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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77. 서대문형무소 벽돌의 의미

입력 : 2017-01-25 04:40:00 수정 : 2017-01-24 18: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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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회에 참석하였다. 운영자문위원으로 매년 하는 행사지만 해가 갈수록 참석 못하시는 운영자문위원들이 늘고 있다. 연로하신 분들이 많아 올해도 안타깝게도 세 분이 세상을 떠나셨다. 이날 참석하신 운영자문위원 중 한 분이 나에게 문득 서대문형무소 철거할 때 나온 벽돌을 가지고 있는지 물었다. 생각해보니 30여 년 전 서대문형무소 철거 반대 시위를 하면서 한쪽 구석에 쓰레기처럼 버려진 벽돌을 선열들을 생각하며 3개 챙겨왔던 기억이 있다. 두 개는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하나만 간직하고 있다. 질문을 하신 그분은 10여개 가져가셨는데 벽돌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도 그 투박한 빨간 벽돌이 기억난다. 1908년 10월 경성감옥으로 만들어진 서대문형무소 벽돌에는 특별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서대문형무소의 옥사와 담벽의 붉은 벽돌은 항일 운동하다가 수감되셨던 분들이 노역으로 만들었고 벽돌마다 경성감옥을 뜻하는‘ 경(京)’ 자가 깊게 각인되어있다. 이런 벽돌을 항일투사들이 노역장에서 수백만 장을 만들어 건물 짓는데 사용했다고 하니 얼마나 큰 고초를 겪었을지 짐작이 갔다.

1987년 서대문형무소(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으로 옮겨가자 서울시는 서대문형무소를 완전히 철거하고 그 땅을 활용하기 위해 아파트 건설을 계획했다. 철거하면서 나온 벽돌을 그저 폐기물 정도로 인식하고 한편에 방치하였다. 그때의 모습을 기억하는 운영자문위원은 벽돌 얘기를 하면서 몹시 화를 내셨다. 서울시가 선열들이 고초를 당한 현장과 피와 땀으로 만든 벽돌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이다.

서대문형무소 벽돌의 처리과정을 살펴보면 서울시가 1988년 12월 형무소 건물을 철거하면서 업자에게 벽돌을 매각하여 경비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그 당시 서울시가 추산하기로는 처음 철거작업 후에 136만여 장의 벽돌이 나올 거라 예상하였는데 업체가 나중에 벽돌을 세보니 절반도 안 되었다. 워낙 튼튼하게 만들었고 촘촘히 붙어있어 활용 가능한 벽돌이 적었다고. 그때 수거된 벽돌들은 강원도 용평에 있는 한 연립주택에 사용되었다. 서울시가 독립공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이를 회수하려했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뒤늦게 벽돌의 중요성을 인식한 서울시는 나중에 철거한 벽돌은 보관하였다가 1992년 8월 15일 서대문 독립공원이 개장하면서 관람객들이 다니는 통로 바닥에 깔았다. 서울시는 이 통로를 지나면서 일제의 만행과 자주 독립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취지를 담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공무원의 역사인식 부족으로 복원하려 해도 벽돌이 없어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려워졌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만들어 사용한 벽돌은 요즘 벽돌보다 1.3배 정도 컸다. 재질도 무척 단단해서 인부들이 해머로 내리쳐도 쉽게 부서지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지금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일부 건물을 복원중인데 예전의 벽돌을 구할 수 없어 이와 비슷한 중국 벽돌을 수입해 사용한다는 말을 들으니 무관심의 대가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지난해 중국 뤼순(旅順)감옥박물관과 교류 사업을 진행하였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하여 많은 우국지사들이 중국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된 뤼순 감옥은 서대문형무소와는 달리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중국은 보존이 곧 기록이며 역사라는 사실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던 같다.

지난해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관람객은 66여만 명이다. 역사관 측에 따르면 그중 외국인이 10%를 차지하였고 그 대부분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2015년 8월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총리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하여 추모비 앞에서 사죄를 하는 등 지각 있는 일본인들은 과거 저지른 만행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런 역사의 현장을 보존은 커녕 스스로 훼손하였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교육현장으로 자리 잡은 서대문형무소는 나와 뜻을 같이한 선배 지킴이들이 철거반대 시위하다 여러 번 닭장차에 끌려가며 지켜낸 소중한 유산이다. 그때 함께 절규하며 외쳤던 운영자문위원들도 이제는 몇 분 남지 않았다. 90년을 넘도록 서대문형무소를 지켰던 사형장의 ‘통곡의 나무’는 한이 얼마나 많았던지 나이를 먹었어도 메마른 모습으로 말없이 그 자리에 서있었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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