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속편은 한국 영화의 미래다

입력 : 2017-07-10 16:23:39 수정 : 2017-07-10 16:23:39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한국영화계에 ‘속편 러시’가 일고 있다. 먼저 얼마 전 김지원을 추가 캐스팅한 ‘조선명탐정 3’가 있다. 8월 크랭크인해 내년 설 개봉 예정이다. 이어 2009년작 ‘전우치’와 2015년작 ‘탐정: 더 비기닝’도 속편 기획에 들어간 상태다. 2014년 무려 866만6208명을 끌어 모은 ‘해적: 바다로 간 산적’도 속편 제작이 언급되고 있다. 지금껏 5편까지 나온 ‘가문의 영광’ 프랜차이즈도 6편 제작을 선언하고 아이디어 공모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가장 최근엔 2013년 716만6513명을 동원한 ‘베를린’ 속편도 다시 한 번 거론되는 실정이다.

물론 저 중에서 크랭크인이 임박한 ‘조선명탐정 3’를 제외하곤 몇 편이나 제대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지 미지수이긴 하다. 그동안에도 속편 ‘계획’은 많았다. ‘괴물 2’도 ‘미녀는 괴로워 2’도 있었다. 심지어 ‘광식이 동생 광태’까지 속편이 거론된 바 있다. 그러나 그중 실체화된 경우는 없었다. 그만큼 한국영화산업에서 속편 제작이란 무척이나 까다롭고 복잡한 문제란 얘기다. 실제로 속편 나온 영화 세어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다. 영화선진국들 중에선 가장 적은 급에 속한다. 날이면 날마다 속편을 찍어내는 할리우드와는 비교할 것도 없다.

사실 영화산업에서 속편이란 꽤나 중요한 개념이다. 안정적 흥행의 대명사와도 같은 개념이기 때문이다. 홈비디오 시장이 완성되지 않았던 1980년대 할리우드에서도 3부작 기준 흥행수치는 차례로 10:6:4라는 공식이 존재했다. 1편이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면 2편은 600만, 3편도 400만까진 기대할 수 있다는 공식이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와선 오히려 속편이 전편보다 더 많은 관객을 부르는 사례들도 생겨났다. ‘터미네이터’ ‘오스틴 파워’ ‘미이라’ ‘러시 아워’ 등등 예는 워낙 많다. 전편을 극장이 아닌 홈비디오나 케이블TV 등 2차시장에서 보고 만족한 관객층이 속편이 나오면 극장관객으로 더 붙었기 때문이다.

이런 속편들은 흥행사업 특유의 도박성을 극단적으로 줄여주고, 그만큼 원활하고 안정적인 자본흐름을 도와 산업 기틀을 탄탄히 굳히고 시장을 증폭시키는 데 혁혁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런 기반을 바탕으로 영화산업은 더욱 대범한 도전과 산업체질 자체의 이노베이션을 꾀할 여유를 얻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위 언급했듯, 유독 한국영화계에선 속편이 등장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영화시장에선 속편이 인기가 없어서? 그렇지도 않다. 당장 할리우드 영화들만 해도 ‘미션 임파서블’ 프랜차이즈 등 오히려 속편이 전편보다 더 많은 관객을 모으는 사례들이 수도 없다. 수퍼히어로 영화들 역시 마찬가지고, 마이너시장에서 활약하는 일본 애니메이션들도 절대 속편이라고 불리한 모습이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대체 왜 이 흔하디흔한 속편이 한국영화에 있어서만큼은 좀처럼 나오질 못하는 걸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광경이 맞고, 그만큼 이에는 여러 원인들이 차곡차곡 중첩돼있는 상태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한국영화 자체의 콘텐츠 내적 속성을 들 수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파국형 결말을 유난히 즐기는 한국관객 취향이다. 해외영화, 특히 할리우드 영화들에선 온전히 현실도피적 판타지를 찾지만, 자국영화에선 지극히 리얼리즘을 추구하며 상당부분 사회파적 시각까지도 요구하는 게 한국관객 취향이다. 이에 적응하려다 보면 당연히 극의 흐름은 파국형으로 치닫게 된다. 패배, 절망, 좌절 등 부정적 감정에 기반한 카타르시스를 유도하는 방식이 그런 요구에 잘 들어맞기 때문이다. 한(恨)의 민족이란 게 다른 게 아니다. 주인공이 결국 죽는 설정은 한국에선 하나의 흥행코드다. 이런 극단적 설정이 소위 1000만 영화에서조차 수없이 등장한다. 거기까진 아니더라도, 어찌됐건 더 이상 얘기를 진전시켜볼 수 없는 ‘대단원’까지 가 카타르시스를 폭발시키는 구조가 시장 중심이다. 속편이 나올 법한 ‘말랑한’ 얘기들은 애초 큰 인기가 없다. 그러니 당연 속편도 없다.

