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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54. 군주의 첫 번째 과오

입력 : 2016-11-07 04:40:00 수정 : 2016-11-06 18: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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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날 때마다 나는“웃으세요. 많이 웃어야 합니다”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면 대부분“웃을 일이 있어야 웃죠” 하고 대답한다. 사는 게 힘드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웃어서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지, 좋은 일이 있어서 웃는 경우가 얼마나 되겠는가. 웃음은 즐거워서 웃지만 자신의 고통이 남에게 전달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정이 많고 자비가 있어 웃으라는 얘기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남에게 보이는 것 자체가 큰 업을 짓기 때문에 많이 웃으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웃음도 가슴속으로 들어와야 웃을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일생 동안 50만 번 이상 웃으며, 성인은 하루 평균 8번밖에 웃지 않는다고 한다. 감정이 메마른 것이 아니라 살면서 웃을 일이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웃음의 종류 중에 삼소걸(三笑乞)이 있다. 실상(實相)을 보고 웃고 허상(虛相)을 보고 웃고, 실상과 허상을 보고 웃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해 실상과 허상을 보고 웃는 것을 보고 웃는 것. 요즘 우리가 웃는 웃음이 그런 것이 아닌가 한다.

사람이 살면서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겪지만 웃음이 있기에 그나마 어려운 시간도 견디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전 국민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지금 우리 국민에게서 ‘희락(喜樂)’은 사라지고 분노와 근심만 남은 것 같다.

“정곽군(靖郭君)이 제나라 재상일 때 옛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 친구는 부자가 되었다. 정곽군은 근신(近臣)에게 수건을 주었더니 그 근신은 권세를 가졌다. 군주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수건을 얻는 것은 하찮은 거지만 그것으로 두 사람은 부자가 되고 위세가 커졌다. 더구나 군주로부터 상벌의 권력을 빌려 쓴다면 더할 것이다.”

한비자(韓非子)는 군주를 망치는 여섯 가지 과오(六微) 중 첫 번째로, 신하가 군주로부터 권세를 빌리면 세력이 증대하여 나라 안의 백성들이 그 신하를 위해 일하게 되고, 군주는 귀와 눈이 가려져 버린다고 하였다. 군주의 행동을 경계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찌 친구나 근신만의 잘못이겠는가. 사리분별 없이 권세를 부리게끔 빌미를 제공하고 이를 묵인하여 국가의 기강을 흔들도록 만든 군주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할 것이다.

“자기에게 아첨하는 자를 가까이하고, 자기에게 충고하는 자를 멀리하며, 정직한 것을 웃음거리로 여기고 충성을 원수로 여기는 자들은 아무리 실패하지 않으려 해도 모든 것에 실패한다.”는 순자(荀子)의 말처럼 국민이 분노하는 오늘의 이 국가적 망신은 대통령이 자초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5%로 떨어진 지난 4일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입니다.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습니다.”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담화문을 읽는 대통령을 보면서 과오에 대한 해명이 되었거나 진정성을 느낀 국민이 있었을지 의문이 든다.

이번 ‘최순실 게이트’는 최순실 개인의 비리도 있지만, 정곽군이 이야기를 나누고 수건을 준 것처럼 대통령이 최순실로부터 도움을 받고 왕래한 것에 기인했음을 분명하게 알아야한다. 그런데도 국민들이 듣고 싶은 의혹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시원하게 해명하지 않고 질문도 없는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하면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이 달래질 거라 생각했을까. 허탈감에 빠진 국민의 얼굴에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4대 위기에 놓여있다. 북한 핵실험의 안보위기, 해운조선업의 불황 등의 경제위기, 경주 지역의 지진 같은 환경위기, 그리고 대통령과 국민과의 불통인 신뢰의 위기다. 그중 제일 큰 위기는 바로 신뢰의 위기다. 얼마나 신뢰위기가 컸으면 주말 저녁이면 시민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겠는가. 나라의 우환을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고 있는 것 같아도 국민들이 대통령을 주시하고 있고, 수많은 국민들의 손이 자신을 가리키고 있음을 대통령은 알아야한다. 대국민담화문 발표로 검찰 조사를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니 헌정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수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본격적으로 수사가 이루어지면 국민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씁쓸함에 웃음을 짓지는 않을까. 실상과 허상을 보고 웃는 허탈한 웃음 말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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