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화창한 봄날 아침 햇살을 집어삼킬 듯이 가라앉았있다. 머릿속에 가득찬 고민이 목소리에 묻어났다. 그는 “지금 숙소에 가고 있어요. 보내주기 전에 얼굴보고 얘기 좀 하려고요. 만감이 교차하네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이었다. 스포츠월드와의 전화 인터뷰에 나선 그 순간 그는 애제자 김단비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여자프로농구 5시즌 연속 통합우승에 빛나는 우리은행은 최근 KEB하나은행에서 2차 자유계약(FA)시장에 나온 김정은(30·180㎝)을 영입했다. 계약기간 3년에 연봉 2억6000만원에 도장을 찍었다. 다만 FA규정에 따라 우리은행은 보상선수 1명을 내줘야 했고, KEB하나은행은 김단비(25·176㎝)를 선택했다. 일각에서 부상으로 최근 두 시즌 동안 부진했던 김정은 영입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고, 팀의 주축 선수로 성장 중인 잠재력 있는 김단비를 내준 것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에 위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면서도 이내 머릿속에서 정리가 끝났다는 듯 “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감독은 결과로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단에서는 투자를 했고, 감독은 그 투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금은 그 생각뿐”이라고 강조했다. 백지에 밑그림부터 다시 그리고 있는 그와 세 가지 헤시태그 #소녀가장 김정은 #아픈 손가락 김단비 #백지서 그리는 미래를 두고 대화를 나눴다.
#아픈 손가락 김단비
마침 위 감독은 숙소를 찾는 길이었다. 그는 “김단비를 보러가는 길”이라고 설명했다. 얼굴을 마주하고 작별 인사를 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그리고 새로운 도전을 응원하고 싶었던 것이다.
사실 김단비는 위 감독이 키워낸 선수이다. 청주여고를 졸업하고 광주대에 진학한 그는 우리은행에 수련선수로 입단해 지난 2011∼2012시즌부터 WKBL 무대를 밟았다. 주목받지 못했던 김단비는 위 감독 부임 후 새로운 삶은 살게됐다. 작은 신장이지만 몸 싸움에 적극적이고 투지가 넘쳤다. 특히 ‘공격은 누구나 잘한다. 진짜 선수는 수비에서 판가름난다’는 위 감독의 소신에 정확하게 부합하는 선수였다. 위 감독의 힘든 훈련을 버티면서 공격보다는 궂은 일을 도맡아하며 성장하고 존재감을 키운 선수이다. 그의 성장을 직접 지켜본 것은 바로 위 감독이었다.
위 감독은 “정은이를 영입하고, 단비를 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모두 결정나고나니, 솔직히 가슴이 쿵쾅거리더라”며 “미안하고, 답답하고, 마음이 찢어진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없다. 애착을 가지고 키운 선수”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겪는 일이다. 나도 프로 감독이기에 이런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었다”며 “단비도 그런 마음으로 (이번 결정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단비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정은이가 가세하면 단비와 역할이 겹칠 수 있고, 출전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 본인의 미래를 위해서도 받아드렸으면 좋겠다. 마음 속으로 응원하겠다”고 의미있는 말을 전했다.
young0708@sportsworldi.com / 사진 = WKBL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