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이문원의 쇼비즈워치] 칸국제영화제의 이용가치

입력 : 2017-06-01 10:54:05 수정 : 2017-06-01 11:22:10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제70회 칸국제영화제가 지난 28일(현지시간) 폐막됐다. 그리고 폐막식에서 발표된 수상작들 중 한국영화는 없었다. 경쟁부문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옥자’, 특히 홍상수 감독의 ‘그 후’가 수상권으로 지목됐던 터라 실망감은 더했다. 결국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스웨덴 영화 ‘더 스퀘어’에 돌아갔고, 2위격 심사위원대상은 프랑스의 ‘120 비츠 퍼 미닛’, 감독상은 ‘매혹당한 사람들’을 연출한 미국의 소피아 코폴라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 한 번 다시 돌아봐야 할 감독이 있다. 경쟁부문에 신작 ‘히카리’가 올랐던 일본의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다. 그녀의 수상불발이 안타까운 일이어서가 아니다. ‘히카리’는 이번 영화제 중 가장 혹평 받은 경쟁부문 진출작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소 엉뚱하지만, 일본 언론이 영화제 내내 가와세 감독에게 ‘전혀’ 주목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다.

가와세 감독에겐 애초 아무런 수상기대를 하지 않아서? 그녀의 전력을 돌아보면 그럴 성 싶진 않다. 놀랄 만한 일이지만, 21세기 들어 일본영화감독 중 세계3대영화제 경쟁부문에 가장 많은 영화를 진출시킨 이는 미이케 다카시도 기타노 다케시도 아닌 바로 가와세다. 3대영화제 중 칸에만 영화를 보냈는데, 무려 5번이나 경쟁부문에 올랐다. 거기다 2007년작 ‘너를 보내는 숲’은 심사위원대상까지 수상했다. 칸이 애지중지 키우는 ‘칸의 자녀’ 중 한 명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일본 언론은 그녀를 가히 투명인간 취급했다.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해외영화제 단골초대 감독 영화는 근본적으로 대중성이 떨어지는 게 맞다. 그러니 상업적으로 성과를 내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한국 같은 경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평계에선 늘 그런 감독들 영화에 주목하고 상도 준다. 그러나 가와세는 지금껏 일본 비평계에서 제대로 취급받아본 적이 없다, 이렇다 할 국내 주요영화상에서 상을 타본 적도 없고, 권위 있는 키네마준보 연말 베스트 10에서도 늘 빠진다. 그러니 그녀는 실질적으로 일본대중에게 ‘무명’이다. 웬만한 마니아층이 아니고선 이름 아는 이가 거의 없다.

이처럼 극단적인 일본 언론과 비평계의 가와세 홀대는 이유가 단순하다. 칸 등 해외유수 국제영화제를 바라보는 일본 언론과 비평계의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은 자국영화산업 향방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게 됐다. 1950년대 상황, 즉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이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타면서 전 세계에 일본영화 존재와 위상을 알린 시점과는 전혀 다르다. 당시엔 구로사와 수상이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일본영화 자체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일본영화의 세계 각국 시장 진입을 견인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혀 딴판이다. 해외영화제 수상은 그저 영화작가 개인의 영광일 뿐이고, 엄밀히 말해 그 영광조차 예전에 비해선 크게 빛이 바랬다. 영화에 관심 있다는 사람들조차 당장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 수상작이 뭐였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니 언론도 관심을 잃고, 비평계 역시 굳이 수상결과에 맞춰 자국 내 비평적 흐름을 적응시킬 이유를 못 찾는 것이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사실 단순하다. 각종 해외영화제 수상은 1990년대 초엽까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광고탑 역할을 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을 무렵, 광고에 적힌 수상경력은 그 자체로 ‘좋은 영화’라는 검증마크처럼 기능했다. 비평가들의 긴 문장보다 훨씬 간명하고 인상적인 홍보가 됐다. 그런 식으로 각 영화제의 성격이 정해져 각기 다른 관객층을 불러 모으는 광고탑이 설정됐다.

