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월드

검색

[차길진과 세상만사] 25. 언제나 아리랑과 함께 하셨던 분들의 명복을 빌며

입력 : 2016-07-18 04:40:00 수정 : 2016-07-17 18:12:39

인쇄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열흘 전 전국적으로 장대같은 비가 내리더니 강원도 정선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4일 밤 9시쯤 정선의 마을 경로당에서 아리랑 전수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리랑 회원 4명이 폭우로 물이 불어난 광덕계곡으로 타고 가던 차가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이들은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 아리랑을 배우는 주경야습(晝耕夜習)을 몸으로 보인 아리랑 전수 교육생들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리랑에 대한 열정과 남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어 정선아리랑제 아리랑 경창대회에서 대상과 우수상을 받은 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아리랑을 배우고 전수받았다는 얘기를 듣고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으로서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가 없었다.

젊은 사람도 많지 않은 농촌에서 농사일을 마치고 지친 몸을 쉬기보다는 배우고자 했던 아리랑. 애국가를 제외하고 우리나라 국민의 가슴을 찡하게 울리는 노래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아리랑일 것이다. 기분이 좋을 때는 흥겹게 힘들고 괴로울 때는 서로 애환을 달래며 부르는 노래가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전국적으로 많다. 많이 알려진 아리랑도 있고, 잘 모르는 아리랑도 있지만 모든 아리랑이 나름의 사연과 애환이 있어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1896년 고종의 외교고문으로 아리랑을 최초로 서양 악보로 채보한 미국인 선교사 헐버트(H. B. Hulbert)는 “포구 어린애들도 부르는 아리랑은 조선 사람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으며, 조선 사람들은 즉흥곡의 명수로 바이런이나 워즈워즈에 못지않은 시인들이다… . 아리랑은 한국인에게는 쌀과 같은 중요한 노래”라고 했으니, 그 옛날 낯선 외국인이 보기에도 우리 민족이 얼마나 아리랑과 함께했는지 짐작할 수가 있다.

사고가 일어난 정선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아리랑의 고장이다. 정선아리랑의 원래 명칭은 ‘아라리’다. ‘아라리’는 정선 뿐만 아니라 강원도 태백산맥을 축으로 뻗어나가 강원도 일대에 넓게 퍼져 있다. 이는 ‘아라리’가 강원도를 비롯한 우리나라 동부지역 산간지대의 문화 환경을 배경으로 전개된 강원 민속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정선아리랑은 고려가 망한 후 불사이군의 충절을 다짐하던 고려의 유신들이 송도에서 은신하다가, 그 중 7명이 정선으로 은거지를 옮기게 됐다. 이들은 지난 날 고려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생활을 하다가 회상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의 심정을 한시로 지어 율창으로 부르곤 했다. 이들이 지어 비통한 심정을 담아 부르던 시는 마을사람들이 부르던 소리에 실려 애절함을 더해갔다.

정선군청에서 소개하는 정선아리랑의 유래인 데, 민족의 얼과 한이 담긴 아리랑의 유래가 어찌 고려 말부터 시작되었겠는가. 아리랑은 민중의 삶속에서 오랜 세월 자생되었다. 특히 정선은 지리적 여건과 저항 정신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저 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잠시 잠깐 임그리워서 나는 못살겠네”

정선군 여량면을 흐르는 아우라지는 물길 따라 목재를 한양으로 운반하던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객지로 떠난 님을 애달프게 기다리는 남녀의 애절한 마음을 적어 읊은 것이 아리랑 가락에 실려 널리 불려왔다.

이처럼 정선아리랑은 목재를 운반하는 뗏꾼들의 애절한 ‘아리랑’으로, 경복궁 중수의 노동요 ‘아리랑’으로,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과 항일의병활동 중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의기(義氣)의 ‘아리랑’으로 시대를 반영하고 민초들의 애환이 어우러져 강원도의 아리랑, 정선의 아리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선아리랑 채록 가사는 5000수가 넘는다. 가사가 아무리 많아도 아리랑은 하나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아리랑에는 남과 북 같은 이데올로기가 없는 것이다. 그저 가슴을 열고 부르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오랜 세월 전수와 전승이라는 자연스러운 교감으로 발전한 정선아리랑은 우리 삶의 소리였다. 사고를 당하신 정선의 아리랑 회원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은 애도를 표하며, 주경야습(晝耕夜習)했던 분들이 계셨기에 정선아리랑이 그 맥을 면면히 이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 세계비즈앤스포츠월드 & sportsworldi.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

연예
스포츠
라이프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