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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초대석] 현문자현 이기현 CEO자서전 '아버지의 치부책' 출간…묵향 가득한 세상을 꿈꾸다

입력 : 2017-03-02 17:49:23 수정 : 2017-03-02 20: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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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인쇄·출판 외길 걸어온 한 문화건설가의 담대한 희망 이야기
청소년을 위한 응원가, 직장인을 위한 희망가, 인쇄인들의 참고서
15살 때 컬러 인쇄물에 매력 느껴 인쇄기술자가 되기로 결심
베스트셀러를 가장 많이 찍은 굴지의 인쇄소와 출판사 경영
[스포츠월드=강민영 선임기자] 일산동구 장항동 인쇄단지에는 하루 평균 약 10만 권, 연 3650만 부 출판 생산능력을 갖춘 (주)현문자현(대표 이기현)이 있다. 수백개의 인쇄공장이 모여 있는 장항동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쇄소다. 베스트셀러 출판물을 가장 많이 인쇄하는 곳이기도 하다. 학교 운동장만한 크기의 이곳 인쇄공장은 출판 원고만 있으면 한 장소에서 편집·출력·인쇄·제본까지 모두 가능한 원스톱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제책사를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문자현의 CEO 이기현은 충청도 단양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해 맨손으로 굴지의 인쇄기업을 일군 입지전적인 인쇄경영인이다. 그는 인쇄소뿐만 아니라 출판사도 운영한다. ‘현문미디어’ ‘생각하는 백성’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600여 종이 넘는 책을 출간했다. 또한 일본에 정식 출판 법인을 설립하고 한국의 동화를 번역·소개하는 등 출판 한류에도 앞장서 왔다. 그가 최근 ‘아버지의 치부책’이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판해 잔잔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묵향 가득한 세상을 꿈꾸다>(1부), <큰 것을 선호하는 멋, 솔직한 멋, 하면 된다는 멋>(2부), <내가 본 이기현>(부록·칼럼니스트 이상헌 ‘어버이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문일석 브레이크뉴스 회장의 ‘이기현의 인생은 기적 그 자체…’)으로 구성된 이 책은 구성된 이 책은 청소년을 위한 응원가, 직장인들을 위한 희망가, 인쇄인들의 참고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한 인쇄출판업자의 어린시절 회고를 통해 고단했지만 희망이 있었던 아버지 세대의 한 단편을 엿볼 수 있고, 인쇄경영인으로서 험난한 여정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과정, 인쇄 및 출판사 운영의 노하우도 들여다볼 수 있다. ‘문화건설가’로 평가받는 이기현 대표를 장항동 현문자현 대표실에서 만났다. 

#후배들에게 지혜를 전하는 자기계발서 형태의 자서전 펴내

-인쇄경영인의 귀감이 될 수 있는 <아버지의 치부책> 출판을 축하한다. 치부책이라는 단어가 생소하다.

“치부책은 우리 우린 시절에 장사를 하는 집이면 다 갖고 있었던 작은 금전 장부 수첩을 말한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강원도 횡성에서 충북 단양의 작은 산골로 이사를 해 방앗간을 3개나 운영했다. 그런데 손님들 절반이 외상손님이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치부책에는 방앗간에서 일을 해주고 못 받은 외상값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봄날, 수업료와 육성회비를 내야 했는데 그러려면 외상값을 받아서 충당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아버진 그 일로 어머니와 말다툼까지 했다. 결국 내가 나섰다. 아버지의 치부책을 들고 외상값을 받으려 마을을 돌았다. 워낙 궁핍하게 사는 집들이라 외상값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치부책을 들고 집으로, 논밭으로 찾아가서 외상값을 달라고 졸랐다. 한달쯤 지났을 때는 치부책에 표시된 집들의 3분의 1가량이 돈을 갚았다. 치부책은 나의 유년시절을 상징하는 추억의 노트다.”

-인쇄경영인의 자서전은 흔치 않은데.

“인쇄소 운영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자 주변 사람들이 반복적으로 자서전을 내보라고 권유했지만 한사코 거절해왔다. 경험이 일천할 뿐 아니라 나만큼의 고생도 안 하고 살아온 사람들이 있겠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50년 가까이 인쇄 및 출판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소회가 없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자서전이라면 응하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후배들에게 시간을 절약하고 성공을 앞당길 수 있는 지혜를 전하는 자기계발서 형태로 책을 출간하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서야 용기를 냈다. 후배들이 나처럼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시대에 부응하는 방법론을 찾아 마음껏 활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든 것이다. 1부에서는 창업을 하는 과정을 그렸고 2부에선 경영을 하면서 느꼈던 고민을 정리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상경하게 된 계기라도 있나.

“중학교 2학년 추석 때 도시로 떠났던 마을 젊은이들이 명절을 쇠러 고향을 찾아왔다. 한껏 멋을 부리고 고향을 찾아온 친구들을 보니 무척 부러웠다.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밤마다 초등학교 동창들로부터 도시 생활 얘기를 들었다. 나는 학교를 그만두고 사회로 진출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마침 가뭄의 여파로 방앗간 운영도 예전같지 않아 생활 형편이 빠듯했다. 고등학생인 형과 동생들까지 학생 넷의 학비를 대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만류하는 아버지를 설득해 먼 친척이 운영하는 금은방에서 일했다. 거기서 어느날 본 영문 카달로그 책을 보게 됐는데 반질반질한 종이와 화려한 색감의 컬러 사진이 눈을 사로잡았다. 미 8군에서 흘러나온 책이었는데 그런 책을 인쇄하는 인쇄기술을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서울로 올라간 것이다.”

