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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26. 자신의 역량을 아는 팀은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

입력 : 2016-07-20 04:40:00 수정 : 2016-07-19 18: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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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의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말은 참 흔하게 인용된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는 말이지만, 그것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조선 중기 문신인 이수광(李睟光)은 이 말을 받아 “양력이행, 즉가구이불패 (量力而行, 則可久而不敗)”즉, 자신의 역량을 헤아려 행동하면, 오래 가면서도 실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처방전을 내렸다.

전반기를 마친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가 바로 그런 경우다. 넥센 히어로즈는 48승36패1무, 승률 5할7푼1리로 3위를 차지하며 전반기를 마쳤다. 4위 SK(43승42패)와 승차는 5.5경기였다. 시즌 초반만하더라도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넥센을 약체로 꼽았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강정호에 이어 박병호가 메이저리그로 떠났고, 벤헤켄은 일본으로, 유한준과 손승락도 다른 팀으로 가는 등 주축 선수들이 대거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박병호의 이적으로 목돈이 들어왔다고는 하나 넉넉하지 못한 넥센의 재정 상태로는 만족할 만큼 연봉을 줄 수 없어 스타급 선수 영입은 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넥센은 철저하게 자신을 알고 이를 바탕으로 수립한 전략으로 전반기를 임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중심에는 염경엽 감독이 있었다. 염 감독은 주축 선수들이 빠져나갈 것에 대비하여 작년부터 준비를 했고, 그 결과 믿고 있던 불펜투수인 한현희와 조상우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어 전력이 누수가 된 상태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 동안 눈여겨 본 신인들을 1군으로 올려 주전 선수들의 빈자리를 메우는 대안을 내놓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부름을 받은 신인선수들은 감독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올 시즌이 개막한 뒤, 잠시 주춤했지만 넥센은 부동의 상위권 자리를 지켜내면서 시즌 전반기를 마무리해낸 것이다.

염 감독은 "어린 선수부터 고참 선수까지 모두가 불평, 불만 없이 자기가 맡은 역할을 잘 해줬다. 선수단은 물론 프런트, 코칭스태프 등 모두가 하나로 뭉쳐서 지금까지 과정을 잘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염 감독이 그렇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감독의 선수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있었고, 이를 선수들이 믿어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시즌 중에 내야수 서동욱 선수를 조건 없이 기아로 보내준 염 감독의 결단이었다. 넥센에서는 제 기량을 발휘할 기회가 적을 것 같은 서동욱 선수의 미래를 위해 구단을 가려 흔쾌히 보내준 염 감독의 결정을 보면서 남은 선수들이 어떤 생각을 했을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 염 감독을 보고 모두들 지장(智將)이니 덕장(德將))이라 말하는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그렇게 선수들이 자신을 믿고 따르게 만들 수 있으니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 역시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사실 객관적 조건에서 부족하기만 한 넥센이 엄청난 구단들과 맞설 수 있었던 것은 누가 뭐라해도 팀의 결속력이었다. 지난 수년 간 다져진 그 결속력이야 말로 올해도‘할 수 있다’는 정신으로 팀을 하나로 만들었고 무엇을 해도 되는 팀이 되었다고 하겠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던 토종 투수 신재영은 10승을 올렸고, 박주현과 최원태 같은 새내기 투수들도 제몫을 다해주지 않았는가. 그렇게 기량이 뛰어난 신인 선수들이 계속해서 마운드에 오르니 다른 팀 감독들은 넥센을 화수분 구단이라며 부러워하지만, 그동안 늘 준비하는 자세로 선수들을 관리해오지 않았다면 어찌 화수분이 가능했겠는가.

얼마 전 오랜만에 고척 돔구장을 찾았다. 경기를 보면서 넥센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선수와 감독, 그리고 구단 관계자들이 하나임을 느끼는 순간 넥센이 한국시리즈의 주역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직도 흔들릴 여지가 있는 팀이다. 항상 위기라 생각하고 경기에 임한다.”고 말하는 염 감독을 지켜보면서 내 예상이 그리 틀리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었다.

나를 아는 것이 어디 프로야구뿐이겠는가. 하루도 편할 날 없이 시끄러운 나라 살림도 결국에는 자신의 역량을 가늠해 미리 대비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사안 조차도 아까운 시간 다 놓치고 허둥대는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재연되지 않았으면 한다.

넥센은 올해 고척 돔구장으로 새 둥지를 틀고 전반기에 이어 후반기에도 팬들을 편안하게 맞이하고 있다. 넥센은 올해보다 내년, 내년보다는 내후년인 2018년에 대권에 도전해 볼 전력이 갖춰질 것이라는 감독의 말대로, 한국 프로야구에 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넥센이 후반기에도 좋은 성적을 기대해보아도 좋을 것 같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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