을 감내할 동력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대중에게 선사해줘야 하는 것이다. 이게 바로 판타지가 먹히는 지점, 대중이 진정으로 판타지를 필요로 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대중문화산업은 그렇게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현실과 판타지 사이 가늘고 붉은 선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어야 시장에서 온전히 기능할 수 있다. 어쩌면 이에 대한 이해과정이야말로 대중문화산업 참여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할 진정한 ‘아이돌학교’일 수도 있겠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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