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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68. 갈 수 없을 때 향수(鄕愁)는 짙어진다

입력 : 2016-12-26 04:40:00 수정 : 2016-12-25 18: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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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는 산란기가 다가오면 바다에서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거슬러 올라가 짝짓기를 마치고 죽는다. 수정된 알은 부화하여 이듬해 봄이 되면 연어는 다시 바다로 나간다. 그리고 3~5년이 지나면 태어난 하천으로 반드시 돌아온다. 연어에게 고향은 바다가 아니라 태어난 강이다. 태생적으로 모천회귀성이 있어 본능적으로 고향으로 돌아가려한다. 설사 가는 도중에 죽는다 해도 말이다.

‘예기(禮記)’ ‘단궁상편(檀弓上篇)’에 보면 “옛사람이 이르기를 여우가 죽을 때 머리를 자기가 살던 굴 쪽으로 바르게 향하는 것은 인(仁)이라고 하였다.(古之人有言 曰狐死正丘首仁也)”이라는 글귀가 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했다. 즉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며,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결국 사람의 도리라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그 나라 국민임을 증명하는 국적을 갖게 된다. 자유의사에 따라 마음대로 국적을 바꾸면 안 되지만 국적을 포기하거나 귀화하여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하는 일들이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외국의 경우 국적을 바꾸는 이유는 대부분 세금 때문이다. 프랑스의 국민배우 제라르 드빠르디유를 비롯하여 많은 세계적인 스타들이 자국의 높은 세금 때문에 이를 피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세금이 낮은 곳으로 국적을 바꾸고 있다.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국적도 포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적은 바로 병역문제와 직결된다. 병역을 면제받기 위해 한국 국적을 포기하는 이중국적자들이 매년 늘고 있다고 한다. 국적 포기를 얘기하면 떠오른 사람이 있을 것이다. 가수 유승준이다. 그는 군대에 간다고 하고서는 미국으로 건너가 2002년 시민권을 취득하였다. 그를 좋아했던 많은 사람들이 약속을 저버린 행동에 크게 실망했다. 병무청은 유승준의 입국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가 이를 받아들였다. 그렇게 15여년이 흘렀다.

유승준은 현재 소송 중이다. LA 총영사관을 대상으로 제기한 사증발급 거부취소 소송에서 패소하고 항소심 변론기일이 지난 22일 열렸다. 그는 변론기일을 앞두고 “군대에 가겠다는 말을 했다가 지키지 못했고, 국외여행허가서를 받아 출국한 뒤 미국 시민권을 취득해서 이런 조치를 당한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유승준에 대해서만 유일하게 영구 입국금지를 한 것은 가혹한 괘씸죄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였다. 그는 가혹하다 말하지만 법 또한 국민정서라 할 수 있으니 어찌 가혹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자 일제에 의해 강제로 사할린으로 끌려간 동포들이 고향에 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배가 없었고, 일본인들은 배를 내어주지 않았다. 마냥 바다만 쳐다볼 수 없어 나무로 배를 만들고 항해사도 없이 무작정 바다로 나갔다가 많은 동포들이 바다에 수장되었다. 해변에 떠밀려온 시신들을 수습하여 매장했던 사할린 동포는 영혼이나마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바다 가까이에 묘역을 만들고 ‘조선인 조난 위령비’를 세웠다.

그 후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사할린에 남았던 사할린 동포 10위의 유골이 지난 9월 22일 천안 ‘국립 망향의 동산’에 안치되었다. 비행기로 3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데 고향땅에 묻히는데 70년이 걸렸다. 죽음을 앞둔 여우나 심지어 연어조차도 머리를 고향으로 향한다. 하물며 사람은 말해 무엇 하랴. 사람은 나이를 먹어도 또 멀리 타지에 있어도 마음은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仁)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나라가 힘이 없을 때 어쩌지 못했던 동포는 국적마저 강요당했다. 그래서 더욱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지구촌 시대에 국적은 바꿀 수 있다 해도 고향을 지울 수는 없다. 고향은 오랜 세월 혈연으로 뭉쳐진, 단지 지역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 있을 수는 있지만 고향을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고향이라는 말만큼 살가움과 그리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말이 있을까.

향수(鄕愁)는 그리움이다. 유승준이 “아이들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아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 그도 뿌리는 잊지 않고 있다 할 것이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을 때 향수(鄕愁)는 그만큼 짙어진다. 오죽했으면 여우가 죽을 때 자기가 살던 굴을 향해 머리를 두겠는가. 살면서 머리 향할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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