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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5-15 18:11:43, 수정 2017-05-15 19:10:51

경비원은 호구가 아닌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다

  • 최근 경비원의 우체국 택배와 등기 대리 수령을 법으로 정하려는 입법이 추진돼 논란이 일었지만, 결국 여론의 거센 반발에 부딪쳐 법제화가 무산됐다.

    우정사업본부는 지난해 10월 입법 예고했던 '우편법 시행령 개정안'의 일부 내용을 수정하기로 했다.

    원래 이 법안에는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수취인에게 우체국 택배나 등기 등 우편물을 직접 배달하지 못할 때 관리사무소나 경비실에 맡길 수 있는 근거가 담겼다.

    개정안은 관계부처 협의와 규제심사를 거쳐 법제처 심사까지 올라갔으나 최근 제동이 걸렸다. 뒤늦게 법안 내용을 알게 된 대한주택관리사협회 등이 민원을 제기했고, 국토부도 반대 의견을 냈기 때문이다.

    국토부 측은 "경비원의 업무에 우체국 택배 등의 수령 의무를 법으로 명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계약에 의해 택배 수령 등을 정식 업무로 했다면 모를까, 우편법으로 계약 외 일을 의무화하는 것은 경비원의 권익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과 달리 현실에선 대부분의 경비원들이 택배 대리 수령

    그러나 현실에선 거의 모든 경비원이 택배를 대리 수령하고 있다.

    만약 법으로 의무화 될 경우 택배 분실이나 파손 등 상황에 대한 책임을 경비원이 져야 한다.

    우체국 택배 수령이 의무화되면서 일반 택배도 자연스럽게 경비원이 책임지고 챙겨야 할 업무가 될 수 있다고 주택관리업계는 우려했다.

    논란이 일자 우정사업본부는 결국 문제가 된 부분을 시행령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등 잡무, 경비원의 당연한 업무 아냐

    지난 2014년 아파트 경비원의 분신 자살 사건 이후 아파트 경비원이 받는 부당한 처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이에 지난 3월에는 경비원에게 업무 외에 부당한 지시를 하거나 명령을 할 수 없도록 한 공동주택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택배 대리 수령이나 재활용 쓰레기 분리수거 등의 잡무는 별도 계약이 없어도 경비원의 당연한 업무로 간주되는 사회 분위기가 팽배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애초 경비업법에는 경비원이 건물 안전관리 업무 외에는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면서도 관행상 택배도 받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하고 있는데, 이런 허드렛일을 법제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시민들도 전문가들과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학생 김모(27)씨는 "아파트 경비실에서 입주민을 대신해 택배를 보관해주는 건 의무가 아니다"라며 "택배 찾으러 갔는데 경비원이 자리 비웠다고 제발 뭐라 하지 말라"고 전했다.

    ◆입주민은 '갑(甲)' vs 경비원은 '을(乙)'?

    주부 이모(39)씨도 "경비원이 택배 대신 맡아주는 건 감사한 일"이라며 "아파트 단지 내 빈 공간이 있다면 아파트 관리비 수선충당금으로 택배보관함 설치하는 게 대안일 듯 하다. 실제 최신식 아파트는 대부분 무인 택배보관함이 구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직장인 박모(46)씨는 "안 그래도 노령의 경비원들 힘든데 수당을 더 주진 못할 망정 택배 보관 업무를 의무적으로 만들어 택배 분실, 파손 책임까지 떠안게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처사"라며 "경비원은 호구가 아닌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라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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