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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13. 돌아가신 어머니가 병풍을 세 번 쓰러뜨린 이유

입력 : 2017-06-14 04:40:00 수정 : 2017-06-13 18: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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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집에 하나씩은 갖고 있을 병풍. 원래 병풍은 바람을 막기 위한 용도로 쓰여 한자로도 ‘屛風’이라 했으나 때로는 제사나 가족 행사가 있을 때 병풍을 꺼내 사용했다. 그러기에 보통 병풍은 양면으로 제작됐는데, 한쪽 면에는 반야심경이나 탁본 등을 써 제사나 상을 당했을 때 사용했고, 다른 면은 꽃 자수나 십장생, 산수화를 그려 넣어 잔칫날 화려함을 더했다.

또한 병풍은 칸막이로도 사용돼 병풍 뒤쪽에서 여인네들이 비밀스럽게 옷을 갈아입는다든지 남의 눈에 띄면 안 될 것들을 숨겨놓곤 했다. 지금처럼 병원 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망자의 시신을 방 안에 안치하였는데, 그 때 역시 병풍을 사용했다. 병풍 너머로 잠들어 있을 죽은 자의 시신. 상주는 병풍 앞에서 시신과 함께 한 방을 쓰며 꼬박 하룻밤을 지새워야 했던 것이다.

이 때 병풍의 역할은 삶과 죽음의 경계다. 그러다보니 병풍 너머로 뜻하지 않는 일도 생긴다. 언젠가의 일이다. 한 상갓집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무슨 일인가하면, 노모가 돌아가시고 관례대로 노모의 시신을 방 안에 안치했다. 병풍을 쳐 놓고는 상주는 꼬박 방 안에서 밤을 새며 통곡을 하는데, 갑자기 병풍이 ‘푹!’ 하고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상주는 깜짝 놀라 병풍을 다시 세워놓고는 ‘혹여 바람이라도 드나’ 싶어 문단속을 철저히 했지만 방안 어디에도 바람이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고. 그는 다시 어머니의 시신을 지키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헌데 바로 그 순간, 또 다시 병풍이 쓰러지더라는 것. 상주는 병풍을 잘 세우고, 주위를 둘러봐도 병풍이 쓰러지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가 이상한 낌새를 차린 것은 세 번째 병풍이 쓰러지던 때. 그는 병풍이 쓰러지는 이유가 분명 어머니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영적으로 밝은 동네 어른을 찾아갔다.

“어머니의 시신을 안치한 방에 쳐 놓았던 병풍이 세 번이나 쓰러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고, 아주 튼튼한 병풍을 썼는데도 세 번이나 쓰러졌다는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까? 어르신, 꼭 좀 일러 주십시오.”

한참 동안 젊은이의 하소연을 듣던 그 어르신은 “망자가 관을 거부하는구먼. 앞장을 서시오”라고 말한 뒤 상주를 따라 상갓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에 들어와 병풍 뒤로 가서는 찬찬히 관을 살피더니 상주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르신은 조용히 어느 부위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게 뭔 줄 아나?” 상주는 한참을 바라본 뒤 말했다. “무슨 낫 자국 같습니다.”

그러자 그 어르신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네. 낫 자국이 아니라 바로 낫의 날일세. 관 자체는 좋은 나무이나 나무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모양이군. 낫날이 그대로 박힌 나무로 관을 썼으니 망자가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어서 장의사한테 가보게”라고 조언하는 게 아닌가.

그 즉시, 상주는 장의사에게 달려갔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의 관은 새로 짜게 됐고, 새 관에 입관을 하자 더 이상 병풍이 쓰러지는 일도 발생하지 않았다 한다. 죽은 자와 산 자의 경계에 섰던 병풍. 그 때의 병풍은 죽은 자에게는 마지막으로 산 자와 함께 방을 쓰는 대접을 받는 용도로 쓰인다. 그럼에도 병풍이라는 경계가 있어 삶과 죽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가시화시켜준다.

시어머니 영가를 초혼하고서 그동안에 쌓인 것을 푼다고 화풀이를 하다 사과로 이마를 얻어맞은 며느리가 있었다. 사과를 맞은 며느리는 오히려 시어머니 영가에게 다 던지라며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폴터가이스트 현상 때문에 다른 참관자들은 공포에 떨었지만 병풍으로 가려진 나는 웃음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병풍은 구명시식에서 필수요소다. 영가를 부르는 가족들과 영가와 대화하는 나와의 경계이며 정식으로 초대받은 영가와 초대받지 않은 영가와의 경계다. 동시에 산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병풍이 갖는 의미가 이러하니 제사용으로 사용하는 병풍이 너무 화려한 것은 아닌지 한번쯤 살폈으면 한다.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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