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다음

입력 2017-03-13 04:40:00, 수정 2017-03-13 04:40:00

[차길진과 세상만사] 87. 준비가 된 자의 투지는 강하다.

  • 아쉬움만 남기고 WBC 1라운드가 끝났다. 무난히 1라운드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대만을 꺾고 꼴찌를 면했다. 비록 예선을 거쳐야하는 수모는 피했지만 뒷맛이 씁쓸하기만 하다. 우리가 상대한 이스라엘과 네덜란드은 약팀이 아니었다. 외신들이 전하는 우리의 충격적인 패배는 하극상이 아니라 실력 차에서 오는 결과일 뿐이었다. 나 역시 경기를 보면서 쉬운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어려운 경기를 하고 말았다. 야구의 변방 정도로만 생각했으니 그만큼 상대를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많은 경기를 보아왔지만 이번 WBC 경기는 참 말도 많았다.

    네덜란드와의 경기기 끝나고 김인식 감독은 “진정한 프로라고 할 만한 선수가 얼마나 되나. 지금 우리나라 야구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못할 때 창피함이 없다는 것이다. 왜 안 되는지 끝없이 연구해야 하는데 그런 의식이 없다. FA 선수들도 사명감이 모자라다. FA 하고 나서 배 나온 선수들이 대부분이다”라며 쓴 소리를 했다. 왜 김성근 감독은 배가 나온 선수들 얘기를 했을까.

    영국의 작가이며 성직자인 스위프트는 “배가 부르면 뼈가 게을러진다”고 했고, “두 발이 배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배가 두 발을 끌고 간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는 것처럼 배가 고파야 뭘 해도 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배는 단순히 배고픔을 느끼는 것 외에도 심리적인 부분에 영향을 주어 생각과 욕망, 그리고 행동까지 조종한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 말을 타는 북방유목민족은 배가 나오면 안 되었다. 한판 승부를 겨루는 전사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김성근 감독이 선수의 ‘배’를 언급한 것은 한마디로 투지에 관한 얘기다.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야구 3,4위 결정전에서는 8회 이승엽의 결승 2루타로 3위를 기록했고, 2006년 WBC 한일전에서는 8회 역전 투런포를 치며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을 잠재웠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대한민국 야구팀은 국제대회에 나가면 투지 하나만큼은 단연 최고였다. 승패에 관계없이 우리 대표팀의 투지는 세계 야구인들이 늘 관심 있게 보아온 터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모습을 전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번 WBC 1라운드는 철저히 준비된 팀과 그러지 못한 팀의 대결이었다. 한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마음은 이기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았다. 정규 시즌 컨디션의 80% 수준이었다”며 제대로 준비가 안 되었다고 말한다. 만약 그랬다면 이름보다 준비된 선수들을 선발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작년 7월 고척돔구장을 방문했을 때 선전하고 있는 넥센히어로즈의 투지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넥센의 사정은 강정호와 박병호 등 주전급 선수들이 해외로 나가고 일부 선수는 다른 팀으로 이적하여 객관적 전력에서 매우 열세였던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넥센이 시즌이 끝날 때까지 타 구단들과 당당히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결속력이었다. 수년 간 다져진 그 결속력으로 선수들은 ‘할 수 있다’는 강한 정신을 보여주었고 나 역시 선수들과 일일이 손을 잡으며 그것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넥센히어로즈가 지난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하위권으로 추락하지 않았던 것은 철저히 준비를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준비된 자를 상대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준비된 자의 투지는 강할 수밖에 없다. 이번 경기는 많은 것을 생각나게 했다. “질 때 확실히 져야한다”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야 새로 태어나지 않겠는가.

    예전에 대나무밭이 어느 날 만개한 꽃밭으로 변한 걸 본 적이 있다. 아름답고 신기했는데 동네 어르신이 근심에 찬 얼굴로 이런 말을 하셨다. “대나무가 곧 죽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청청하던 대나무가 왜 일제히 화려한 꽃을 피우고는 동시에 전멸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생각해보면 다시 한 번 태어나기 위한 화려한 자태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대나무가 하늘을 향해 높이 자랄 수 있는 것도 마디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중요한 고비를 맞으며 성장통을 겪고 있다. 야구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안팎으로 성장통을 겪고 있다. 이 고비가 보다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성장통이 되었으면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HOT레드

  • 오늘의 파워링크
  • Today 정보
  • 이시각 관심뉴스
  • Today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