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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4-05 04:40:00, 수정 2017-04-05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94. 경복궁 터는 과연 길지(吉地)였나

  • 경복궁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이 나름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풍수지리의 정수라고 한다. 건물 한 채, 한 채 밤을 새워 설계를 했고 이름 지었으며 경복궁 터에 만연한 화기를 막기 위해 조각상 하나까지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경복궁은 조선의 법궁으로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장자가 왕위에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왕 또한 단명하거나 병약했다. 정도전이 무학대사의 말을 무시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

    궁궐터는 정도전이나 무학대사가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궁의 주산이 달랐다. 인왕산이 아니라 북악산을 주산으로 삼아 자좌(子坐), 즉 남향으로 궁궐터를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실세 정도전의 뜻대로 경복궁 자리는 정해졌다. 무학은 “궁궐을 자좌로 지으면 5대가 가기 전 혁명이 일어나고 200년 못 가 나라가 흔들릴 난리가 일어난다”고 태조에게 호소했지만 대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조선왕조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고작 47년에 불과했다. 경복궁, 즉 청와대 터의 좋지 못한 기운이 작용한 요절(夭折)이다. 단종을 죽음에 이르게 한 숙부 세조(수양대군)는 52세로 숨을 거두기까지 기울증(우울증)에 시달렸다. 정신적 요인에 의한 부분이 큰 병이었던 만큼 무당 등 술자(術者)의 축문 독경, 무(巫)의식, 기도, 부적 등이 동원됐다. 물론 그 어느 수단도 경복궁 땅 기운을 누르지는 못했다.

    조선의 왕 중 최장수는 영조다. 83세로 운명했다. 그러나 영조는 경복궁에서 살지 않았다. 영조는 창덕궁에서 태어나 경희궁에서 눈을 감았다. 즉위 중에는 창덕궁과 창경궁, 경희궁을 오갔다. 그런 이유로 영조는 경복궁의 흉한 기운을 피할 수 있었다. 영조는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의 건강을 물려받았으며, 경종이 즉위한 18세 때부터 궁궐 밖에서 백성들과 어울리며 검소하게 살았다. 밥도 잡곡밥을 더 좋아했다. 저녁은 거르지 않았고 주색에도 경계가 있었다. 경복궁에서 벗어나 창덕궁에서 살았기에 수명이 늘어난 것은 아닐까한다.

    연산군은 조선왕조 역사상 드물게 세자궁에서 태어나 왕이 됐다. 왕이 되는 정통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러나 연산군은 풍수를 무시하고 정궁(正宮) 경복궁을 놀이터로 과감하게 개조하니 그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연산군은 즉위 후 3년 동안은 선왕 성종처럼 정사에 힘썼다. 그러나 부친 승하 직후 밝혀진 친모 폐비 윤씨의 존재로 그는 폐주의 길을 걸어간다. 정사를 멀리하고 경복궁을 놀기 위한 리조트로 개조했다. 경복궁에 있던 보루각을 창덕궁으로 옮기고 간의대를 없앴다. 경회루 연못에서 뱃놀이를 즐겼고, 연못가 만수산에는 봉래궁, 일궁, 월궁, 훼주궁을 지어 오색찬란한 비단으로 꽃을 만들어 장식한 뒤, 못 속에는 금은보화로 산호림을 만들어 세웠으며 물 위에는 황룡주를 띄웠다.

    궁중에 곡연(曲宴)이 없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연산군은 늘 취한 상태였고, 대궐 담장을 새로 두 길 높이로 쌓아올리고 담장 밖 민가들을 모두 헐어버렸다. 대궐 안을 내려다보는 높은 곳에 위치한 복세암, 인왕사, 금강굴도 철폐했다. 인왕산에는 백성의 입산을 엄금했다. 노는 꼴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탑골공원 경내의 대원각사비도 연산군의 폭정을 방증하는 사료 가운데 하나다. 세조가 숙부인 효령대군의 신앙심에 감격, 이곳에 있던 관아(官衙)를 모두 딴 곳으로 옮기고 1464년 유림의 반발을 무릅쓰고 원각사를 지었다. 그러나 연산군은 원각사 본당의 불상을 성 밖으로 보냈다. 승방은 자신의 잔치에 동원되는 기생들의 숙소로 썼다. 궁터의 저주에 불심의 원망까지 보태졌으니 연산군이 무사할 까닭이 없었다.

    연산군이 죽은 뒤, 경복궁은 늘 화염에 휩싸였다. 연산군을 폐위시킨 중종 때는 동궁에 불이 났고, 명종 8년에도 경복궁에 큰 불이 나 강녕전(康寧殿), 사정전(思政殿), 흠경각(欽敬閣)이 잿더미가 됐다. 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으로 또 다시 경복궁을 화염에 휩싸이게 했다. 태조 이성계의 꿈이었지만 폐주 연산군으로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한 경복궁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273년간 잿더미로 방치되었다가 대원군에 의해 중건될 때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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