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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쇼비즈워치] 마이클 무어의 컴백이 주는 교훈

입력 : 2017-05-18 09:36:04 수정 : 2017-05-18 09:3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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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신작 계획을 발표했다. 16일(현지시간) 할리우드리포터 등 외신에 따르면 신작 다큐멘터리는 지난해 당선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을 공격하는 내용이 될 전망이다. 제목은 ‘화씨 11/9’로 결정됐다. 2004년 사회문화적 현상을 일으킨 무어 본인의 다큐멘터리 ‘화씨 9/11’ 연장선상 제목이다. 11월9일은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날짜를 가리킨다.

신작에 대해 무어는 “여러분이 어떤 공격을 가하든 지금까진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어떤 사실이 폭로되든 그(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태연했다. 팩트, 증거, 두뇌로는 트럼프를 이길 수 없다. 실수로 자해행위를 해도 그는 다음날이면 멀쩡하게 일어나 계속 트위터를 하며 버틴다”면서 “하지만 이번 영화로 그 모든 것은 끝장날 것”이라 장담했다.

사실 이 같은 무어의 행보는 어느 정도 예상된 것이긴 하다. 그만큼 대선 직전까지 맹렬히 트럼프 공격을 이어간 인사도 많지 않았고, 또 대선 직전 트럼프 당선을 저지하려 직접 출연하는 스탠드업 쇼 ‘마이클 무어 인 트럼프랜드’를 제작해 방송에 뿌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제 트럼프 정권이 들어선 마당에 이를 확장시킨 장편 다큐멘터리 등장은 명약관화였다.

그런 점에서 정작 중요한 건 무어의 ‘예상된’ 행보 그 자체가 아니다. ‘화씨 11/9’를 놓고 언론들이 대대적으로 나서 ‘아주 오랜만에’ 무어를 주목하는 흐름이 오히려 주목거리다. 영화가 홍보되는 칸국제영화제 견본시부터 이미 난리가 났다. 소재가 된 도널드 트럼프가 그만큼 화제성 높은 인물이라서? 액면 그대론 그렇지만, 사실 이 같은 현상의 속성은 따로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마이클 무어란 인물의 면면과 기능, 역할과 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989년 데뷔작 ‘로저와 나’를 들고 혜성처럼 등장한 마이클 무어의 전성기는 2002년작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2004년 ‘화씨 9/11’, 그리고 2007년 ‘식코’까지 이어지던 시절이다. 이 시기 무어는 아카데미 최우수 장편다큐멘터리상을 수상(볼링 포 콜럼바인)하거나 후보(식코)로 올랐고,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화씨 9/11)을 수상하기도 했다. 반면 이후 발표한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나 ‘다음 침공은 어디?’는 비평적으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흥행성적으로 보면 전성기와 침체기 차이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전성기 땐 북미흥행 기준으로 ‘볼링 포 콜럼바인’ 2157만6018달러, ‘화씨 9/11’ 1억1919만4771달러(극장용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흥행기록), ‘식코’ 2454만70달러 등 다큐멘터리 대박라인 1500만 달러 선을 훌쩍 넘겼던 반면, 이후 ‘자본주의: 러브스토리’(‘09)는 1436만3397달러로 확 가라앉았고 뒤이은 ‘다음 침공은 어디?’(‘15)는 382만7261달러로 사실상 흥행에서 괴멸했다.

이처럼 극단적인 차이는 대체 어디서 비롯됐을까. 작품의 완성도 차이? 평가는 가지각색일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마이클 무어 영화 중 가장 완성도 측면에서 떨어지는 건 오히려 가장 큰 상을 타고 가장 높은 흥행성적을 거둔 ‘화씨 9/11’ 쪽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인터넷무비데이터베이스 평점 역시 5편 모두 10점 만점에 7.4~8.0 사이로 다 고만고만한 호의적 반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애초 최근 작품들에서 뚜렷하게 완성도가 떨어진 감독이라면 소재가 뭐가 됐건 그 신작이 이 정도 화제와 기대를 모은다는 게 이상하다.

그럼 이유가 대체 뭘까. 답은 단순하다. 그의 커리어를 정치적 시각으로 재편해 바라보면 이해가 쉽다. 그의 전성기는 정확히 조지 W. 부시 공화당 정권이었던 2001~2008년 사이였고, 반대로 침체기는 2009~2016년 사이 버락 오바마 민주당 정권 때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다시 주목을 받아내고 있는 현재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정권이다. 바로 이 같은 관점에서 비롯된 차이가 그의 커리어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잘 알려졌듯, 마이클 무어는 강한 사회주의 성향을 지닌 민주당 측 대표 공격수다. 그의 다큐멘터리는 노골적으로 민주당 편향적 색채를 띠며 공화당과 그 지지세력이 표방하는 가치 전체를 가열차게 공격한다. 때론 대범하게(?) 사실관계도 왜곡하고, 가지각색 조롱과 비아냥을 퍼부어대며 ‘패배한 민주당 지지자들’ 울분을 풀어줬다. 결국 그의 영화는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일종의 펀칭머신으로서 기능해 어마어마한 흥행을 거둘 수 있었단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문화비평계로부터도 강한 지지를 받아낼 수 있었다.

