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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9. 전쟁의 깊은 상흔을 치유하고픈 지리산

입력 : 2016-06-27 04:40:00 수정 : 2016-06-26 18: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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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의 달인 6월, 매월 가는 국립 대전현충원이지만 지난 19일은 발걸음이 유난히 무겁기만 했다. 그 이유는 국립대전현충원 내 502묘역에 6.25 전쟁 때 지리산(智異山)에서 싸웠던 전투경찰대원들이 선친과 함께 잠들어있기 때문이다. 선친은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 하나로 열악한 환경 속에서 후방전투에 임했던 전우들과 같이 있어 행복하시리라 믿는다.

6.25 한국전쟁은 1129일 동안 전후방이 따로 없었다. 군인들 간의 정규전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로 중지되었으나 지리산 깊은 곳에서는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 지리산에 잔존하는 빨치산과 전투경찰과의 전투는 정전협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지리산에서 총성이 멎은 것은 정전협정을 맺고도 2년이 지난 1955년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특히 지리산 일대는 그 피해가 심했다. 전쟁과 치안 확보를 우선시 했던 때라 그 와중에 많은 문화재도 피해를 입었다. 천년고찰인 내장사가 불타 없어졌고, 수많은 이름 모를 작은 사찰들도 전화(戰禍)로 사라졌다. 그나마 구례 화엄사를 비롯하여 천은사, 쌍계사, 금산사, 선운사, 백양사는 선친의 기지(機智)와 노력으로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한다’고 했던 지리산은 이념의 갈등으로 5년 동안의 지혜롭지 못한 전쟁으로 온갖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지난 60여 년간 지리산은 조용히 전쟁의 깊은 상흔을 치유하고 있으며, 생태계를 복원하는 노력이 한창이다. 그런데 해발 1212m의 지리산 왕시루봉(峰)에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별장이었다고 하는 구조물 12동 때문에 몇 년째 갈등을 빚고 있다고 한다. 이 구조물을 보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서 말이다. 2008년 지리산기독교선교유적지보존연합에서 그 구조물을 근대문화재로 지정하려했지만 지은 지 50년이 되지 않아 심의대상에 오르지 못하다가, 50년이 된 2012년 다시 근대문화재 지정을 신청하였다, 그러나 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 만장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현재 지정이 보류되고 있다.

이 구조물은 위법건축물로 판단되어 이곳의 관리주체인 서울대로부터 이미 철거결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기독교계의 단체들은 이 구조물을 보존해야 할 근대문화유산이라고 주장하고 현재까지 철거가 이행되지 않고, 관련 행정기관에서는 시민단체의 눈치를 보면서 문화재청의 결정만을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이 구조물은 대부분 노후화되어 자칫 큰 비라도 오면 곧 쓰러질 정도이고, 오직 후손의 한 사람이라는 인사가 관계기관의 관심소홀을 틈타 그간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등산로가 폐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드나들며 개인용도로 구조물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비추어보면, 만약 문화재청이 근대문화재로 지정한다면 훼손된 건물의 복원 및 수리를 위한다는 이유로 사람과 자재들이 자유로이 출입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을 특별보호구로 지정하고 자연환경보호를 위해 폐쇄된 등산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게 되고 말 것이다. 그래서 환경단체는 “이곳은 지리산 국립공원 자연보존지구이자 반달가슴곰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특별보호구이기에 반드시 철거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는 지난 10년 동안 꾸준히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을 해 왔고 2020년까지 생존 개체수인 50마리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반달가슴곰의 주요 서식지인 왕시루봉 주변 구조물을 근대문화재로 지정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게 된다면 그동안의 생태계보존사업은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것이다.

지리산 왕시루봉은 서양인들이 별장 터로 자리 잡기 이전에 우리의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자연 보고(寶庫)다. 사실 지리산 노고단에 있던 서양인 별장은 6.25 전쟁 때 전부 소실되었고, 1962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틈을 타서 왕시루봉으로 옮겨지어진 구조물일 뿐이고, 개인의 여름별장 비슷하게 쓰일 뿐이다. 단지 옮겨지은 지 50년이 지났다 하여 근대문화재로 지정해야 하는 지 의문이다.

계곡 지명조차 갈등을 연상케 하는 지리산. 이제 겨우 전쟁의 상흔이 아물어가고 있는 민족의 성산 지리산을 전쟁 이전보다 훨씬 자연 그대로,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유산으로 잘 가꾸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지 않은가. 근대문화재 지정 조건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하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많은 자원을 들여 보존하려는 환경 생태적 가치보다 과연 우선할 수 있는 구조물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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