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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57. 불통에 호통을 친 사람들

입력 : 2016-11-16 04:40:00 수정 : 2016-11-15 18:5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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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청계광장과 광화문에서는 약 100만 명의 시민이 모여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있었다. 이는 2000년대 들어 최대 규모이며, 2008년 6월10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모인 70만 명을 초과했다. 그 덕에 촛불집회 인근 편의점의 매출은 급증했다고 한다, 매출액 중 양초, 종이컵의 판매비중이 높았다. 박 대통령의 사과문 발표 이후 양초의 매출은 꾸준히 증가했고 12일에는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 양초 사용할 일이 별로 없는 현대사회에서 양초가 많이 팔리는 현실을 어떻게 봐야할까.

인간이 횃불 대신 초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약 2000년 전으로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어두운 밤을 밝혀 주는 중요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초를 만드는 일은 역사상 가장 오래된 산업 가운데 하나였다. 서기 100년 무렵에는 그리스와 로마 사람들이 아마실에 밀랍이나 송진을 묻힌 초를 사용했고, 밀랍 초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들은 400년대의 페니키아 사람들이었다.

우지(牛脂)를 사용한 초는 저렴해서 중세 시대에도 사용됐으며, 파라핀이 널리 보급된 19세기 중반까지 계속됐다. 그 후 가스와 전기가 도입되면서 불을 밝히는 초의 수요는 점차 줄었다. 초는 사찰이나 성당 등 종교적인 장소에서 주로 사용됐다. 요즘은 집 안의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양초는 서양에서 들어온 불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초가 사용된 시기는 고조선 시대부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경주 안압지에서 초가위가 출토된 것을 보면 삼국시대 때 이미 초가 사용됐음을 알 수가 있다. 초는 주로 궁궐이나 한정된 상류계층에서만 사용하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초의 제조법이 널리 알려져 일반인들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근대화 이후 전기사정이 안 좋았던 시절 가정마다 비상용으로 비치했던 양초가 이제 다시금 세상을 밝히기 시작했다.

초에 불을 붙이고 거기에 마음을 담는 순간 더 이상 초가 아니다. 촛불은 자신의 몸을 불살라 희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저항과 바람의 불꽃이다. 촛불 하나는 자신만을 비추지만 촛불이 둘이 되고 셋이 되면 너와 나가 아닌 세상을 비추게 되는 것이다. 세상에 감춰진 어둠을 조금이나마 걷어내는 것이다.

촛불이 집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968년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시위에서였다. 당시 마틴 루서 킹 목사 등 반전 운동가들이 촛불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우리가 종이컵에 양초를 넣은 촛불시위를 시작한 것은 2000년 이후다.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에 사망한 두 여중생의 추모집회에 이어,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서 큰 규모의 촛불시위가 전개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촛불시위 역사는 미국이 만들어준 셈이다.

지난 12일 촛불시위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거대한 물결을 이뤘다. 시민들의 함성이 광화문을 지나 청와대까지 울려 퍼졌다. 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참가한 행진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교복부대’였다. 공정하지 못하고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너무 쉽게 대학에 들어가는 것에 학생들은 허탈감과 분노를 표시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기 위해 집회에 참석하게 됐다”고 말한다.

정조(正祖)는 “말하지 말아야 할 때 말하는 것은 그 죄가 작지만, 말해야 할 때 말하지 않는 것은 그 죄가 크다.(未可以言而言者 其罪小, 可以言而不言者 其罪大)”고 했다. 우리는 지금 그 죄가 얼마나 큰지 보고 있다. 분별없는 정치를 하면 나라가 어찌 되는지 분명히 알았다. 그날 불통에 화가 난 국민들이 촛불을 높이 들고 호통을 쳤다. 후세에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큰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퇴진하라”고 소리쳤다. 이제 국민이 말을 했으니 대통령의 답을 들을 차례다.

국민이 높이 든 촛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촛불은 작은 바람에도 꺼지기 쉬워도 백만 개의 촛불은 스스로 끄기 전에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는 100만 명의 촛불집회를 본 후 “민심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은 나라에 살고픈 국민의 강한 염원을 안다면 대통령은 현명한 판단을 하리라 믿는다. 촛불시위가 저항이 아닌 신뢰가 되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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