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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6. 아리랑을 사랑한 노(老) 장군의 마지막 소원

입력 : 2016-06-15 04:40:00 수정 : 2016-06-14 18: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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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우니 장군이 알링턴 국립묘지 한국전쟁 묘지 앞에서 아리랑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며칠 전 미 육군 제3보병사단 예비역 대위 한국계 미국인 모니카 스토이가 한국을 방문하여 나를 만나자고 했다. 그녀와는 2013년 국가보훈처에서 주관한 정전 60주년 기념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내가 제6대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에 취임한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로우니 장군의 청이라며 말을 꺼냈다.

에드워드 로우니(Edward L, Rowny)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맥아더 극동군사령부의 당직장교(당시 중령)로 일본 주둔 미군장교 가운데 최초로 북의 남침소식을 듣고 맥아더에게 직접 보고한 사람이다. 인천상륙작전을 기획하고 맥아더 장군의 특명으로 중령에서 제10군단 공병여단장(준장 보직)을 맡아 한강 도하작전을 진두지휘하였다. 미국 역사상 임시 준장이 된 사람은 독립전쟁 당시 조지 워싱턴의 공병단장이었던 타데우스 코시우스코 다음으로 그가 유일하다.

1950년 12월 중공군의 공세에 밀려 북에서 철수할 때는 적이 활용하지 못하도록 흥남부두에 남아있는 불필요한 보급품을 폭파하고, 아몬드 장군의 동의를 얻어 9만8000여명의 북한 피난민들을 배에 태우는 데 일조하였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타고 갈 배를 놓쳐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마지막으로 빠져나온 군인이었다.

99세의 로우니 장군이 아리랑 공연을 보고 싶다고 말한 곳은 알링턴 국립묘지. 미국 포토맥 남서쪽 교외에 위치하고 남북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베트남 전쟁, 걸프전 등에서 전사한 22만5000여명 이상의 미국 참전용사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미 전역에 있는 138개의 국립묘지 중 유일하게 국방부가 직접 관리하는 알링턴 국립묘지는 매년 400만여명의 방문객, 참배객이 찾는 우리의 국립현충원과 같은 곳이다.

2014년 2월 모니카 스토이 예비역 대위는 미 국방부가 알링턴 국립묘지에 참배하도록 나를 초대하는 것을 주선했고, 그 덕분에 나는 한국인 민간인으로는 최초로 무명용사 묘에 공식 헌화식을 가졌었다. 그리고 메모리얼 홀에 선친 차일혁 경무관의 기념패를 증정했다.

50톤이 넘는 대리석으로 만든 무명용사의 묘는 1921년에 처음 만들어졌고, 묘 앞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변함없이 자리를 지키는 위병이 있다. 위병 교대식을 보노라면 그 진지함과 경건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한국전 기념비와 미 제3보병사단 기념비, 그리고 워커 장군 묘에 헌화를 마친 나는 모니카 스토이의 소개로 에드워드 로우니 예비역 장군을 만났다. 한국전쟁 때 많은 공을 세웠다는 얘기와 숨겨진 6.25 전쟁 비화(秘話)를 듣고 나는 그의 회고록을 국내에 출판해주겠다고 약속을 했고, 그렇게 출판된 것이 <운명의 1도>라는 책이다.

그는 ‘한국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준 데 대해 감사하다’며 내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그해 7월, 로우니 장군을 초청하여 전쟁기념관에서 <운명의 1도> 출판기념회를 가졌는데, 이날 행사에는 미 대사를 비롯하여 국방부장관 등 많은 한미 군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노(老) 장군의 공로를 치하하였다.

로우니 장군은 축하의 자리에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대신 하모니카를 꺼내들고 ‘아리랑’을 연주하였다. 전쟁기념관에 애잔하게 울려 퍼지는 아리랑의 멜로디에 그 어떤 인사말보다 마음이 뭉클하였던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에게 ‘아리랑’은 바로 한국이고 한국에 대한 애정 그 자체일 것이다. ‘아리랑’은 로우니 장군만이 잊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당시 압록강까지 진격한 미 제7사단의 사단가도 ‘아리랑’이다.

비록 뜻하지 않게 중공군의 기습 공세로 큰 피해를 입기는 했어도 미 제7사단의 결전의 의지가 ‘아리랑’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다. ‘아리랑’은 한국전쟁과 떼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달 30일 메모리얼 데이를 맞아 알링턴 국립묘지를 찾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헌화를 하며 “호국영령들에게 진 빚은 절대 완전히 되갚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이 필요할 때 뿐만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필요로 할 때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는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5만4000여명의 미군이 잠들어 있다. 올해 나이 99세인 노(老) 장군이 전우들이 잠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아리랑을 보고 싶다고 한다.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노(老) 장군의 부탁을 내 어찌 거절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준 사람들인데 나를 필요로 한다면 내가 곁에 있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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