또 하나 콘텐츠 내적 특색은, 한국영화의 오랜 캐릭터성 희박 부분이다. 속편의 기반은 캐릭터다. 록키, 람보 시절부터 스파이더맨, 옵티머스 프라임까지 속편은 온전히 캐릭터에 기반해 만들어지는 게 상례고, 또 그게 성공공식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에선 강한 캐릭터성을 띤 영화를 찾아보기가 무척 어렵다. 인물 그 자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상황 속의 인물’을 그려내는 일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론 한국영화의 사회파적 경향이 낳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캐릭터가 전체를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배경과 설정의 ‘영향 아래서만’ 캐릭터가 기능하도록 설계된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공공의 적’의 제대로 된 속편, ‘강철중: 공공의 적 1-1’이 등장했을 때 ‘한국서 보기 드문 캐릭터 영화’여서 속편이 나왔다는 설명이 붙었을까 말이다.

이 같은 경향은 비단 영화만의 문제도 아니다. TV드라마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한국에선 미국 등지처럼 특정 캐릭터들이 매회 다른 상황에 처해져 새롭게 얘기를 끌고 나가는 시추에이션 형식 드라마를 찾아보기 무척 보기 힘들다. 시트콤 혹은 지금은 사멸한 농촌드라마 정도에서나 등장하던 형식이다. 한국 TV드라마는 특정 배경과 설정 ‘하에서의’ 캐릭터들을 그린 뒤 배경과 설정에 기인한 갈등요소가 해소되면 캐릭터의 역할도 끝나버리는 텔레노벨라, 즉 연속극 형식이 주류다. 이렇듯 전반적으로 ‘캐릭터극’ 개념 자체가 희박한 환경이다 보니 캐릭터극 기반이 확고한 곳에 비해 ‘속편’이란 개념도 제대로 성립되기 어려운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영화계에서 드물게 등장하는 속편들도 사실상 해외 기준으론 속편이라 보기 어려운 것들이 넘쳐난다. ‘여고괴담 2’ ‘공공의 적 2’ ‘국가대표 2’ ‘동갑내기 과외하기 2’ ‘주유소 습격사건 2’ 등은 해외에선 그 어떤 의미로건 속편이라 불릴 수 없다. 상식적으로 전작과 ‘소재’와 ‘배경’ ‘코드’ 상으로만 일치점이 있다고 해서 속편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건 그냥 ‘유사영화’ 혹은 ‘아류작’이다. 그 이전에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미워도 다시 한 번’ 시절엔 그냥 리메이크에 ‘속(續)’이란 단어를 붙여 내보냈다. ‘애마부인’ ‘산딸기’ ‘뽕’ ‘빨간앵두’ 등등 1980년대 에로영화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애당초 ‘속편이 아닌 것을 속편이라 불러온 전통’이 진하게 남아있단 얘기다. 그만큼 속편 그 자체에 대한 개념도 극히 흐려져 있는 상황이라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결국 한국에서 속편은 실질적으로 제대로 된 속편 기능을 하지 못하는 속편, 오히려 위험부담이 오리지널만큼이나 큰 ‘속편 아닌 속편’이 돼버렸다. 그저 창작적 수고를 덜기 위한 안일한 기획의 상징이 됐을 뿐이다. 할리우드 영화 속편을 연상하며 극장을 찾은 관객을 ‘속이는’ 기획이다. 그러니 흥행타율은 할리우드 영화 속편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떨어졌고, 그렇게 속편 기능 자체도 무색해져 갖가지 기묘한 부차상황들을 낳았다.

