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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83. 항룡유회(亢龍有悔)와 겸퇴(謙退)

입력 : 2017-02-22 04:40:00 수정 : 2017-02-21 18: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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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사람의 그릇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사람마다 담을 수 있는 자기의 그릇. 운명처럼 정해진 큰 그릇 또는 작은 그릇을 가지는데 이는 금수저, 흙수저와는 의미가 다르다. 그릇은 자신의 업(業)과 같아서 사는 동안 지니고 다녀야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분복을 모르면 그릇은 넘치게 된다. 문제는 그냥 넘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지금까지 이룩한 것이 한 순간에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데 있다.

사람마다 자기의 그릇 크기가 정해졌다고는 하나 능력에 따라 자신의 그릇을 점차 늘려나가는 사람이 있다. 개중에는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집과 교만으로 과욕을 부리다가 큰 낭패를 보는 사람도 나온다. 비리에 얽혀 언론에 자주 거론되는 정계와 재계의 인사들이 그런 사람들이다.

주역(周易)에 보면 ‘항룡유회(亢龍有悔)’라는 말이 있다. 하늘 끝까지 올라가 내려올 줄 모르는 용은 반드시 후회할 때가 있다는 뜻으로, 높은 지위에 올라간 자가 조심하고 겸퇴(謙退)할 줄 모르면 반드시 어려운 곤경에 처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공자(孔子)는 “항룡은 너무 높이 올라갔기 때문에 존귀하나 지위가 없고, 너무 높아 교만하기 때문에 자칫 민심을 잃게 될 수도 있으며, 남을 무시하므로 보필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항룡유회의 대표적인 인물을 든다면 아마도 단종을 밀어내고 세조를 왕위에 오르는데 큰 공을 세운 한명회(韓明澮)일 것이다. 그는 계유정난의 일등공신으로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권세와 부를 누렸다. 성종 때 한명회가 한강변에 자연을 벗 삼겠다며 압구정을 지었다. 이에 성종은 그에게 시 한수를 하사했다. “세 번이나 은총을 흠씬 입으니 정자 있어도 와서 놀 뜻이 없구나. 마음속 욕심을 가라앉힌다면 벼슬살이 바다에서도 갈매기와 친하련만 (三接慇懃寵渥優 有亭無計得來遊 胸中政使機心靜 宦海前頭可押鷗)” 성종이 권력을 내놓으려하지 않는 한명회에게 은근히 겸퇴의 압력을 가한 충고였다. 하지만 한명회는 이를 알고도 그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말년에 권력을 잃은 한명회는 죽어서도 그 끝이 좋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출 때를 놓친다. 그것을 알았을 때는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래서 조선시대 거상 임상옥은 ‘계영배(戒盈杯)’를 옆에 두고 늘 조심했다고 한다. 잔에 술을 적당히 담으면 괜찮지만 가득 채우면 그 순간 술이 전부 사라지고 마는 술잔을 말이다. 임상옥은 비록 신분은 상인이었지만 항룡유회를 알고 겸퇴를 알았기에 어느 날 마당에 있던 병아리가 송골매에 채이자 자신의 운이 다했음을 알고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정리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시절인 지난 2004년 11월 기자들을 집으로 초대했을 때 계영배를 내놓았다. 박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계영배를 보여주며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계영배는 술을 가득 채우면 잔 밑의 구멍으로 술이 흘러내립니다. 차서 넘치는 것을 경계하는 의미로 우리 조상들이 계영배를 빚었다고 해요. 그래서 이 술잔으로 술을 마시면 취하지도 않고요.”

박 대통령이 그 당시 임상옥이 계영배를 옆에 둔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대통령으로서 오랜 기간 국정농단의 실책을 범했음에도 국가를 위해 넘치지 않는 정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백만 명의 촛불시위를 보면서도 겸퇴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헌재의 탄핵심판 결정에 관계없이 역사에 어떤 대통령으로 기록되기를 바라는지 묻고 싶다.

재계 순위 1위 기업의 부회장이 구속되었다. 예정된 일이었다 해도 대내외적으로 그 파문은 작지 않다. 화려한 꽃이 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간밤의 굵은 장대비도 그 무수한 꽃잎을 떨어뜨린 본질적인 이유는 아니다. 정점(頂点)을 지나 떨어질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은 다시 피어날 것이니 그리 슬퍼할 일도 아니다.

계영배의 진정한 의미는 넘침을 경계하며 후회할 일은 하지 말라는 것이지만 잔이 넘치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하게 된다. 작금의 혼란한 상황에서도 극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극상에 올라도 본분과 초심만 잊지 않는다면 아마 항룡유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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