문제는 조지 W. 부시 정권이 끝나고 버락 오바마 정권이 시작되면서부터다. 정작 민주당에서 정권을 잡고 나니 그간 그의 영화를 소비하거나 띄워주던 이들 입장에서 이제 마이클 무어는 ‘필요 없는 존재’, 오히려 ‘부담스러운 존재’에 가까워졌다. 그런 식 무차별 공격수는 막상 지지정당이 국론을 통합해야할 수권세력이 되고 나면 존재가치가 크게 하락하고, 상당부분 평가절하 되기 마련이다. 거기다 스스로 만들어내는 콘텐츠 자체도 시시해졌다. 무차별 공격수일 때 주던 박력과 쾌감은 사라지고, 그저 정권에 너그러운 충고를 나직이 속삭이거나 아예 아부하는 수준까지 가버렸다. 사실상 프로파간다에 가까운 지점까지도 갔다. 그런 부분은 절대로 무어가 인기를 얻었던 셀링 포인트가 아니다.

필요 없고, 부담스러우며, 재미도 없는 다큐멘터리 감독. 그게 바로 민주당 집권 시기 마이클 무어였다는 것이다. 아주 기이한 스탠스, 즉 ‘민주당이 죽어야 자신이 사는 민주당 지지자’ 입장이 바로 마이클 무어 스탠스다. 그러니 무어 커리어에서 지금은, 악몽 같았던 민주당 집권 침체기가 드디어 끝나고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낼 공화당 정권이 이제 막 시작된 시점이라 봐야한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 시작부터 뜨거운 관심과 기대를 모아내고 있다.

이 같은 마이클 무어와 ‘화씨 11/9’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중문화계, 특히 정치와 연관된 대중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공급하는 특수시장이라면 더 그렇다. 결국 모든 종류 대중문화 흐름은 카운터컬쳐, 즉 기존 주류문화에 대항하는 형식으로 흘러가는 게 기본이다. 그런데 여기서 유난히 정치와 연관 깊은 콘텐츠의 경우, 문화 내적논리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저 당대 정권의 위치 차이가 곧 주류문화를 결정짓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모든 흐름이 이전과는 역으로 뒤바뀐다.

예컨대 오바마 민주당 정권에서 일어난 현상은 마이클 무어의 몰락만이 아니었다. 정반대, 공화당 지지 우익 다큐멘터리 득세도 동시에 가져왔다. 2012년 대선 시즌 공개된 오바마 공격 다큐멘터리 ‘2016 오바마의 미국’이 한 예다. 무려 3344만9086달러를 벌어들이며 ‘자본주의: 러브스토리’는 물론 ‘볼링 포 콜럼바인’과 ‘식코’ 기록마저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같은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미국’(‘14)과 ‘힐러리의 미국’(‘16)도 각각 1444만4502만 달러, 1309만9931달러를 벌어들이며 동시기 마이클 무어 영화를 4배 이상 스코어로 제쳤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한국만 해도 일베의 효시가 된 디시인사이드 내 우익 성향 이용자 급증과 그 문화전파는 상당부분 노무현 정권 시절 이미 완성돼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붐을 필두로 한 1990년대 초중반 젊은 층의 탈정치 및 문화적 개인주의 무드 역시 이미 대학가가 학내운동권의 정치몰입 및 집단주의 논리에 지배되던 상황에서 일어났다. 미국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서자 마이클 무어의 재기발판이 마련됐듯, 민주당 정권이 새롭게 들어선 한국에선 수면 아래로나마 그 정반대 흐름이 나올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다. 반대로, 그간 정치적 저격수 역할을 자처하며 난공불락처럼 보이던 정권을 공격해 호응을 얻어내던 몇몇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이제 고민에 빠질 때다.

무릇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된 문화예술계 흐름은 이처럼 갖가지 아이러니와 딜레마로 그득한, 기괴하기 짝이 없는 희비쌍곡선을 그려내기 마련인 것이다. 정치 그 자체가 온갖 종류 아이러니와 딜레마로 둘러싸인, 영원히 불가해한 테마이듯.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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