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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12 18:50:57, 수정 2017-04-12 18:50:57

'응답하라 1950', '피난 수도' 부산을 기억해

  • [부산=글·사진 전경우 기자] 부산이 대한민국 수도 역할을 했던 시절이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 이야기다.

    전쟁 중 1023일 동안(1950년 8월 18일~10월 26일, 1951년 1월 4일~1953년 8월 14일) 부산은 대한민국 수도 기능을 수행했다. 정치와 행정 기능이 집중되어 있었고 해외로부터 원조물자와 인력이 유입되는 동시에 국내로 공급이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의 중심지였다.

    날벼락같은 전쟁이 터지자 피난민들은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다. 고속도로가 없던 시절, 당장 생각나는 장거리 이동 수단은 철도였고 종착역은 부산이었다. 몰려든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땅은 턱없이 부족했다. 거주지 배분은 선착순으로 이뤄졌다. 조금 늦게 왔다는 이유로 산꼭대기, 파도가 몰아치는 해안 절벽으로 내몰린 피난민들은 이를 악물었다. 일단은 주어진 환경에 순응하며 살아야 했다.

    전쟁이 끝났지만 많은 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부산 사람’이 되어 도시를 재건했다. 60여년이 지난 지금 ‘피난 갈매기’들이 키워낸 아이들은 산동네를 떠나 더 나은 환경에 정착했다. 노인들만 남아 황혼기에 접어든 마을은 최근 ‘회춘’의 기회를 맞았다. 피난민들의 마을은 부산에서 가장 못사는 동네라는 이유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몇 년전부터 관광객들이 하나 둘 찾아오기 시작하며 침울하던 골목길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비석위에 지은 집

    아미동 산 19번지는 원래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다. 산꼭대기로 내몰린 피난민들은 일본식 묘지의 축대 위에 집을 지었다. 비석과 구조물을 뜯어 계단을 만들고 지붕은 자갈치 시장에서 구해온 판자로 덮었다. 그게 집이었다. 변변한 우물 하나 없어 산 아래서 물을 길어 와야 했고 변변한 화장실이 없어 공동묘지 뒷산에 구덩이를 파고 볼일을 해결 했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은 어둡지만 무섭지는 않다. 저마다 다른 형태의 집, 묘지의 부속물을 이용해 지어진 모습들을 관찰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땅이 모자라면 집을 2층으로 올렸는데 거의 모두 가분수 형태다. 하늘에는 경계가 없고 주인도 없기 때문이다. 이 동네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관광객들에게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의 마추픽추’, 감천동의 변신

    "도시락 하나 더 챙겼다." 부산에 사는 지인이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다. 새로 만난 짝지가 감천 2동에 산다고 하니 어머니는 도시락을 하나 더 싸주기 시작했다. 친구의 가정 형편이 어려울테니 나눠 먹으라는 뜻이다.

    아미동에서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붙어 있는 동네가 감천동이다. 예전에는 못사는 동네의 대명사로 불렸지만 지금은 부산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거듭났다. 감천동은 알록달록 칠해진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 때문에 ‘한국의 마추픽추’로 불린다. 작가들의 작업실이 들어왔고 예쁜 카페들이 골목마다 자리잡으며 어두웠던 동네 분위기는 온데 간데 없다.

    마을 곳곳에 전망대가 위치해 있는데 최고의 포인트는 마을 입구 슈퍼 주변에 있는 카페 2층 테라스다. 

    ▲40계단, 그리고 30계단


    부산은 ‘계단의 도시’다. 땅은 좁고 산이 많은 지형 탓이다. 인구가 폭증하며 사람들은 산 허리를 깎아 산복도로를 닦고 길과 길을 이어주는 계단을 만들었다. 무수하게 많은 계단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중구 중앙동 1가 39-51에 있는 ‘40계단이다.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40계단은 피난민들이 몰려든 이후 ‘장터’와 ‘만남의 광장’역할을 했다. 지금 볼 수 있는 40계단은 원래 위치에서 25여 m 떨어진 자리에 다시 만들어 진 것이다. 주변에 예쁜 카페들이 많아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40계단 위쪽 길을 따라 100m 쯤 가면 동광동주민센터가 있고, 동광동주민센터 건물 5층과 6층에 40계단 문화관이 있다. 40계단 주변 지역은 부산의 원도심 광복동 지역과 바로 연결된다. 홍콩의 구도심 센트럴 지역과 연결되는 소호, 노호 지역과 흡사한 형태다. 

    ▲절벽끝에 내몰린 인생, 흰여울 문화마을

    영도 다리를 건너 해안가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면 영도구 영선동4가, 흰여울 문화마을이 나온다. 해안 절벽까지 내몰린 피난민들은 일찍 온 순서대로 윗쪽에 자리를 잡았다. 늦게 온 사람들은 이마저 자리가 없어 절벽 아래 해변에 수상가옥에 살아야 했다. 아랫 마을은 선원들이 북적이며 한 때는 ‘니나노 집’을 차려 재미도 봤지만 태풍 사라호가 모든 것을 통째로 집어 삼켰다.

    이토록 아픈 과거가 있는 이 마을이 최근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관광지로 거듭나고 있다. 좁은 골목과 하얀 집, 푸른 바다가 어우러지는 풍광이 영락없이 산토리니다.

    흰여울문화마을은 영화 '변호인'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최근 소천한 배우 김영애가 송강호를 붙잡고 "니 변호사 맞재? 변호사님아 니 내 쫌 도와도"라고 말하던 그 집이 지금은 '흰여울 안내소'로 변신했다. 안내소를 지키던 주민은 "예전에는 저기 바다 건너 송도 해수욕장까지 헤엄을 쳐서 건넌 아이들도 많았다”고 설명을 해준다. 지금 보면 말도 안돼는 이야기 같지만 당시 아이들은 특별한 놀거리가 없었다.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kwjun@sportsworldi.com 

    사진설명
    1. 송도 봉래산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의 원도심.
    2. 비석 위에 지은 집.
    3. 감천 문화마을 전경.
    4. ‘계단의 도시’ 부산의 수 많은 계단들에는 어려운 시절을 극복해 왔던 부산 사람들의 애환이 깃들어 있다.
    5. 중앙동 40계단.
    6. 흰여울 문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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