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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3-15 04:40:00, 수정 2017-03-15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88. 새로운 문화체험, 경복궁 별빛야행

  • 고궁은 조선의 왕이 정치와 나라의 미래를 설계했던 건물로 옛 영화를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예전에는 그저 학생들이 소풍가는 곳으로만 여겼던 고궁이 지금은 시민들에게 최적의 힐링 장소로 다가가고 있다. 문화재청이 기획한 ‘창덕궁 달빛여행’에 나는 두 번 참가했다. 지난해 창덕궁에서 달빛을 받으며 구경한 국악공연은 정말 큰 감동이었다. 창덕궁을 비친 달빛 아래에서 인정전, 낙선재, 부용지, 연경당, 그리고 후원 숲길을 산책하고 전통예술과 다과를 즐기면 그 어떤 즐거움이 이보다 클까 할 정도이다.

    얼마 전 문화재청이 내국인을 대상으로 지난해 시행한 11개 궁궐 활용 프로그램의 체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창덕궁 달빛기행이 1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내가 느꼈던 그 감동이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창덕궁 달빛기행은 평소 야간에 개방되지 않는 창덕궁 내부를 돌아보면서 고즈넉한 정취를 느낄 수 있어 인기가 높다”고 말한다.

    경복궁 동쪽에 있다 하여 동궐로 불렸던 창덕궁은 조선의 이궁(離宮)으로 왕과 관련된 많은 흔적들을 면면히 살필 수가 있는 곳이다. 창덕궁은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이 불에 타버린 경복궁을 대신하여 법궁으로 삼았으며, 정조가 본궁을 경희궁에서 창덕궁으로 옮긴 뒤 부용지, 부용정, 왕실도서관 규장각이 있는 주합루를 세우면서 그 위상이 달라졌다.

    부용지는 창덕궁 후원을 대표하는 연못으로 네모난 연못과 둥근 섬이 땅과 하늘을 뜻하는 동양의 음양 사상을 담아 지은 곳이다. 창덕궁의 백미(白眉)라는 부용지를 사이에 두고 부용정과 주합루가 마주보고 서 있다. 숙종이 지은 정자는 정조 때 재건돼 ‘부용정(芙蓉亭)’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궁중 건축으로는 유일하게 亞(아)자 형태의 정자로 인간과 땅, 하늘이 하나 되는 우주를 상징한다.

    부용정의 창을 들어 올리면 또 하나의 우주, 주합루(宙合樓)가 보인다. ‘우주가 하나로 합쳐지는 누각’이라는 뜻을 가진 주합루의 1층은 왕립도서관인 규장각의 서고이고, 2층은 책을 읽거나 학문을 논하고 명상과 사색의 장소로 열람실 역할을 하였다.

    규장각은 정조의 야심작이었다. 정조 시대 무(武)의 상징이 수원 화성이라면 문(文)의 상징은 규장각이었다. 그런데 이 규장각에서 함부로 술판을 벌인 두 남자가 있었으니,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에겐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이토는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역에서 안중근이 쏜 총에 의해, 박정희는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가 쏜 총에 쓰러졌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토 히로부미와 박정희의 죽음을 가리켜 ‘규장각의 저주’라고 불렀다. 함부로 정조의 규장각에서 술을 마시고 놀았다는 죄로 죽었다는 얘기다. 사망일과 원인까지 닮은 두 남자가 어쩌다 규장각에서 술을 마셨을까. 어쩌면 보이지 않는 전생과 현생의 카르마가 서로 연결된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고궁은 그 자체가 역사다. 그리고 작든 크든 그 나름의 한(恨)을 갖고 있다. 그중에서 경복궁은 가장 한이 많은 조선의 법궁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창덕궁에 밀려 법궁으로서의 역할을 못했던 경복궁이 복원 후 다시 옛 모습을 찾더니 위상마저 되찾아가고 있다.

    ‘창덕궁 달빛여행’이 시민들의 큰 호응을 얻자 문화재청은 ‘대장금과 함께하는 경복궁 별빛야행’을 진행한다고 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경복궁 별빛야행은 야간탐방에 앞서 궁궐의 부엌인 소주방에 들러 왕과 왕비의 일상식인 12첩 반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도슭수라상’을 맛보게 되어 있다. 궁중음식과 국악공연이 함께 펼쳐져 맛과 멋의 풍류로 가득한 특별한 문화체험이 될 것이다. 이제 경복궁의 밤은 시민들에게 분명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줄 것이다.

    밤에 보는 고궁은 낮의 모습과는 달리 은은한 달빛과 별빛 아래 고즈넉하다. 이번 ‘경복궁 별빛야행’은 ‘창덕궁 달빛여행’과 더불어 정적인 고궁에 머물지 않고 숨 가쁜 일상에서 잠시 마음을 내려놓는 힐링 장소로써 그 역할을 다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고궁들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들과 보다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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