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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58.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입력 : 2016-11-21 04:40:00 수정 : 2016-11-20 18: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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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처칠 수상의 얘기다. 어느 날 번번이 낙선한 화가로부터 심사위원의 자질에 대한 불평을 들었을 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달걀은 낳지 못하지만 어떤 달걀이 좋은 건지는 압니다. 마찬가지로 그림을 못 그리는 심사위원일지라도 좋은 그림이 어떤 건지는 판단할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심사위원들이 편파적이거나 잘못 심사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미술계 쇄신문제는 정치인에게 맡기고 당신은 그림 그리는 것에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국민은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기며 그렇게 지내왔다. 그런데 세월이 가도 정치는 달라지는 것이 없었다. 보다 못한 국민은 4‧19혁명과 6‧29선언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냈다. 한때 좌절된 적도 있었지만 변화의 바람은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고 지금 또다시 변화를 원하고 있다. 국민들은 박 대통령의 퇴진을 원하고 있지만 청와대의 행보는 퇴진이나 하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물 건너간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다.

지난 10월 문화계에 만연한 성추행에 대해 폭로가 잇달았다. 그동안 부끄럽다며 감추었던 일들이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변화보다는 안정을 더 원했다. 먹고사느라 바쁜 탓도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변화에 대해 방관자였던 사람들이 직접 행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 12일 청계광장과 광화문에 100만 명이 모여 벌인 촛불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추운 날씨에도 100만개의 촛불민심을 보여주었음에도 박 대통령은 주춤했던 국정운영을 재개하였고, 검찰 조사 역시 서둘러 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야당은 이렇다 할 시국수습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먼저 제의한 영수회담을 취소했고 총리 추천은 제대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민이 차려 놓은 밥상에 그저 숟가락 하나 얹더니 이제는 야권 분열의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고 계산기 두드리는 소리만 들리고 있다.

얼마 전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끝난 미국 대선은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득표율은 높았지만 선거인단 수에서 패배한 힐러리는 미국사회가 요구하는 변화의 움직임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대선이 있기 전 다(茶)모임에서 지인들에게 트럼프의 당선을 예측했다. 그 이유를 묻는 지인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트럼프는 막말은 하지만 변화를 원하는 밑바닥 민심에는 힐러리보다 정통합니다. 그러니 트럼프가 이길 수밖에요”

대선이 끝난 지금 미국은 대선 후유증을 앓고 있다. 대안과 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요청이 갈등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할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본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자를 만났다.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두 사람이 나눈 얘기는 우리에게 유리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세계는 전환기를 맞아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 변화가 우리를 얼마큼 힘들게 할 것인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데도 우리는 지금 국내문제도 해결이 여의치 않다.

시골 작은 병원 외과 과장에게 본원에서 좌천되어 온 젊은 의사가 물었다. “선생님은 좋은 의사인가요? 아니면 최고의 의사인가요?” 그러자 외과 과장이 말했다. “그것은 환자에게 물어봐라. 자네는 어떤 의사를 원할 것 같은가?” “물론 최고의 의사지요” “아니. 환자는 필요한 의사를 원해. 자네가 시스템을 탓하고 세상을 탓하지만 그렇게 남 탓을 해봐야 세상에서 바뀌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자네가 바뀌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아.”

TV드라마 속 주인공의 말이다. 지금 국민이 원하는 것은 좋은 정치인도 아니고 최고의 정치인도 아니다. 혼란한 정국을 수습할 필요한 정치인일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대통령을 포함하여 수많은 정치인을 뽑았지만 끝이 좋은 대통령이 없었고, 존경받은 정치인도 드물다. 그래서 그 말이 강하게 내 귀에 꽂혔을 것이다.

“일을 꾀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마라. 일이 쉽게 되면 뜻을 경솔한 데 두게 되나니, 여러 겁을 겪어서 일을 성취하라 하셨느니라.”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의 말처럼 이번 국정농단 사태가 경솔하게 수습되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 정치가 힘든 상황이기는 하지만 여러 겁을 겪어야만 성취될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자칫 정치적 무리수를 두어 변화의 갈림길에 서있는 국민에게 큰 짐을 지우지 않았으면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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