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다음

입력 2017-04-24 04:40:00, 수정 2017-04-24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99. 효자동 총성은 운명적 영음이었다

  • 청와대 터가 과거에는 칼이 난무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총소리가 들렸던 곳이다. 주변 세종로, 궁정동, 효자동가 유난히 총성이 잦은 동네다. 나라에 급변이 생길 때면 총성이 울렸다. 총성의 시작은 1960년 4월 19일이었다. 3·15 부정 선거를 개탄하는 수만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신문사와 반공회관, 경찰서를 불 지르며 대통령이 있는 경무대로 향하다 경찰의 무차별 발포 앞에 쓰러졌다. 경무대로 향하는 효자동 길이 피로 물든 하루였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승만 대통령은 하야(下野)를 발표하고 이화장으로 떠났고, 28일 새벽엔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는 이기붕 일가의 자살 사건이 발생한다. 1958년 경무대로 소풍을 갔다가 나는 그 총소리를 들었다. 내 귀에 들렸던 네 발의 총성은 바로 이기붕 일가 몰살을 예고했던 영음(靈音)이었다.

    훗날 나는 이 총성과 다시 인연을 맺게 된다. 1992년 경, 미국에서 자연스럽게 이기붕 일가의 구명시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자유당 정권의 2인자이며, 이승만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3·15 부정선거를 진두지휘해 부통령까지 올랐던 이기붕. 화려했던 생전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초라한 영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전 국민을 경악하게 한 그날의 사건 기사가 떠오른다. ‘28일 상오 5시 40분께 경무대 어귀 36호 관사에서는 난데없는 네 발의 총성이 새벽 정적을 깨뜨리고 네 사람의 가족을 저승으로 보냈다. 전 민의원 의장이며 3.15 부정 선거에서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이기붕 씨의 가족 4명이, 이승만 박사의 양자로 입양된 장남 강석 소위에 의해서 저질러졌다.’ 사실 신문에는 그렇게 나왔지만 내 눈에 보인 장면에는 제3자가 있었다. 이 미스터리는 세월이 지나면 밝혀지리라 생각한다.

    이기붕은 장남 이강석을 양자로 바칠 정도로 이승만 대통령의 충복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부인인 박 마리아 여사의 야욕도 한몫을 했다. 박 마리아는 남편의 출세를 위해 올인 했다. 이승만을 향한 절대적 충성만이 탄탄한 출세 길을 보장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과욕의 끝은 죽음이었다.

    ‘경무대(景武臺)’란 이름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지었다. 경복궁의 ‘경(景)’자와 궁의 북문인 신무문의 ‘무(武)’자를 땄다. 이름의 기원이 경복궁에 있는 셈이다. 이기붕의 조부가 경복궁과 관련하여 죽었고, 이기붕 자신은 경무대 때문에 죽었다.

    박 대통령 시해사건이 있고, 나는 그 사건을 예언한 죄로 한동안 조용히 지내야했다. 젊은 시절 중랑천 뚝방길을 걸으며 운수납자의 신분으로 돌아온 나는 그때 처음으로 청와대 터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천하제일복지(天下第一福地)라는 곳에서 최고 권력자들에게 왜 비극이 끊이지 않는 걸까. 혹시 천하제일복지가 아닌 건 아닐까하는 의문 말이다.

    문득 청와대는 오래 머물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에서 조용히 머물다 떠난 대통령은 괜찮았다. 4·19 혁명으로 경무대 주인이 되었다가 ‘경무대’를 ‘청와대’로 간판을 바꾼 윤보선 대통령은 5·16 쿠데타로 물러난 뒤 민주화 운동에 투신해 1990년에 돌아가셨고, 최규하 대통령은 10.26 사태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선거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대통령 당선 8개월여 만에 사임했다. 군부세력에 밀려 청와대에서 나와야 했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운명을 바꾸었음을 알았을까.

    근검절약하고 청렴결백했던 최규하 대통령은 단 한 번도 청와대 터에 눈길을 주지 않았으며, 지금도 국민의 정신적 대통령으로 남아있다. 만약 이승만, 윤보선, 최규하 대통령 모두가 박정희처럼 고집스레 청와대를 지켰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년이 순탄하지 않았을 것이다.

    박 대통령 시해사건을 예언하고 장안동에 칩거했던 그때가 가끔 생각난다. 치열한 권력다툼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자유인으로 살 수 있었다. 1958년 경무대에서 들은 이기붕 일가 몰살 예고 총성과 1979년 유신기념파티에서의 말실수는 나라의 미래를 예언할 수밖에 없는 영능력자로서의 내 운명을 깨닫게 해준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HOT레드

  • 오늘의 파워링크
  • Today 정보
  • 이시각 관심뉴스
  • To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