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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80. 겸상 문화와 혼밥 문화

입력 : 2017-02-08 04:40:00 수정 : 2017-02-07 18:3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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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사람들 사이에서 어울리기에 인간(人間)이다. 인간이 농경사회를 이루고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무리에서 떨어져 스스로 고립되지 않으려했다. 그런데 요즘 편의점에 가보면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을 눈으로 느껴진다. 컵라면은 옛날 얘기고 갖가지 도시락들이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간편하게 혼자서 한 끼 식사는 해결할 수 있다. 통계에 따르면 전체가구 중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많아지면서 밥도 혼자 먹고 술도 혼자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우리에게 간편식은 최근의 추세이지만 개인주의의 역사가 오래된 서구에서는 오히려 서서히 감소추세에 있다. 전 세계 간편식 시장의 규모를 보면 2015년 기준으로 763억 달러로 2011년보다 9.6% 감소한데 반해 우리나라 편의점 도시락 시장 규모는 2015년 1329억 원으로, 최근 3년간 70.4%나 급성장하였다. 영양도 생각하여 만든 혼밥 도시락이니 오죽 하겠는가.

나는 매년 일본에 간다. 옛 백제 문화 탐방을 시작으로 일본 곳곳에 남아있는 우리 역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이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일본은 그야말로 ‘나홀로족’ 천국이다. 지금은 보편화되어있지만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칸막이 식당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큰 화제가 되었다. 칸막이가 남에게 피해주기 싫어하는 일본인들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대학 식당에서도 칸막이가 설치되어있을 정도여서 자신만의 여유를 즐기려는 라이프 스타일은 이제 일본의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그런 트렌드를 따라가는 듯하다. 문화1번지 대학로에는 1년 내내 다양한 연극들이 공연 중이다. 예전에는 영화관이나 연극공연장에 혼자 가는 사람이 드물었는데 요즘에는 혼자 공연을 보러 다니는 소위 ‘혼공족’이 많다고 한다. 혼공족들은 “괜히 나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공연을 보게 될까 봐 같이 가자고 권유하기 부담스럽다. 게다가 티켓 값도 부담이 되니 그냥 혼자 다닌다”라고 말한다. 혼자라서 더 집중도 되고 여유도 느낀다고. 그래서 공연계에서는 그들만을 위한 자리를 별도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식사 문화는 전통적으로 겸상(兼床) 문화이다. 물론 독상으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지금의 혼밥과는 차원이 달랐다. 옛날에는 아이들끼리는 둘러앉아 먹었고, 어른이 되면 작은 소반에 독상을 받아 식사를 했다. 간혹 할아버지와 손자는 겸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손자에게 혼자서만 배불리 먹지 말며, 소리 내어 먹지 않는 등 10가지 하면 안 되는 식사예절, 십무(十毋)를 가르쳤다. 일명 밥상머리 교육이었다. 그런 식사는 절제가 가미되어 영양학적으로도 건강한 것이었다. 요즘 초등학교에 비만한 아이들이 많은 것도 부모와 겸상하지 않고 혼자 밥을 먹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으니 겸상이 주는 효과가 분명히 있음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은 겸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부자가 함께 식사하면 잔소리가 시작되고 꾸중을 듣게 되는데 아들은 밥을 먹어도 소화도 안 되고 몹시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가끔 비극적인 일도 일어난다. 기록에 따르면 중종 때 황해도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밥그릇으로 때려 사망케 한 사건이 있었다. 중종이 이를 듣고 패륜이라 하여 황해도 관찰사로 압송하라고 명령을 내렸다가 아들과 아버지가 겸상을 했다가 일어난 일이라는 말을 듣고는 더 이상 죄를 묻지 않았다고 한다.

선친이 경찰서장 시절 우리 집은 언제나 사람들로 붐볐다. 상하 구분 없이 찬이 없으면 없는 대로 다함께 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한 기억이 난다. 식사는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밥을 먹는 행위가 아니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공간이며 시간이다. 그래서 식사에 초대받아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깊은 인연을 맺는 것이다. 우리 젊은 세대가 혼밥에 익숙해지고 또 그렇게 굳어질까 우려하는 것은 그런 인연의 기회가 사라질까해서이다.

“인간은 호랑이나 사자처럼 연중 홀몸으로 살 수 없는 반사회적 반고립적 존재이다”라는 버트란트 러셀의 말이 있다. 욜로족(YOLO·You Only Live Once)의 젊은 세대는 한번뿐인 인생을 최대한 즐기며 살고자 한다. 바쁘게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의 혼밥과 혼술을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과 부딪치며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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