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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길진과 세상만사] 15. 남과 북이 함께하는 NLL 파시(波市)를 기대하며

입력 : 2016-06-13 04:40:00 수정 : 2016-06-12 18: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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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 연평도하면 조기 파시(波市)가 떠오른다. 바다에서 일시적으로 어선과 상선들이 만나 매매가 이루어지는 파시. 그 옛날 연평도에는 조기가 많이 잡혔다. 파시가 열리면 수백 척의 어선이 모이고 전국에서 상선이 몰려와 바다를 뒤덮었다고 하니 상상만해도 그 모습이 얼마나 장관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연평도의 조기가 얼마나 풍성했는지 그 기록이 <세종실록> 지리지에 남아있고, 해방 후에도 어획량이 2만여 톤을 유지했다 한다. 파시철이 되면 어민들은 조기 판돈으로 1년을 먹고 살았고 주머니도 제법 두둑했으리라. 하지만 최근들어 어획량이 점차 감소하여 더 이상 연평도 바다에 조기 파시는 형성되지 않았으니 어민들의 살림살이도 예전 같지않다. 활기 넘치던 연평도 파시는 이제 옛말이 되었다.

지금 연평도 바다에는 조기 대신 꽃게잡이가 한창이다. 그런데 꽃게잡이에 여념이 없어야 할 어민들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다. 우리 어민들의 배가 아닌 수백 척의 중국 어선들이 매일 우리 영해를 침범하여 꽃게잡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NLL 때문에 우리 어민들이 눈앞에 황금어장을 두고도 접근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불법 중국 어선들이 NLL을 무시하고 떼를 지어서 마구잡이로 꽃게를 잡고 있다. 중국 어선들은 꽃게에 알이 차고 살이 붙는 시기에 어족 자원의 씨를 말리는 것은 물론이고 저인망식 조업으로 통발과 닻자망 등 우리 어민의 어구들까지 망가뜨리는 피해까지 입히고 있다. 이런 중국 어선들의 불법 조업 때문에 꽃게 어획량이 지난 해보다 70% 이상 급감했으니 어민들은 수심이 가득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국민안전처는 지난 3월 “꽃게 성어기(4∼6월)를 맞아 중국 어선 불법 조업 근절을 위해 서해5도 NLL 해역에 경비함정과 특공대를 전진 배치하고 24시간 감시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정작 중국 어선이 떼를 지어 작업하는 야간에는 제대로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NLL의 민감한 부분이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영해를 지키는데 밤과 낮을 가려서야 되겠는가.

영해를 넘나들며 도망 다니는 중국 어선들을 단속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더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 없었던 어민들이 며칠 전 불법 중국어선 2척을 나포하여 연평도로 예인했다. 해경이 바다를 지키지 못하고 어민을 보호하지 못하니 어민들이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정부라고 왜 할 말이 없겠는가. 연평도 바다는 지난 1999년 6월과 2002년 6월, 두 차례에 걸쳐 북한 경비정과 해전을 벌인 바 있기 때문에 해경과 해군이 자칫 단속 과정에서 북한 해역으로 도망가는 중국 어선을 쫓다가 NLL을 침범해서 북한에 도발의 빌미를 줄 위험성이 크다고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어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인데 우리 바다를 국가가 적극적으로 지켜주지 않으면 어찌 하는가. 어민들이 정부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면 직접 중국 어선을 나포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에 나섰겠는가.

2007년 남과 북은 이 문제를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정상회담에서 ‘공동어로수역 지정’을 맺은 바 있다. 이 약속에 정치적인 문제가 얽혀있고 해결해야할 문제가 남아있지만 남과 북의 어민들을 위해 이행이 되었다면 꽃게 황금어장을 불법 중국어선들에게 내주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 후기 학자인 김려가 지은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를 보면 ‘볼락’이라는 시가 있다. ‘달 지고 까마귀 울어대는 바다는 어둑한데, 밤중에 밀물 불어 사립문을 두드리네, 볼락 파는 배 도착한 줄 멀리서도 알겠으니, 거제 사공 물가에서 볼락 사라 소리 지르네. (月落烏嘶海色昏 亥潮初漲打柴門 遙知乶?商船到 巨濟沙工水際喧)’ 풍요롭고 평온한 어촌의 모습으로 시(詩) 어디에서도 어부의 근심스런 마음은 느낄 수가 없다.

그 옛날 볼락 사라 외치던 거제의 사공들의 외침처럼, 연평도 부두에서도 꽃게를 사라 외치는 힘찬 어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언제쯤 만선의 깃발을 달고 항구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고 언제쯤이면 남과 북이 함께 꽃게잡이를 할 수 있을까.

강화도 인근 한강 하구까지 중국어선들이 밀고 내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어민들의 시름은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예전 연평도 앞 바다 조기 파시처럼 남과 북의 어선들이 꽃게 조업 한철만이라도 바다에서 만나 꽃게 파시를 만들 수만 있다면 어민들의 주름이 한결 펴지지 앉을까한다.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차길진

[약력] (사)한겨레아리랑연합회 이사장, (사)후암미래연구소 대표, 차일혁 기념사업회 대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운영자문위원, 현 경찰박물관 운영위원, 화관문화훈장 수훈, 넥센 히어로즈 구단주 대행

[저서] 어느날 당신에게 영혼이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 하나의 전쟁, 효자동1번지, 영혼산책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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