 #한국 최고 인쇄소 설립을 꿈꾸며 영원사원의 길을 걷다

-책에는 인정받는 인쇄기술자로 근무하다 인쇄소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긴 것으로 나온다.

“안정된 기술직을 버리고 낮은 보수에 스트레스도 극심한 인쇄소 영업사원으로 자리를 옮긴 나를 직원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주위사람들의 우려대로 영업 현실은 냉혹했다. 출판사나 잡지사 등 거래처를 방문하면 사장은 물론 직원들까지 마치 잡상인을 대하듯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한 영업직을 계속하게 된 것은 20대 중반에 한국에서 최고로 크고 훌륭한 인쇄소를 설립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그 야망 실현의 필수조건인 영업을 꼭 익혀야겠다는 결심이 있어서였다.”

-영업에서 남다른 실력을 발휘했는데.

“시행착오 끝에 주먹구구식이 아닌 의미가 담긴 유머 등을 활용한 영업이 주효했고 어렵게 확보한 거래처를 경쟁 업체에 빼앗기지 않는 나만의 관리비법을 고수했다. 그런 노력 덕분에 1년이 지났을 때 예닐곱 명의 영업사원 가운데 가장 많은 150여군데의 거래처를 확보했고 회사 매출의 50% 이상을 책임지게 되었다. 급기야 부진한 실적 탓에 어려움을 겪는 부원들에게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해 나눠주고 나만의 영업 노하우도 가르쳐줬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그 부원들의 영업 실적도 쑥쑥 올랐다. 나의 배려로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게 계기가 되어 그들과 나는 허물없는 친구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베푼 배려는 수년 후 엄청난 힘이 되어 나에게 되돌아왔다. 창업자급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내 사정을 미리 헤아린 그들이 자진해서 거액의 사업자금을 빌려줘 오늘날 현문자현의 기초를 쌓을 수 있었다.” 

#출판 대박만 노리는 심마니형 출판이 아니라 인삼밭형 출판을 지향

-출판업에 뛰어들어 처음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얻은 결론은.

“인쇄회사를 창업한 지 6년째 되던 1995년 가을에 출판업에 진출했다. 거래처 한 출판사가 도산의 위기에 처하자 밀린 제작비 대신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회사를 인수했다.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 억대의 수업료를 내고 서점의 생리를 파악하고 출판사 경영 수업을 한 셈 쳤다. 25년 동안 인쇄업에 종사하면서 나름대로 출판사 생태를 잘 안다고 자부했는데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수박 겉핧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판에 대해 다시 공부했다. 이 때 얻는 결론이 ‘심마니형 출판’이 아니라 ‘인삼밭형 출판’을 지향하자는 것이었다. 산삼이라는 대박만 꿈꾸며 험준한 산속을 헤매는 심마니보다 6년 뒤의 수확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극정성으로 인삼밭을 돌보는 인삼밭 주인의 심정으로 출판사를 운영하자는 의미다.”

-어려웠던 때에도 출판사를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출판은 알면 알수록 형용할 수 없는 수 없는 묘한 매력과 보람을 느끼게 만드는 사업이다. 많은 사람들의 열정으로 탄생한 한 권의 책을 바라보노라면 가슴 한 구석에서 마치 자식을 얻은 아버지의 심정과 비슷한 희열감이 들기도 한다. 출판사가 어려울 당시 주위 사람들은 도산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적자인 출판사부터 처분해야 한다고 권유했지만 나는 출판사를 포기하지 않았다. 인쇄소와 출판사는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한 몸으로 여긴 것이다. 일본 인쇄 수출에 성공하게 된 바탕도 일본 인쇄매체로부터 우리가 출판사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인삼밭 주인의 마음가짐으로 출판사를 꾸준히 운영한 결과 현재 우리 출판사는 총 600여 종의 우량도서를 편찬하는 중견 출판사로 자리하게 되었다.” 

#인쇄인들은 역사디자이너, 출판은 인류 발전 최후의 문화도구

-인쇄와 출판에 대한 문화 철학을 정리한다면.

“인쇄는 무형의 소리를 유형의 문자와 그림으로 바꾸는 숭고한 작업이다. 시간이 흐르면 무형으로 사라질 우리들의 삶, 생각, 사상 등을 종이 위에 유형의 문자와 그림으로 새겨 후세에 널리 전해지도록 만드는 인쇄인들을 ‘역사 디자이너’라고 부르고 싶다. 앞으로도 인쇄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담아내는 그릇이며, 단순한 그릇이 아니라 예술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끊임없이 문화 발전을 위해 전력을 다하고 싶다. 아울러 출판은 이익 창출을 위한 단순한 사업 아이템이 아니라 인류 발전을 위한 최고 최후의 문화도구라는 신념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양서만을 편찬하도록 노력하겠다.” 

mykang@sportsworldi.com

사진설명
1. 이기현 (주)현문자현 대표는 “시간이 흐르면 무형으로 사라질 우리들의 삶, 생각, 사상 등을 종이 위에 유형의 문자와 그림으로 새겨 후세에 널리 전해지도록 만드는 인쇄인들을 ‘역사 디자이너’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2. 일산동구 장항동 인쇄단지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현문자현 인쇄소 전경.
3. 현문자현 인쇄실. 최첨단 인쇄기를 도입해 하루 평균 10만권의 책을 인쇄할 수 있다.
4. 현문자현 제책시설. 현문자현은 한 장소에서 편집·출력·인쇄·제본까지 원스톱시스템으로 인쇄물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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