이 모든 게임의 룰이 바뀐 건 1990년대 중후반 인터넷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수많은 비평가들, 블로거들 평가가 인터넷공간에 널리면서 자기 취향과 잘 들어맞는 이들이 들려주는 얘길 골라서 볼 수 있게 됐고, 곧이어 다수 대중의 의견이 총합된 인터넷 영화평점도 등장했다. 영화상은 이제 대중의 영화관람 가이드 차원에서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영화 포스터에 적힌 수상경력은 오히려 점점 부담스러운 마크가 돼갔다. 사실 따지고 보면 기껏 10명 남짓한 심사위원들이 모여 내린 결과가 뭔가를 대표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상한 것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결국 영화사에 남게 되는 걸작도 점차 영화제 수상작과는 다른 맥락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이전까진 ‘상을 탄 영화가 걸작이 되는’ 톱다운 순서였다면, 인터넷 시대엔 수많은 세계대중이 주목한 영화가 걸작이 되고 영화제에서도 바로 그런 영화의 감독들 신작을 모셔오는 바텀업 순서로 바뀌었다.

그럼 이제 칸을 위시로 한 국제영화제들 존재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저 미국을 제외한 세계 각국 영화들의 ‘마켓’으로서 의미만 남았다. 그리고 그 마켓의 힘으로 아직까지 버텨오고 있다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시상결과는 오히려 여흥 격 추임새가 돼가고 있다.

가와세 나오미 감독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 일본 언론에서 이번 칸국제영화제에 전혀 주목하지 않은 건 아니다. 경쟁부문에 오른 ‘히카리’가 주목대상이 아니었을 뿐이다. 일본 언론 관심은 모조리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미이케 다카시 감독, 기무라 타쿠야 주연의 만화원작 영화화 ‘무한의 주인’에 쏠려있었다. 기무라의 스타성 탓이기도 했지만, 엄밀히 말해 해외 마니아층 인기를 한 몸에 모으고 있는 미이케 감독 신작 쪽이 마켓 차원에서 훨씬 기대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일본영화가 ‘실제로’ 해외에 알려지는 동력은 영화제 수상경력 같은 게 아니라 오직 마켓에서의 승부 차원뿐이란 점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칸국제영화제에서 빈손으로 돌아온 한국도 분명 마켓 차원에선 선방하고 돌아왔다.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세계 128개국에 판매됐고, 같은 비경쟁부문의 ‘악녀’는 136개국에 선판매된 데다 할리우드 리메이크 문의까지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옥자’는 넷플릭스 영화란 신개념을 홍보하는 데 꼭 필요한 ‘노이즈’를 만들어내 강한 존재감을 알렸다. 그 노이즈 효과는 곧 넷플릭스 측 수익으로 이어져 더 많은 한국감독들 기용을 도울 것이다.

그럼 마켓 외의 다른 의미는? 이 역시도 다시 한 번 가와세 나오미 감독 사례로 돌아가 볼 필요가 있다. 데뷔 후 십 수 년 간 3~4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들어오던 가와세 감독은 근 몇 년 새 1~2년에 한 편 꼴로 영화제작이 빈번해졌다. 일본 내 시장수익만으론 3~4년에 한 편도 버거울 정도지만, 칸국제영화제를 통해 이름이 알려지는 통에 유럽 각국 예술영화시장에서 제작비 일부를 지불, 짐을 덜었기 때문이다. 이번 ‘히카리’도 프랑스와 일본의 합작이고, 전작 ‘앙: 단팥 인생 이야기’는 프랑스-독일-일본 3개국 합작, 그리고 그 전작인 ‘소년, 소녀 그리고 바다’도 프랑스-스페인-일본 3개국 합작이었다. 어디건 예술영화시장이 폭발적 성장세인 곳은 없지만, 이름이 알려진 될성부른 감독 영화를 놓고 각자 시장에서 활약할 만큼만 백짓장을 나눠 들어도 제작은 훨씬 쉬워진다.

그러고 보면 이번에 안타깝게 수상이 불발된 홍상수 감독도 마찬가지 경우다. 그 역시 비경쟁부문에 출품한 ‘클레어의 카메라’는 프랑스와 합작이었다. 그동안 홍 감독의 열렬한 해외영화제 참석이 이런 식으로 결실을 맺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언젠가 수상에까지 이른다면 그의 영화제작은 가와세 감독만큼이나 손쉬워질 것이다.

결국 자국영화산업 향방과 밀접한 ‘장사’는 마켓에서, 그리고 영화인 개인 차원에서 향후 영화제작을 가능케 할 다국적 펀딩은 경쟁부문 수상이란 훈장을 통해, 이런 게 바로 현 시점 국제영화제의 주된 기능과 역할이란 것이다. 국제영화제는 분명 아직까진 충분히 이용가치가 있는 이벤트란 얘기이기도 하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해 이번 수상불발을 한스러워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영화제 자체의 의미를 폄하하고 무시할 필요도 없다. 아직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