한국영화산업에서 히트작 속편에 전편 주연진이 제대로 출연하는 경우가 드문 이유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언급했듯, 속편의 목적은 상업성 확보다. 그럼 그런 속편에 출연하는 배우 입장에서도 같은 목적이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게 아니라면 뭣 하러 자기 이미지만 굳어질 속편에 무리해서 출연하겠느냔 말이다. 결국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돼있는 속편은 그 주연진들에 전편보다 많은 출연료를 지불함으로써 기획을 성사시킨다. 할리우드 배우 다니엘 크레이그의 경우 007 제임스 본드 역으로 출연할 때와 그밖에 다른 영화들 출연할 때의 출연료 차이가 7~8배까지 난다.

그런데 이미 위와 같이 ‘속편 아닌 속편’들이 시장에 난무해 갖가지 실패사례들을 낳다보니 지금은 속편 흥행에 대한 기대수치 자체가 크게 떨어진 상태다. 그럼 당연히 기존 주연진들에 지불할 출연료도 높게 책정되기 힘들다. 이러면 배우 입장에서도 굳이 속편에 출연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언제라도 다른 출연작을 잡을 수 있는 잘 나가는 배우라면 더더욱 그렇고, 그렇지 않은 배우라면 애초 속편 기획 자체가 어렵다. 그렇게 ‘상식적인 속편’은 또 다시 물 건너가는 것이다.

일단 ‘조선명탐정’이 무사히 3편까지 제작에 들어가게 된 데 대해 격려를 보낸다. 한국영화산업 입장에선 전례 없던 괴수영화, 자연재난영화, 좀비영화 도전하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다. 그간 한국영화산업에서 3편까지 같은 주연진이 같은 캐릭터로 함께 한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가문의 영광’ 프랜차이즈도 1편에서 2편으로 넘어가며 한 차례 주연진이 바뀌었고, ‘두사부일체’도 3편에서 캐릭터가 싹 바뀌었다. ‘공공의 적’은 총 3편이 나왔지만 그 중 2편은 배우는 같은데 캐릭터는 바뀐 ‘무늬만 속편’이었다. ‘조선명탐정’처럼 같은 주연진이 같은 캐릭터로 온전히 3편을 함께 한 경우를 찾으려면, 1990년대 초반 ‘장군의 아들’ 프랜차이즈까지 거슬러 돌아가야 한다.

물론 이런 얘기들이 거론될 때마다 늘 등장하는 게 속편 그 자체를 일종의 저열한 장삿속 정도로만 생각하며 폄하하는 기이한 풍토다. 나아가 거기서부터 시장괴멸의 단초가 마련된다는 도시괴담도 존재한다. 대부분 졸속 속편 제작을 일삼다 괴멸했다는 ‘한때나마 아시아의 할리우드’ 홍콩영화산업을 그 예로 들며 그런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모두들 오해하고 있는 게 있다. 홍콩영화산업은 졸속 속편 범람 탓에 괴멸한 게 아니란 점이다. 적어도 그게 원인점 그 자체였다 보긴 어렵다.

홍콩영화산업은 1990년대 내내 불법복제CD 범람과 산업 주축인력의 대대적 할리우드 수출 탓에 공동현상이 벌어져 괴멸했다. 그렇게 시장이 동력을 잃고 극단적으로 저하되다보니 울며 겨자먹기 식 자구책으로서 졸속 속편들이 ‘결과적으로’ 판치게 된 것뿐이다. 제대로 된 속편을 만들어낼 여력도 없었고, 또 시장에서 받아들여 줄만큼만 차근차근 속편을 내놓을 정신도 없었던 시장 상황이 문제였던 것이지, 속편 그 자체의 문제라고 보긴 무척 어렵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 속편을 쏟아내는 나라는 바로 영화의 메카 미국이다. 속편 많아서 망한 영화산업, 영화시장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그 반대 경우는 있을 수도 있을지언정.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