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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24. 손없는 달 '윤달'

입력 : 2017-07-23 19:10:33 수정 : 2017-07-23 19: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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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유성 후암선원에서 템플스테이가 있었다. 매년 하는 행사이지만 올해도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를 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동네 사람들 여러 명이 삽과 장비를 들고 산에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궁금해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이장을 하러 가는 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윤달이다 보니 요즘 이장을 하는 분들이 많은가보다. 윤달에는 하늘도 눈을 감아준다는 속설 때문인가.  

윤달이 되면 장례업과 건축업 종사자가 제일 바쁘다. 전통 태음력상 책력과 계절의 일치를 위해 19년 동안 7번 들어있는 음력 윤달을 ‘덤으로 있어 모든 일에 부정을 타거나 액이 끼지 않는 달’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윤달에는 묘 이장, 수의 제작, 집수리 등 주문이 늘어난다고. 실제로 윤달에는 수의 판매량이 늘어나고 이장 문의가 꾸준하다. 또한 사찰에서도 윤달을 맞아 천도재와 예수재 등 각종 불교의식을 올릴 준비로 바쁘다.

오래 전 윤달로 예정했던 선산의 조상 산소 정리 문제로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장을 앞두고 갑자기 아내가 병원에 입원했다며 한숨을 쉬었다. 아내가 샤워를 하던 중, 욕조 바닥에 미끄러져 코뼈가 주저앉는 사고가 생겼다. 병원에서 안정을 취한 뒤 수술을 받았는데 의사 말이 ‘잘못하면 뇌진탕이 됐을 수도 있었다’는 것. 그는 순간 다음 달로 예정된 선산 정리 문제가 떠올랐다고 한다.

선산에는 이름 모를 조상님의 산소가 다수 있었다. 오랜 세월 제대로 보살펴주는 후손이 없어 봉분이 무너지거나 풀잎만 무성한 산소들을 보고 고민을 해오다 산소를 방치하느니 잘 정리해 혹 유골이 남아있으면 곱게 화장해 가족 납골당에 모시고, 없을 시에는 위패만 모시는 방법을 고려 중이었다. 마침 다가오는 윤달에 거사를 벌이겠노라 결심한 뒤 업체에 의뢰한 상태였다. 그런데 윤달을 앞두고 부인이 입원을 하니 여간 심란한 게 아니었다. 또 얼마 전에는 부친이 이상한 꿈을 꿨다며 털어놓았다. 큰 호랑이가 나타나 선산을 지키며 어슬렁거리더라는 것. 어머니 역시 조상님이 나타나 호통 치는 꿈을 꾸었다며 이장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권했다. 그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어 나를 찾아와 구명시식을 청했다. 그런데 구명시식 후 그의 결심은 180도 바뀌었다. 그가 생각했던 ‘이름 모를 산소’의 주인인 조상님 영가들이 나타나 후손의 부족한 생각을 나무란 것. 영가들 말이 ‘아무리 버려진 산소라 해도 영가들 생각은 그렇지 않다. 비록 몸은 썩어 없어져도 강력한 염이 남아 그 생을 잊지 않게 해 준다’고 했다.

몸은 영가가 오랫동안 살았던 이생의 집이다. 비록 죽어 정든 집을 떠나도 마음은 항상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집주인이 없다고 함부로 집을 태우거나 옮겨버리면 영가로서는 매우 화나고 섭섭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어떻게 하든 윤달에 닥칠 대규모 이장을 막기 위해 조상들이 힘을 모아 후손에게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다. 그는 조상님께 마음속으로 백번 사죄하고 무릎 꿇어 용서를 구했다. 의식이 모두 끝나자 그는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며 웃음 띤 얼굴로 선원을 나섰다. 며칠 후 부인이 병원에서 퇴원해 예전처럼 생활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화가 복이 된다고 하던가. 그는 남들이 걱정할 정도로 큰 규모로 사업을 벌여 한동안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구명시식 후 풀리지 않던 일들이 한꺼번에 진행돼 성공 고지를 향해 가파르게 행진 중이다. 윤달에 이장을 서둘렀으면 큰 화를 당했을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불길한 징조를 미리 알고 잘 처신해 조상의 음우로 사업까지 승승장구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급적 산소는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 도시계획상 어쩔 수 없이 이장해야 할 때와 천재지변 또는 산소가 유실될 때 외에 후손의 이기적인 생각으로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좋다. 오죽했으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겠는가.

(hooam.com/ whoiamtv.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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