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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10. 세상의 진실은 함부로 말할 수 없다.

입력 : 2017-06-05 04:40:00 수정 : 2017-06-04 18: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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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진실을 말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 아닐 때가 있다. 특히 정치인이 하는 말은 더욱 그렇다. 입장이 바뀌면 말도 달라지는 것 아니겠는가. 이처럼 인간에게 객관적 진실이 과연 있을까. 어느 한 과학자는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이기적으로 프로그램된 유전자 기계’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인간은 생을 다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본성을 갖고 있기에 객관적인 과학자들조차도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영혼을 많이 접하는 나를 만나면 “영혼은 객관적이고 진실하겠죠?” 이렇게 묻곤 한다.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인생은 현생의 인연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상계야 눈속임이 있을 수 있지만, 영혼의 세계엔 속임수가 없을 것”이라고 추론하곤 한다.

동서남북을 인간이 정한 것처럼 자기가 서 있는 지점에서 방향이 결정되는 것이다. 어떤 인연도 시작이 무엇인가에 따라 과정과 결과가 달라진다 할 것이다. 그래서 구명시식을 하다보면 산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사실들이 적나라하게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

1951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은 ‘라쇼몽(羅生門)’이란 일본 영화는 인간이 아는 진실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해주는 수작이다. 산 속에서 시체로 발견된 한 사무라이의 사인에 대해 3명의 현장 목격자는 서로 다른 증언을 한다.

똑같은 살인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여인은 정절, 산적은 용맹함, 나무꾼은 금전 욕심에서 사건을 보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무당을 통해 초혼된 사무라이 영가마저 무사도의 입장에서 또 다른 진술을 한다. 진실은 점점 미궁에 빠진다.

이런 장면은 구명시식 현장에서도 자주 발생한다. K씨는 500만원을 가로채려는 J씨에게 살해당했다. 피살 혐의자 J씨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이승을 떠났고,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K씨의 동생이 살해된 형의 명복을 위해 구명시식을 올리는 자리였다. K씨를 초혼했지만 J씨 영가도 함께 나타났다.

“여긴 날 위한 자린데, 어딜 감히 나를 따라왔느냐?” K씨 영가가 분을 삭이지 못해 호통을 치자 J씨 영가는 “나도 사자밥 얻어먹으러 왔다, 왜. 뭐가 어째서 니가 참견이야!” 순간 그 자리에 동참했던 다른 가족의 할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팔을 휘두르고 난동을 부렸다. J씨 영가가 할머니에게 순간 빙의한 것이었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J씨는 뉘우침은 고사하고 죄책감은 커녕 되레 큰 소리를 쳤다. 죽어서도 따라다니며 괴롭히니 참으로 뻔뻔한 영가가 아닐 수 없었다. K씨 유가족들의 분노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이만하면 됐으니, 서로 화해하시는 게 어떻겠어요.” 내 말에 유족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피해자로서 사죄를 받아도 시원치 않은데, 가해자와 화해라니. 하지만 내 눈엔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피해자인지 가릴 수 없었다.

“이번엔 그냥 저만 죄인으로 물러설 수 없습니다. 생전에 K씨를 죽인 죗값으로 사형을 당한 가해자지만, 전전생(前前生)에 K씨는 저를 죽인 가해자였습니다. 다 되돌려 받은 것인데 왜 제가 여기 오면 안 되고 사죄해야 합니까?”

그랬다. J씨 영가 말대로 그 둘은 전생부터 악연이었다. 하지만 악연은 전전생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가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입장을 바꿔가며 악연을 거듭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악연의 고리를 끊고자 이승과 저승의 동참자들에게 서로 화해하기를 권한 것이었다.

우리가 만고의 진리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차이를 모르고서는 진실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진실이 있느냐 묻는다면 “세상에는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으며 그것이 진리요, 진실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hooam.com/ whoiamtv.kr)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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