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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7.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 세계 여행

입력 : 2016-06-20 04:40:00 수정 : 2016-06-19 18: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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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로마 땅을 밟은 그날이야말로 나의 제2 탄생일이자 내 삶이 진정으로 다시 시작된 날이라고 생각한다.” 이 말은 17~18세기 유럽인들의 선망의 대상인 이탈리아를 여행한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한 말이다. 훗날 그가 대작 <파우스트>를 집필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하니 이탈리아 여행이 얼마나 그에게 문화적 식견과 예술적 영감을 주었는지 짐작이 간다.

여행이 좋은 것은 낯선 것에 대한 설렘이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자유롭게 만나게 하고, 그래서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겐 대문호 괴테는 아닐지라도 여행을 통해 문화적 성취를 이루어낸 분들이 있다. 고산 김정호(金正浩)는 교통수단도 마땅하지 않던 시절, 전국을 여행하면서 지리지를 작성하고 측량을 하여 세계적으로도 자랑스러운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작품을 남겼다. <열하일기>로 수준 높은 인문서를 남긴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또 어떠한가.

그래도 여행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은 김찬삼(金燦三), 바로 그다.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 지도와 카메라만 메고 전 세계를 일주한 김찬삼 선생이 김정호 선생과 같은 황해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이런 우연도 있나싶어 고개를 갸우뚱한 적이 있다.

세계를 누빈 길손, 김찬삼은 생전에 160여 국가와 1000여개의 도시를 방문한 우리나라 최초의 현대인 세계여행가이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여행도 여의치 않았던 1958년 9월, 그는 더 큰 세상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세상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 대한 도전과 집념이 없었다면 결코 실행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1997년 2월까지 근 40여 년간 모두 20차례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1963년에는 아프리카 가봉에서 슈바이처 박사를 만나기도 하였다.

그는 나름의 여행 원칙이 있었다. 첫째, 여행의 목적은 지리학적 연구와 인간 수업이다. 둘째, 건강을 유지한다. 셋째, 검소한 여행이 세계 사람을 만나 보편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넷째, 눈으로 보고 몸을 부딪치고 느낀다. 다섯째, 그러한 여행의 내용은 모두 기록으로 남긴다. 여섯째, 세계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는 미소를 잃지 않는다.

그 시절 그의 세계여행기를 읽은 젊은이들은 배낭만으로 홀로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것에 적잖은 충격과 함께 도전심을 키웠고 꿈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문정희 시인의 친구는 시집갈 때‘김찬삼 세계여행기’한 질을 혼수품으로 갖고 갔을까. 그리하여 친구는 밤마다 세계를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나도 여행이라면 참 많이 다녔다. 젊은 시절 청춘의 혈기를 식히기 위해 전국 무전여행은 물론, 선지식을 찾아다니던 구도의 여행으로 내 발걸음은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갔다. 그중에는 즐거운 여행도 있었지만, 2004년 11월 뉴욕에서의 9.11 진혼제, 2005년 일본 삿포로 한인위령제, 2006년 백두산 한민족위령제 같은 가슴 아픈 여행도 있었다. 2007년 버뮤다 크루즈 여행, 2009년 이태리 문화여행 등은 내게 새로운 안목을 키워준 여행이기도 했는데 100여 명이 넘는 후암 가족들이 함께한 많은 여행은 여행이외의 소득도 나누어 가지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여행은 인간의 독선적 아집을 깬다고 했던가.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와 예술을 통해 또 다른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나 자신을 내려놓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어떤 여행을 하느냐에 따라 사고(思考)의 깊이가 달라지니,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는 만큼 보이는 것이다.

오는 7월, 김찬삼 선생의 선구적 업적을 기리는 ‘김찬삼 여행상’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여행에 대한 감회가 새로웠다. 세상 구석구석 안 가본 데가 없는 분들도 많을 텐데 나에게 ‘김찬삼 여행상’을 준다하니 문득 부끄러운 마음도 든다. 다만 지금까지 무언가 의미 있는 여행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온 것을 기억해주신 것이라 믿는다.

여행을 뜻하는‘travel’은 어원이 ‘travail’으로 고통, 고난을 뜻한다. 그래서 집 떠나면 무조건 고생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내가 느낀 것은 여행처럼 좋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여행은 머리로만 알고 있는 것을 몸으로 알게 해주는 좋은 선생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처럼 마음이 가는 데로 자유롭게 세상 여기저기를 오래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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