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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31. 성덕대왕신종, 천년의 소리를 재현하다

입력 : 2016-08-08 04:40:00 수정 : 2016-08-07 18: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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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종소리는 불가에서 부처님의 진리를 상징한다. 불가에서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범종을 만들고, 또 종을 치는 것은 부처님의 진리를 널리 퍼져나가게 한다는 의미가 있어 범종에서 울리는 소리를 흔히 법음(法音)이라고 부른다. 현재 가장 오래된 범종은 오대산의 상원사동종(上院寺銅鐘)이다.

한국의 범종은 세계적으로 그 모양과 소리를 인정받아 한국종이라는 학명을 갖고 있다. 한국의 범종은 중국 종이나 일본 종과는 비교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소리의 울림이다. 소리가 일직선으로 퍼지지 않고, 그 소리가 맺혔다가 풀리기를 거듭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범종의 소리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으면서도 다시 이어지면서 긴 여운을 남긴다. 그렇게 맺고 풀리기를 이어가는 종소리는 마침내 허공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굳이 불교를 믿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해질녘 산사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고 너그러워 지는 것은 아마도 우리 범종 소리의 그러한 특징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에 맺혔던 스트레스나 근심과 번뇌가 종소리처럼 맺혔다가 풀리기를 거듭하면서 어느 새 텅 비워지기 때문이 아닐까.

오랫동안 우리 산하를 지키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은은한 울림을 주던 범종이지만, 세월을 겪으면서 큰 수난을 겪었다. 일제의 막바지 전쟁을 위해 숟가락까지 훑어가야 했기에 범종들도 강제 공출을 피할 수 없었고, 6.25 전쟁 때에도 허다한 범종들이 이런저런 사정으로 소실되거나 깨어져 버렸다. 1966년 한국문화재연구회의 조사에 따르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졌던 그 많은 범종 가운데 겨우 77개의 범종만이 남아있다고 한다.

사라진 것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정서이겠지만, 울진의 불영사(佛影寺) 범종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경북 울진의 불영사를 찾은 한 일본인이 종각에 걸려 있어야 할 범종이 보이지 않아 그 이유를 물었다가 주지로부터 일제강점기 때 범종이 강제로 공출되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참회의 뜻으로 범종을 만들어 불영사에 기증을 했다. 그는 속죄하는 마음으로 ‘참회의 종’을 복원하여 다른 사찰에도 기증했다는 이야기를 생각하면 우리가 먼저 복원하고 그 복원기를 또박또박 새겨 놓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범종을 얘기하자면 고 조규동 박사를 빼놓을 수 없다. 사재를 털어 전국 사찰의 범종을 찾아 그 종소리를 모두 녹음을 한 분이다. 녹음장비도 변변한 게 없던 시절, 녹음장비를 싣고 험한 산길로 다니느라 몸도 고생했고 금전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조 박사의 범종 녹음 작업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다. 보신각종을 녹음할 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이라 자정이 지난 시간에 했는데, 동네 개들이 일제히 짖는 바람에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인근 개들을 몽땅 가뒀고, 집집마다 다니며 밤중에 혹 종소리가 들리더라도 놀라지 말라고 알려 놓고서야 겨우 제대로 된 소리를 담을 수 있었다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가 녹음해둔 77개 범종소리 중 에밀레종, 상원사 동종, 용주사 대종 등 신라 범종 3종과 천흥사 종, 내소사 종 등 고려 범종 6종, 조선 범종 11종의 소리가 특히 아름답다. 그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얼마 전 신나라뮤직 대표가 내게 전해온 ‘신라 범종’이라는 CD 덕분이다. 이 CD는 조규동 박사의 노작이 LP판으로 담겨졌던 것을 소리 문화유산 보존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레코드 회사 신나라뮤직에서 `신라 범종'이라는 이름으로 CD로 복각한 것으로, 아리랑 보급에 힘을 보태겠다면서 내게 전달해준 여러 자료 가운데 하나이다.

지난 달 12일 2003년 이후 타종이 중단된 성덕대왕신종이 1245년 만에 첨단기술로 완벽하게 재현되었다. 이번‘신라대종’으로 명명된 성덕대왕신종은 실물을 완벽하게 재현하도록 제작되었는데 음향에 있어서도 여음을 결정하는 1차 고유진동수가 완벽하게 일치하여 웅장한 성덕대왕종 고유의 종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공개 타종할 예정이라니 설레면서 기다리게 된다.

예전 공주 마곡사에 머물 때 새벽잠을 깨우는 청아한 범종소리는 지금도 잊지 못한다. 전통기법이 아니고서는 낼 수 없는 우리의 범종소리. 이제 성덕대왕신종과 같이 장인의 혼과 얼을 담은 천년의 범종소리가 우리 산하에 널리 펼쳐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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